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의미다 - 178
‘노화(老化)’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신체의 구조와 기능이 점진적으로 퇴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문자 그대로 ‘늙는 현상’이다. 현대의 노화는 ‘나이가 들수록 사망률이 증가하는 현상’과 ‘나이가 들수록 신체 능력이 퇴화하는 현상’을 합한 개념이다. 또한 노화도 치료 가능하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인류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편, ‘노쇠(老衰)’는 나이와 무관하게 신체의 생리적 항상성이 급격히 저하되어 작은 스트레스에도 약해져서 쉽게 질병이 생기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의 심각한 기능 저하를 초래하는 허약한 상태를 의미한다. 노쇠는 사망과 장애의 위험성이 매우 높지만, 원인을 조속히 찾아 적극적으로 교정하면 극복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노화와 차이가 있다.
‘장가들자 철들었구나!’, ‘나이 들어도 철이 없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여기서 철은 계절(季節)이고 계절은 시간의 단위이다. ‘철이 들었다’는 몸과 마음으로 철을 맞이했다는 얘기고, ‘철이 없다’는 철을 몸과 마음 안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뜻이다. 새해를 맞이하면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라고 하는 것도 내 몸 안으로 시간이 들어온다는 뜻이다. 이렇듯 동양에서 나이는 늙는(old) 것이 아니라 도리어 속이 깊어지고 넓어진다는 것이고, 우리말로는 ‘철이 든다’라고 말한다. 반면 서양에서 ‘나이를 먹는다(age)’는 ‘오래되고 늙었다(old)’라는 말이다. 서양에서 나이는 죽음을 향해 가는 ‘늙는 것(old)’이다.
인간의 노화는 시작 시기, 속도 및 범위가 개인차가 매우 심하다. 남녀를 막론하고 유전, 환경, 생활양식, 영양 섭취 등이 노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작용하고 생활 습관 및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기능을 위축시킨다. 노화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발생하는 정상적인 변화이다. 정상적인 노화 과정에서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각 신체 기관의 유지 능력이 감소하고 모든 신체 영역에서 서서히 진행된다.
직접적인 노화의 원인은 세포의 분화와 증식이 줄어들어 분자들의 구조가 바뀜으로써 생리학적으로 불가피한 변화가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장기 및 기관의 항상성이 저하되고 외부 스트레스, 질병, 사망에 대한 감수성이 급격하게 증가하게 된다.
나이가 들면서 신체적 노화현상으로 제일 먼저 찾아오는 기관이 눈(目)이다. 일반적으로 40대부터 노안이 시작된다고 하며, 눈물샘에서 분비되는 눈물의 지방질 성분이 줄어들면서 눈이 덜 촉촉해지면서 뻑뻑하다고 느낀다. 다음으로 귀(耳)는 고음 영역대가 잘 들리지 않기 시작하고 모음보다는 자음을 잘 알아듣지 못하게 된다. 목의 노화현상으로 목소리가 쉬고 허스키해지며 윤활액이 줄어들어 목이 건조해진다. 국물을 마실 때 사레가 자주 들리는 것도 목의 노화현상이다. 이 외에도 노화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은 신체 모든 부위라 할 수 있다. 폐활량이 줄어들기 시작하여 호흡의 빈도가 빨라지고 위장 괄약근 약화로 위산 역류가 증가하며 위액, 쓸개즙, 췌장액 분비가 줄어 소화능력이 약해진다. 방광은 소변 저장량이 감소하여 잔뇨 현상이 일어나고 소변 나가는 속도 역시 감소한다. 대장 항문괄약근이 약해져 변실금도 증가한다.
노년이 되면 육체적 노화 못지않게 정신적 노화도 일상생활에 중요하다. 신체와 정신은 분리된 듯 보이지만, 사실은 둘은 떨어질 수 없다. 나이가 들면 신체가 변하고 따라서 대부분 심리가 변할 수밖에 없다. 대체로 내향성이 강해지고 변화를 싫어하며 안정을 추구하게 된다. 새로운 것보다는 익숙한 것을 선호하여 범용성이 떨어지고 완고해지며 보수적으로 된다. 노인은 고집으로 대변되는 이유다. 이러한 노인 특유의 보수적인 성향은 세대 갈등을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따라서 삶의 범위가 좁아 활력과 즐거움이 급감하고 무기력해지며 우울해지기 쉽다. 하지만 평균수명이 급속이 증가하면서 정신적 노화의 속도는 시대가 흐를수록 느려지는 추세다. 정신적 노화는 신체적 노화와 달리 개인차가 매우 크다는 것은 다행이다. 나이가 들어도 젊게 살기 위해 노력하면 정신적 노화를 겪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니.
