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의미다 - 202
“아이에게 무언가 약속하면, 반드시 지켜라. 지키지 않으면 당신은 아이에게 거짓말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된다.” [탈무드]
‘약속(約束)’은 ‘다른 사람과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다. 말로만 하는 약속은 법적 효력을 증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문서화시켜 법적 효력이 부여된 약속을 ‘계약(契約)’이라고 한다. 또한 몰래 한 약속을 ‘밀약(密約)’, 약속을 정할 때 겹치는 시기에 먼저 정해진 약속이 있다면 이를 ‘선약(先約)’이라고 한다.
일상생활에서 약속은 대부분 친한 사람 등과 만남을 가지기 위해 하는 약속이 대부분이다. 특별한 약속이 아닐지라도 어기면 다른 사람의 신뢰를 잃게 되므로 일단 해 둔 약속은 가능한 한 지키고 늦지 않는 게 좋다. 약속할 때 서로의 새끼손가락을 거는 관습은 세대를 불문하고 공유되는 행동이며, 많은 문화권에서 통용되는 제스처다. 나아가 약속을 꼭 지키라는 의미에서 새끼손가락을 걸어놓은 채로 서로의 엄지를 맞대는 것, 일명 ‘도장찍기’와 그것도 모자라 악수하듯이 서로의 손바닥을 맞대어 스치는 행동(일명 ‘복사’)이 추가되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행동은 약속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애교 행동일 것이다.
약속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동시에 아주 강력한 인간관계의 도구이다. 내가 미래의 특정 시점에서 특정 행동을 하겠다고, 지금 말로 선언하는 것이고, 그 선언에 상대방이 나를 믿어도 괜찮다는 신뢰의 무게를 실어주는 행위이다. ‘언제 시간 나면 보자’, ‘언제 밥이나 한번 먹자’, ‘다음에 보자’ 등은 약속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적 인사말 수준인 거의 약속이 아닌 대화 말들이 있다.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가 없는 만남의 약속들은 약속의 실제 무게감이 거의 없는 것이다. 말로만 하는 인사치레의 약속보다 구체적 날짜와 시간, 장소가 붙어 있는 약속이 진짜다, 반면 계약서, 공증 등은 법적 효력을 가진 국가가 인정하는 초강력 약속이라 할 수 있다.
겉보기엔 가벼워 보이는 약속도 실제로는 꽤 무거운 책임감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약속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약속이 지켜질 때마다 사람 사이의 신뢰라는 보이지 않는 자본이 조금씩 쌓여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약속은 나의 정체성 선언이자 감정적 안전망이다. ‘나는 한 번 말한 것은 꼭 지키는 사람이야’라는 자기 서사인 동시에 약속을 지키는 행위 자체가 나를 떠나지 않을 거라는 작은 안전 신호로 작용한다. 한편 약속 위반은 배신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과도하게 상처받는 사람이 꽤 많다. 결국 약속이란 미래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내리는 구속인 동시에 상대방에게는 ‘너는 내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무언의 믿음을 주는 증거와 같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심리는 한 가지 단일한 이유가 아니라 여러 심리적 동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첫째, ‘그때 가서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심리로 미래의 나를 현재의 나보다 능력 있고, 여유롭고, 의지가 강한 사람으로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현재의 불편을 해소하는 것이 미래의 불편함보다 훨씬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둘째, ‘이 정도는 용인될 거야’라는 점진적 도덕적 해이에서 오는 시간 관점을 왜곡하는 것이다. ‘이번 한 번만~’, ‘다들 이 정도는~’, ‘사과하면 끝’ 등의 약속 위반 기준이 점점 내려간다. 셋째, 약속할 때는 관계가 틀어질까 봐 수동적으로 수락하고 약속 실행 시점에서 감정적 에너지가 고갈되어 ‘미안해요. 진짜 못 가요’ 등의 패턴을 반복한다. 이 밖에도 순간의 불편함 회피, 책임감의 희석, 자기중심적 시간 인식, 의도적 파워게임 등이 있다. 약속 위반은 ‘현재의 나’가 ‘미래의 나’에게 지나치게 관대하고, ‘상대방의 나’에게는 지나치게 박하게 구는 상태로 이 불균형이 클수록 약속을 더 쉽게 깨고, 또 그걸 별일 아닌 것처럼 정당화하게 된다.
일상생활에서 약속의 역할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첫째, 시간을 같이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최소한의 장치이다. 약속이 없으면 친구·연인·동료와 동시에 같은 시간·장소에 있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해진다. 둘째, ‘너는 내게 어느 정도 중요한 사람인가’를 매일 확인하는 시스템이다. 약속의 이행 여부가 관계의 온도를 재는 가장 강력한 지표로 작용한다. 셋째, 나 자신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거울이다. 내가 약속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 내가 자신을 스스로 얼마나 존중하는지 보여주는 가장 직관적인 척도이다. 현대인의 일상에서 약속은 생각보다 훨씬 더 근본적이고 필수적인 ‘사회적 접착제’ 역할을 하고 있다.
약속과 신뢰는 거의 일대일 대응에 가까운 매우 강한 상관관계를 가진다. 신뢰의 잔고는 그동안 내가 지킨 약속으로 쌓이고 어긴 약속으로 무너진다. 한편 신뢰는 천천히 쌓이고, 순식간에 무너지는 속성이 있다. 9번 약속 지켜서 쌓은 신뢰를 1번 약속 어기는 것으로 거의 다 날려버릴 수 있다. 또한 작은 약속의 누적 효과가 생각보다 크다. 매번 5분 늦는 사람보다 항상 5분 일찍 오는 사람이 훨씬 더 신뢰받고, 한 번 깨진 신뢰는 같은 수준으로 회복되기 매우 어렵다. 신뢰를 통장이라면 약속은 입출금 명세다. 통장의 입금이 지킨 약속이면 출금은 어긴 약속이다. 그런데 입금을 소액이고 출금은 큰 금액이라는 것이 우리의 난제다. 그러다 마이너스 통장이 되면 채우기가 매우 힘들고, 지속되면 관계가 청산되기까지 한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약속을 지키는 최고의 방법은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다. 약속 하나하나가 결국 자신의 인격과 신뢰의 잔고를 쌓거나 깎는 행위라는 점에서 약속은 하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고 중요하다. 지켜지지 않은 약속을 기억하며 산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약속은 타인에게 빚을 지는 것이다. 제때 갚아야 은행에서도 당신을 믿고 계속 돈을 빌려주지 않겠는가.
늘, 한번 한 약속은 언젠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살아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