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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석연 May 11. 2024

156. ‘염치(廉恥)’의 의미

삶은 의미다 - 156

염치(廉恥)’란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며 사람으로서 반드시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남에게 신세를 지거나 폐를 끼쳤을 때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상태를 말한다. 恥(부끄러울 치)는 뜻을 나타내는 心(마음 심)과 소리를 나타내는 耳(귀 이)가 합쳐진 한자인데, 원래 心 대신 止(그칠 지)가 있는 耻의 형태로 듣기를 그치는 마음이란 의미로 ‘부끄럽다’의 뜻이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부끄러운 마음이 들 때 귀부터 빨개진다고 한다던가.

‘廉恥’는 廉操(염조)와 知恥(지치)’의 약자다. 청렴하며 지조를 지키고(廉操), 수치심을 아는 것(知恥)이다. 맹자도 인간이라면 반드시 염치를 몰라서는 안 된다. (人不可以無恥)”라며 염치를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옛 성현들은 ‘수치심을 아는 것(知恥)’에서 인간의 도리가 비롯된다고 하여 염치(廉恥)에 예의(禮義)를 덧붙여 예의염치(禮義廉恥-예절과 의리와 청렴과 부끄러움을 아는 태도)라 했다. 

얌체라는 우리말은 ‘염치’의 작은말 ‘얌치’에서 온 말이다. 얌치는 마음이 결백하여 부끄러움을 아는 태도를 뜻하는데, 얌체는 ‘염치(얌치) 있는 체(척) 하다.’의 축약어로 염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즉, 거리낌 없이 자기 이익만 따져서 행동하는 사람이나 그런 일을 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염치 불구하고 부탁 좀 할게’와 같이 누군가에게 어려운 부탁을 할 때 자주 사용하는 염치 불구는 바른말이 아니다. ‘불구’라는 말 대시 불고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맞다. ‘불구(不拘)’는 ‘얽매려 거리끼지 아니하다’라는 뜻으로 ‘염치 불구’라고 하면 부끄러움이나 체면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의미다. 부끄러움이나 체면을 전혀 개의치 않고 안하무인격으로 부탁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반면 불고(不顧)’는 돌아보지 아니하다라는 뜻으로 ‘염치 불고’라고 하면 체면이나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결례될 만한 행위를 하기 전에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것을 뜻하게 된다. 체면에 붙여 쓸 때도 ‘체면 불구’보다 ‘체면 불고’가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다. 사실 염치라는 말은 좋은 말인데 부정적으로 많이 쓰이다 보니 나쁜 말이 되었다. 염치가 없는 상태를 강하게 표현할 때 몰염치(沒廉恥), 파렴치(破廉恥) 등과 같이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고집은 세지고 염치는 잃어가는 것 같다. 대한민국의 아줌마라는 단어 속에 포함된 성격적 의미는 대부분 부정적이다. 신체적으로 나이 들고 이성적 매력이 없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성격적으로 뻔뻔하고 괄괄하며 주변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나서는 면 등이 있다. 나이가 들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지만, 염치를 잃어가는 것만은 확실하다. 염치없는 성격적 특성은 노인이 될수록 강해지기 마련인데, 왜 그럴까? 

나이가 들면서 염치가 없어지는 현상은 개인마다 다르고 명확한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추론해 볼 수 있는 이유는 있다. 첫째인생 경험을 통해 얻은 자신감이나 자기 확신과 사회적 판단에 관한 관심이 감소하여 사회적 상황에서 요구하는 행동 규범이나 필터를 덜 중요하게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둘째인생 경험의 축적으로 자신의 의견이나 행동에 대해 더 확신하게 되고이러한 자신감은 때때로 남들이 보기에는 염치없는 행동으로 비칠 수 있다셋째세대 간의 소통 방식의 변화와 가치관의 차이가 염치없어 보이게 한다넷째사회적 상황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인지적심리적 변화가 영향을 줄 수 있다다섯째사회적 역할이나 책임에서 벗어나는 것이 사회적 규범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더 자유로운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어 염치 없이 보인다. 염치없어 보이는 정도도 개인마다 차이가 있고 성격, 경험, 환경 등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여튼 아줌마로 대변되는 비상식을 넘어선 몰염치는 젊은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뒤돌아서게 한다. 하지만 그들도 나이가 들면 똑같은 과정을 되풀이하니 어쩌랴.