한편 최근 많은 연구를 통해 사람은 노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시기가 만 34세, 만 60세, 만 78세인 것으로 밝혀졌다. 피부 노화의 경우 서양인은 동양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서 20대 서양인과 40~50대 동양인의 피부가 비슷할 정도다. 기본적으로 동양인의 피부가 서양인보다 두껍고, 하얀 피부인 서양인은 햇빛에 약간 태운 피부를 더 아름답게 여기는 경향이 있어 햇빛 노출을 의도적으로 즐긴다. 또한 개방적 정서로 어릴 때부터 술, 담배, 마약 등에 접하기 쉽고 과도한 운동으로 인한 활성산소도 노화를 촉진한다.
현대적 노화 이론을 세운 윌리엄즈는 생물의 노화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일반 규칙을 예측했다. ① ‘신체’와 ‘생식 세포’의 구분이 있는 생물에서는 항상 노화가 나타난다. ② 성숙한 개체가 사망률이 낮으면 노화 속도가 늦어진다. ③ 성숙 후 시간이 지나면서 생식률이 올라가면 노화 속도가 감소한다. ④ 성이 존재하는 생물의 경우, 사망률이 높은 쪽이 빨리 노화한다. ⑤ 신체의 여러 기관이 매우 비슷한 속도로 노화한다. ⑥ 생식이 끝나면 거의 모든 개체가 노화로 사망한다. ⑦ 성적으로 성숙하면 바로 노화가 개시된다. ⑧ 개체가 빨리 발달하면, 더 빨리 노화가 개시된다. ⑨ 수명을 증가시키는 변화는 젊은 시기의 활력을 줄인다.
또한 윌리엄즈는 인간의 경우 여성이 폐경 후에도 오래 사는 현상은 상당히 예외적이라고 말한다. 어느 시점 이후는 새로 아이를 낳기보다 기존의 아이 또는 손자에게 자원을 투자하는 편이 이로우므로 생식이 끝나도 오래 산다는 ‘좋은 어머니(할머니) 가설’을 제시하기도 했다. 자식을 낳지 못하면 번식적 가치는 전혀 없어서 진화적으로 이런 시기까지 개체를 유지한다는 것은 자원 낭비다. 하지만 인간 여성이 그렇지 않은 것은 인간의 출산이 특히 위험하고 아이를 돌보는 데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유전자를 공유하는 가족을 돌보는 편이 출산 못지않게 중요하고 득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직 논란이 있는 이론이지만 나이 들어도 오래 살아야 할 필연적 이유가 존재하니 다행이다. 그런데 요즘 손자, 손녀를 돌봐주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기는 한 건가?
현대의학이 노화의 원인으로 신호 전달 오류, 유전자 불안정, 텔로미어 길이 감소, 후성 유전적 변형, 단백질의 안정성 감소, 불규칙적 영양소 인식, 미토콘드리아 기능 저하, 세포 노화, 줄기세포 고갈 등 9가지 요인을 지목한다. 노화를 질병으로 취급하며 극복하기 위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어느 한 가지라도 완벽하게 정복된 분야는 없다. 지금까지 노화 극복 기술들은 화장품이나 영양제 등으로는 외모와 건강을 유지하는 방향에서 실현됐다. 앞으로 노화를 치료의 측면에서 다루어 극복하는 기술, 즉 실질적인 노화 억제, 중지, 역행 등의 기술은 더 이상 꿈의 영역이 아니다. 외모와 건강 유지보다도 노화의 본질 그 자체를 다룬다.
한편 노화에 대한 많은 오해와 편견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 첫째가 노화의 속도는 일정하다는 것이다. 노화의 속도는 건강 상태에 따라 빨라질 수도, 느려질 수도 있으며 수명도 그에 따라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유전자의 고유 특성에 따라서도 개인차가 있을 수 있다. 둘째, 노화는 질병이라는 개념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술 발전에 따라 노화가 실질적으로 극복이 가능한 대상으로 간주하는 개인과 집단이 생겨나며, 노화도 일종의 질병으로 건강을 위해 극복해야 할 위험으로 보는 시각이다. 자연스러운 노화 과정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지 말자는 주장과 함께 의학적 기술에 의존하여 어느 정도 노화를 늦출 수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 도발적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노화에 따라 늙는 것은 죄가 아니다. 시간은 공정하고 공평하다. 부자의 시간도, 가난뱅이의 시간도, 어른도 아이도, 남자도 여자도… 누구에게나 1분은 60초이고, 하루는 24시간이다. 나이 듦은 죄스러운 일도 아니고 눈치 볼 일도 아니다. 젊은이도 세월이 가면 늙고, 늙은이는 젊어 한창 때가 있었다.
젊음을 부러워하며 지난 세월에 그리워하지 말고, 지금 앞에 있는 맘에 맞는 사람들끼리 놀면 된다. 놀 사람 없으면 그냥 나랑 노시길~! 나 자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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