1979년 부마 민주항쟁의 기념 풍경
부마 민주항쟁은 유신 체제에 항거하여 1979년 10월 닷새 동안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항쟁이다. 이에 따라 계엄령 선포와 위수령 발동으로 이어졌으나, 사실 박정희 정권의 붕괴를 가져온 큰 사건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1980년대는 물론 1990년대까지 민주항쟁 관련하여 어떠한 기념비도 건립될 수 없었다. 1999년 가을에 이르러서야 겨우 부마 민주항쟁 발원지 표지석이 들어선다. 20년 만이다. 잇달아 부산 민주항쟁기념관과 부마항쟁 상징조형물이 건립될 수 있었다.
이러할진대 이 사건을 기리는 기념비는 어떠한 모습인지 살펴보자. 과연 우리 시대 민주화의 모멘트를 어떻게 기리고 있을지?
평탄한 사각형 좌대석 위에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기둥석을 비신처럼 세웠고 그 위에 폭이 거의 2m에 달하는 자연석을 1.65m 이상 높게 올렸다.
명칭: 유신 철폐 독재 타도, 민주주의 신 새벽 여기서 시작하다
비문: 이곳은 1979년 10월 16일 유신독재에 항거하여 민주의 횃불을 높이 들어 압제를 불살라버린 역사의 현장이다. 이에 부산 민주항쟁 기념사업회와 부산대학교 민주동문회는 부마 민주항쟁 20주년을 맞아 세월의 물살에도 깎이지 않을 우람한 뜻 하나를 세워 청사에 길이 전하고자 한다. 1999. 10. 16.
표지 석치고는 크다. 형상이 긴장감도 준다. 바닥의 잔다듬 화강석에서 시작하여 거친 다듬을 거쳐 마침내 자연석 그대로의 이행이다. 마치 문명에서 자연으로 나아간 듯. 혹은 혼돈에서 질서로 향하듯. 그것은 의지 작용이다.
얼핏 보면 그 실루엣이 고인돌 모습이다. 마치 영원한 시간을 구현하는 듯하다. 역사의 기록으로 새겨지고자, 이 발원지 표지석은 가시적인 물증인 양 우뚝 섰다.
부산 민주공원은 부산항 도심부에 다다르는 중심축 능선 끝의 중앙공원 일부이다. 이곳에는 부산 충혼탑, 4월 민주혁명 희생자 위령탑, 부산 광복기념관 그리고 여러 기념비가 모여있다. 그 꼭대기에 새로운 보루인 양 민주항쟁기념관이 자리하였다.
1) 민주항쟁기념관
부산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공간이다. 부산의 민주화 운동사를 기리고 시민에게 민주주의 교육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 건물의 중앙이 트여서 원형 경사로가 이어지는 원형 평면이다.
넋기림마당(추념의 장), 가리사리마당(인식의 장), 늘펼쳐보임방(상설전시실), 어렵사리마당, 올바름마당 등 시설의 공간 명칭이 순수 우리말이다. 그 의의가 있다만, 공공건축인 만큼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지 싶다.
2002년 가로 8.8m나 되는 “민주항쟁도”가 로비 벽면 높게 전시되었다. 일제강점기의 항일투쟁, 4·19 혁명, 부마 민주항쟁, 5·18 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화의 분수령이 되었던 현장의 기록화라고 한다.
2) 민주의 이름으로(추모조형물)
기념관의 넋기림마당에 들어서면, 좌측에 추모조형물은 나타난다. 추모조형물은 가로세로 각 6m 정도 규모의 반공개 공간이다. 노출 콘크리트의 곡면에 화강석과 마천석이 더해진 조형 벽이다. 특히 양쪽의 스테인리스 스틸의 판벽을 세웠다. 반사되는 빛 때문에 어두운 안쪽에 기록사진도 새겼고, 제단을 설치하여 위패를 모셨다.
의도:
… 민주항쟁의 연속성과 확산을 부각하는 상징물이자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열사들을 기리며 분향·헌화하는 조형물이다.
이곳은 흔히 보는 크고 높은 자리가 아니다. 작은 공간감에 자유로운 조형 형식에 재료 대비도 크다 보니, 바깥에서 보면 다소 번잡하다. 그런데 이곳에 들어오면 의외로 아늑하고 내부 지향적이 된다.
