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의미다 - 180
생명 있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반드시 늘 변한다. 인간의 몸도 변하고 생각과 감정도 변한다. 사람들이 이렇게 당연한 몸의 변화인 노화(늙음)를 추하고 서럽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아마 지나간 시절의 젊음에 대한 집착에서 오는 것이다. 노년은 생각하고 행동하기에 따라 빛나는 오늘의 축복일 수 있다. 젊어서나 늙어서나 세월과 관계없이 삶은 지금 여기 내 생각으로 늘 새롭게 만들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아름다운 삶이다. 이렇게 그때그때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인생의 품격과 성패를 결정짓기 마련이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다시 일어서지만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사람은 쉬이 쓰러지고 만다.
우리는 사는 동안 스스로가 유한한 존재임을 잊고 사는 때가 많은 것 같다. 자신은 늙지 않고 영원한 시간 속에서 살 것처럼.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늙고 병들고 죽는다. 어느날 갑자기 시간이 더는 지천으로 남아돌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삶이 무겁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아주 가끔 세상 속에서 나의 부재를 생각하게 될 때, 그동안 전혀 생각지 않았던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왜 사는가?’, ‘남은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을 던지며 세상에서 나란 존재가 없어지는 날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슬퍼지고 당황스러워한다.
노화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이치이다. 젊은 아름다움에만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괴로움을 자초할 수밖에 없다. 얼굴에 보톡스 주사를 맞고 주름살 수술을 한다 한들 그게 얼마나 갈까? 그렇게 해서 팽팽한 피부를 갖는다 한들 그것이 곧 젊음을 되찾는 일일까? 몸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하고 한시적이다. 그러한 일에 안간힘을 쓰기보다는 늙음을 순순히 받아들이면서 삶의 연륜과 미덕이 배어 있는 고운 주름살을 갖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젊음은 발랄한 아름다움이 있고, 늙음은 연륜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의 기준도 나이가 들면 바꿔야 행복하다. 나이가 들면 깊은 인격에서 풍겨 나오는 고상한 품위가 아름다움이다. 늙음은 세월을 받아들여 익어감으로써 인격의 성숙을 추구해야 한다. 몸을 중시하면 마음을 채울 수 없다. 밖으로 몸을 가꾸는 일에 치중할수록 안으로 인격의 성숙, 삶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고 실현하려는 노력이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인간에게 노화(늙는 것)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일까? 어릴 때는 어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한다. 어른이 되면 다시 젊어지려 한다. 얼굴에 화장을 해서라도 젊게 보이고 싶어 한다. 유명 관광지에 가면 중년이 지난 어른들이 학창 시절 입었던 교복을 입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렇게 나이 들어도 늙은이라고 불리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다. 사람은 늙는다. 늙으면 힘이 약해지고 주름만 늘어간다. 나이를 먹으면 곱던 얼굴에는 주름살이 한둘 생겨나고 검은 머리에는 흰머리가 자꾸 늘어 간다. 기억력도 예전만 못한 것 같고 눈은 자꾸 침침해진다. 그래서인지 왠지 자꾸 초라하게 느껴지고 세상에 자신이 없어진다. 노화는 생명체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다. 진짜 문제는 얼굴에 주름이 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주름이 지는 것이다. 쉼 없이 배우고 책을 읽는 것도 마음의 주름살을 펴는 좋은 방법이다. 늙어서 배운다고 부끄러워하지 마라. 배워 쓸 곳도 없다며 포기하지 마라. 어디에 쓰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채우기 위해 배우는 것이다. 내 마음을 채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용처가 또 어디 있겠는가.
나이 든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좋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기 때문에 이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나이 들면서 좋은 일, 즐거운 일을 만들어 가겠다는 마음가짐이 훨씬 더 중요하다. 젊었을 때의 재미에만 얽매이지 말고 바로 지금 자신에게 맞는 재미를 찾는 것이다. 이게 나이답게 늙어가는 일이다. 누구든 재미있게 살겠다고 마음만 먹는다면 세상은 온통 재미있는 일 천지다. 생은 어느 시기건 그에 알맞은, 그때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그것을 충분히 느끼며 산다면 성공한 인생이다.