염치(廉恥)’란 청렴하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가리킨다.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부정적 개념이 아닌, 사람으로서 당연히 느껴야 할 도리의 하나이다. 칼럼니스트 이동규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염치’를 들면서 예의염치(禮義廉恥)는 나라를 버티게 하는 공직자의 네 가지 덕목이라 하였다. 공직자만 그렇겠는가. 모든 사람이 체면과 염치를 알고 나다운 얼굴로 당당하게 행동하는 것이 반듯한 삶이다.

동물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사람과 동물을 가르는 기준이 바로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염치가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염치가 있어야 자기의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고 방송에 오르내리는 우리 사회의 파렴치와 몰염치 모습은 인간의 도리를 팽개치고 도를 넘은 것만은 확실하다. 흔히 짐승보다 못한 놈이라는 욕을 한다. 정말 짐승보다 못한 놈들이 차고 넘친다. 잘못을 범하고도 부끄러움은커녕 법으로 무고함을 밝히겠다는 적반하장과 감옥 안에서도 할 말 다 하는 안면 몰수형 인간이 부지기수다. 

우리는 체면을 차리기 위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많이 본다. 눈치는 말보다 훨씬 복잡한 언어다. 이해하기 쉽지 않은 데다가 모르고 지나치면 오해를 부른다. 오해는 갈등을 낳고 결국 사람들은 불안감과 피로감에 시달리게 된다. 눈치 보는 문화는 나보다 남에게 더 많은 관심을 쏟게 만든다. 변화의 흐름을 좇아가려면 항상 어느 정도 남을 의식하면서 살아야만 한다. 남보다 뒤처지는 것을 죄악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는 염치보다 눈치를 상식으로 만들어버렸다남에게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는 삶이 만족감이 높을 수 없다.

염치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습득해야 할 기본 교양인 상식이다. 눈치를 보는 사람보다 염치를 아는 사람이 많아야 사회가 건강해진다. 염치는 내면을 성찰하는 데서 비롯된다. 반대로 눈치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형성된다. 한국인들은 타인의 삶을 관찰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러다 보면 본인의 삶을 면밀하게 성찰하는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눈치가 자기 성찰을 쫓아내면서 염치는 사라지고 사회는 시끄럽고 어지러워진다.

현대인들은 자기 권리 찾기에는 손해 볼 맘이 하나도 없다. 당연히 자기의 권리는 찾아야겠지만, 개인에게 권리를 찾아 주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국가 기관, 학교 등의 공공 기관에서 사람이 하는 일이라 좀 부족하다든지 늦는 등의 미흡함이 발생할 수 있다. 빈틈없는 권리 찾기에서 나오는 각종 민원성의 염치없는 행동들은 많은 공무원을 비롯한 공공 기관 종사자의 사기를 꺾을 수 있다. 권리를 찾는 일과 염치를 지키는 일을 잘 조화시키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염치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 기준을 어디에 놓고 살아가는지에 따라 좋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구분할 수 있다. 마땅한 사람의 도리, 최소한의 양심, 갚아야 하는 마음 등을 좀 높고 넓게 가지는 사람이 많을수록 평화로운 사회다. 한편 염치를 매우 불편한 옷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염치가 피곤하고 버겁다고 느끼는 사람들이다. 염치를 많이 가진 사람에 비해 조금 못나 보이고 초라할 수 있다. 내 생각과 같지 않은 염치의 기준에 상처받지 말고 모나게 살지 않을 만큼 좀 더 베풀고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보면 염치는 곧 그 사람의 그릇이다.

염치란 좋은 사회를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이다. 염치만 잘 지켜도 조금 더 정의롭고 선에 가까운 삶을 살 수 있다. 우리 구성원들도 ‘내가 염치 있게 사느냐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고 생각하느냐?’를 생각해 보며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고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작지만 사회 정의를 세우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수치심을 넘어서 염치를 모르는 뻔뻔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 사회다. 그런 사람들이 판을 치다 보니 염치 있는 사람이 바보스럽게 보인다. 요즘은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 모든 분야가 너무 시끄러워 뉴스 보기가 민망할 정도다. 삶을 한 줌의 불편한 마음도 없이 살아갈 수는 없다. 그래도 자신이 생각하는 최소한의 염치를 지키면서 실천하는 것이 편한 마음으로 살 수 있는 지혜다. 그래서 스탕달은 수치심은 제2의 속옷이다.’라고 말했다.

    

속옷을 보이지 말고 눈치보다 염치를 우선순위로 하는 삶을 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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