다만 여전히 정숙하고 경건해야 할 추모공간으로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3) 민주의 횃불(뜻기림횃불)
기념관의 원형 공간에 설치된 철재 구조물로 구성된 불꽃 형상의 조형물이다. 부산역에서도 보이며, 밤이면 더 빛난다. 다만 철재 구조를 이루는 각 부재가 너무 가늘어 보인다.
의도:
내부에 수많은 반사 재질의 작은 조각들을 설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한 이름 없는 별들을 형상화하였다. 외부와 내부의 희생자와 산 자, 이상과 현실, 안팎이 일체가 되어 ‘민주’라는 하나의 공간에서 승화하는 것을 보여주며, 부산의 힘이 무한의 시공간으로 끝없이 비상하는 것을 상징한다.
횃불은 이제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여기에서는 외부의 여러 방향에서 각기 다양한 형태로 보이며, 특히 산 정상의 독특한 형상이 된다. 즉 비상하는 불꽃, 깃발, 돛대, 심지어 우주선까지.
부마항쟁 상징조형물은 마산의 한 아파트 단지 내 근린공원 속에 자리하였다. 입지환경은 평범하다. 이 상징조형물은 단순한 좌대석에 높이 2.3m 정도의 사각형 기둥이다. 눈높이에 알맞다.
이 작은 조형물은 이웃처럼 친밀하게 그러나 큰 이야기를 단단히 던지고 있다.
조형물의 상징적 의미(안내문):
… 당시의 암흑과 혼돈을 의미하며, 당신과 내가 같이 걷어내야 한다는 의미…
그런데 멀리서 봐도 예사롭지 않다. 다가가면 더 느껴진다. 짙은 철판 같은 벽체, 나와 너를 가리키는 양손 그리고 휘갈기어 새겨진 붉은 선. 환조 작품이다. 대하는 순간 답답하게 만든다.
양손뿐이니 호소력이 더 있다. “함께”라는 표현이 와닿는다. 우러러보기를 요구하는 일 방향이 아니다. 서로 손을 마주 잡아야만 가능하다는 참여형이다. 큰 역사를 거론하기보다 작은 실천 행동의 엿보기인 셈이다.
다만 좌대 처리가 상투적이라 아쉽다. 자칫 좌대 때문에 야외 전시된 흔한 작품으로 보일 수 있다. 이 상징조형물은 그 단계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차원이 필요하다.
한 시대의 이정표 역할 아닌가. 그때 동참을 구했던 스토리를 담고 있다.
그리고 세상이 바뀐 요즘 상황에서는, "그때 난 이러했는데, 넌 무엇을 했느냐?" 하고 묻는다.
부마 민주항쟁이 2019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면서 부산대 장전캠퍼스 자연과학관 인근에 건립되었다.
비문: 청년 학생, 이곳에서 독재 타도의 선봉에 서다
(이 기념지는 미 답사인 관계로, 부산대 소식 제897호에서 내용을 인용하고, 추가 정리할 예정이다.)
관련 기념지(건립 순)
1. 부마 민주항쟁 발원지 표지석: 1999년 10월 16일 설치,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산대학로 63번 길 2 부산대학교 건설관, 글: 신영복, 글씨: □□□, 조각: □□□
2. 부산 민주공원 민주항쟁기념관: 1999년 10월 16일(부마 민주항쟁 20주년 기념일) 개관, 부산광역시 중구 민주공원길 19, 부산 민주공원 설계 경기 공모. 조경: 부산환경 콘설턴트, 건축: 경붕건축, 조형물: 엠조형, 민주항쟁도: 2002년 1월 설치, 기획·제작: 부산아트갤러리(대표 이갑상), 기증: 민주열사 박종철 기념사업회, 작가: 이철호(중국 옌볜대 미술과 교수), 민주공원 추모조형물-민주의 이름으로: 2003년 7월 20일 설치, 작가: 김성연, 진행: 이영준
3. 부마항쟁 상징조형물: 1999년 12월 건립,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해운동 54 서항 공원, 건립: 부마 민주항쟁 20주년 기념사업회, 조각: 김동숙, 제작·지원: 창원시
4. 부마 민주항쟁 40주년 기념 표석: 2019년 10월 16일,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산대학로 63번 길 2 부산대학교 자연과학관, 건립: 부마 민주항쟁 기념재단, 조각: □□□
참고·인용 문헌
1. POPCO.net, enow 2017
2. 부산대 소식 제89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