나이 들어가는 많은 사람이 ‘예쁘고 곱게 늙고 싶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작가 임경선은 남은 세월 잘 늙고 싶으면 “선입견과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불평하거나 투덜대거나 까탈스럽게 굴지 않고, 무의미한 말을 시끄럽게 하지 않고, 떼 지어 몰려다니니 지 않고, 나대지 않으면서도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가능한 한 계속하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세월은 피부를 주름지게 하지만, 열정을 잃으면 영혼이 시든다. 사람은 신념과 함께 젊어지고, 회의와 함께 늙어간다. 사람은 자신감과 함께 젊어지고 두려움과 함께 늙어가며 희망과 함께 젊어지고, 실망과 함께 늙어간다.’라는 맥아더의 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인생은 시기마다 수많은 경험을 하며 우리는 성장하고 성숙해진다. 열 살 때는 스무 살의 마음을 모르고, 30대에는 중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게 당연하다. 세월의 흐름을 따라 인간은 익어 가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힘이 자꾸만 떨어지는 것은 물론 슬픈 일이지만 그런 현상은 필연적인 동시에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노화는 죽음의 준비 작업으로 볼 수 있다. 노화현상이 일어나지 않으면 죽음이 너무 힘들어질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고령에 이르러 얻는 가장 큰 이득은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병에 의하지도 않고 경련을 수반하지도 않으면 아무런 느낌도 없는 매우 안락한 죽음 말이다. 병과 같이 노화에 저항하기보다 내게 찾아오는 손님처럼 잘 맞이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노년은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에서 충만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시기다. 생물학적으로 늙는다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인 현상이지만 우리가 늙어 가는 모습은 제각각이다. 세월은 많은 것을 가져갔다. 건강과 에너지, 일과 의욕 그리고 미래, 그러나 세월이 가져다준 것도 많다. 앞으로 살아야 할 시간은 줄었다고 하지만 나만을 위한 시간은 철철 남아돈다. 나이 들면 저절로 시간 부자가 된다. ‘시간 깡패’라고 농담하지 않던가. 시간의 남고 부족함이 문제가 아니라 나를 위해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다. 삶이 심심하고 지루해지는 것을 막으려면 지금 내 나이에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찾아내는 것이 최고다. 뇌 기능이 저하되어 망각이 문제가 되지만 뇌가 감당하지 못하니 스스로 입력하지 않는다고 위로하면 그뿐이다. 생각이 줄어드니 중요하게 해야 할 일도 줄어드니 좋고, 찾는 사람이 적으니 바쁠 일이 없어 좋다. 노화는 그냥 같이 가야 할 삶의 필수조건 중에 하나다.
나이 들어갈수록 ‘버릴 것은 딱 하나, 미련이다.’라는 말이 있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누구도 필요치 않은 발자국을 남겨두어 무슨 소용인가. 살아 있는 이들에게 수고만 끼칠 것이다. 비워야 떠나기 쉽고 비워야 뒤돌아볼 일이 없다는 지혜를 배워야 예쁘고 곱게 늙는 지름길이다.
마지막으로 늙어 서러운 이야기 하나 더~!
배우자를 사별한 노인의 남녀 수명 차이에 대한 대한민국만의 재미있는 통계가 있어 소개한다. 사별한 노인보다 사별하지 않은 노부부의 수명이 길어진다는 것은 일반적인 사실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사별한 남성의 경우 사별하지 않은 남성보다 수병이 짧아지지만, 사별한 여성의 경우 사별하지 않은 여성보다 수명이 길어진다는 통계다. 즉 나이 들어 남자가 빨리 죽어야 여자가 오래 산다는 말이다. 남자가 빨리 죽어주어야 미덕이란 말인데, 믿기 싫고 웃지 못할 통계다. 나 같은 늙은 남자는 어쩌란 말인가. 하여튼 늙는 것도 서러운데 남자라서 배우자를 위해 일찍 죽어주어야 한다니 더 서럽다. 한편으론 고통의 삶으로부터 일찍 해방되는 일이니 좋은 일인가.
옛날 다니던 맛집을 찾아가 그 음식을 먹어봐도 ‘그 맛이 아니야!’라며 신통치 않아 할 때가 많다. 나이 들어 혀가 둔해진 생각을 하지 않으니 당연하다. 뭐를 먹어도 맛이 없고, 무엇을 해도 즐거운 일이 없다. 누구를 만나도 기쁘지 않고, 어디를 가도 감동이 없다. 그렇다고 ‘늙으면 죽어야지~!’라는 3대 거짓말 중 하나이고 공감 제로인 말은 하지 말자.
혀의 맛집 순례를 떠날 것이 아니라 삶의 맛집을 찾아 떠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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