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 왼팔
한국의 기념경관 집필 후기 2
기림의 자리에서는 대부분 작품에 찬탄하지만, 다시 보면 어색한 형상이 간혹 나타난다.
이런 관찰은 숨은 그림 찾기처럼 흥미롭지도 않고, 조형물 해석같이 비평적이지도 않다. 문득 느끼게 될 뿐.
1999년 11월 조성된 광주 5·18 기념공원의 5·18 현황조각5·18 현황조각에서 곁부축받고 있는 투사가 내미는 손. 왼손이지만, 전체 형상에서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보다 조각 자체가 연출하는 격정적인 정체성과 뛰어난 심미성에 매혹된다. 당연하다.
그러하니 이 큰 시대적 사건에서 내민 왼손 모양새 하나쯤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1999년 12월 조성된 5·18 민주화운동 학생기념탑그런데 그 옆자리 5·18 민주화운동 학생기념탑의 조형 동상은 매우 적극적이다. 왼팔을 크게 과장하여 뻗고 있다. 오른손은 아예 생략되었다.
왜 하필이면 왼손인가. 물론 조형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노골적으로 쳐든 왼팔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작가와 제작 주체의 의도를 알기 쉽지 않다. 상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2002년 11월 건립된 영양 3·1 의거 기념비경북 영양군 망미 체육공원에는 왼팔을 더욱 능동적으로 치켜세운 조형물이 있다. 결의에 찬 투쟁의 상징 같다. 주먹 셋이 엉기듯 하늘로 치솟았다. 오른손 왼손이 섞인 것도 아니다.
영양 3·1 의거 기념비 앞 조형벽체의 벽화 부분벽화에는 유관순열사로 추측되는 인물이 왼손으로 태극기를 들고 있다. 전체가 우측 바람에 맞서고 있다.
그런데 이 기념의 주제가 3·1 의거이다. 아니 유관순열사가 왼손잡이였던가?
2020년 2·28 민주운동기념탑 정비사업으로 추가된 청동부조 기념조형물대구 2·28 민주운동기념탑의 청동부조에는 시위하는 학생 대열이 좌우로 펼쳐졌는데, 그 삼각형 구도의 정점에서 학생 둘이 함께 횃불을 들어 올렸다. 또 왼손이다.
몇 작품들에서 엿보이는 이 어색함은 우연인가?
혹시 특정한 이념 표출인지. 그러나 시위자들은 대개 오른손 주먹을 뒤흔든다. 아니면 격식이나 규범에 너무 매인 탓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
3·1 운동, 2·28 민주의거, 5·18 민주화운동 등 우리 근현대의 의미심장한 운동과 의거 모두 좌우 이념과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조형은 무엇을 의도하는지.
왼손 왼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의도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설마 이념의 충돌이 빚어내는 좌익 구현의 하나일지.
문제는 자칫 기념해야 할 사건과 인물 자체를 왜곡시킬 수도 있다는 것. 이에 치밀한 의도가 깔려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물론 작가의 창작은 보호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 모든 기념 자리는 순수예술을 위한 전시장이 아니다. 여기는 공공의 기념장소. 모두가 함께 공감하고 기념하는 자리이다. 그 해석 그리고 선택은 대중의 몫이다
기념은 시대를 건너가며 전달하고 또 가르친다.
그런데 지나간 시대정신을 후세대가 기념한답시고 본질과 다르게 해석하고 연출할 권리가 있는가?
좌우 이념 표출과 그 논쟁을 떠나 안타깝다.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관련 기념지(제작연도 순)
1. 5·18 현황조각: 1999년 11월 15 조성 건립, 광주광역시 서구 내방로 152, 제작: 우제길, 광주 인권상 수상자 기념조형물: 글: 황순칠, 제작: 신호윤
2. 5·18 민주화운동 학생기념탑: 1999년 12월 건립, 광주광역시 서구 내방로 152 5·18 기념공원, 증언: 전영병, 이정애, 김길자, 제작: □□□
3. 영양 3·1 의거 기념비: 2002년 11월 5일 건립, 경상북도 영양군 청기면 청기리 296-2 망미 체육공원 내, 건립: 3·1 의거 기념탑건립추진위원회, 후원: 보훈청, 경상북도, 영양군, 글: 조동걸, 탑 표제: 정찬벽, 조각: 대구 보경석재사, 기미옥중분시 음설록: 오석준 찬
4. 2·28 민주운동 기념탑: 1962년 4월 19일 명덕 로터리 건립, 1990년 2월 28일 두류공원 이전, 대구광역시 달서구 두류동 154-1, 글: 류영희, 서지: 김윤식, 2·28 찬가 작사: 김정길, 작곡: 임우상, 설계: 김현산, 2020년 정비사업 청동부조: 제작: ㈜예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