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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의 설거지 철학

"그래봤자 설거지는 설거지일 뿐이에요"

by J mellow

집마다 고유한 분위기가 있다. 우리 집은 오래전부터 남녀가 평등하다는 가치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곳이었다. 그래서 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은 기억이 전혀 없다. 반면, 남편의 집안은 전형적인 경상도 가풍이 강한, 남아 선호사상이 뿌리 깊은 곳이었다. 자연스레 남편이 알게 모르게 많은 혜택을 받으며 자랐다는 것도 결혼 후에야 깨달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차이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귀한 아들이 데려온 귀한 며느리라며 시댁에서 나를 극진히 대하는 것이 꽤 괜찮다고 여겼다.


명절에 시댁에 가면 상차림이나 설거지 한 번 시키지 않고, 모든 집안일을 시어머니가 도맡아 하셨다. 결혼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는다.
이번 명절 아침 식사 자리에서 시어머니가 여느 때처럼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으셨다. “니는 뭐를 해먹노?”
시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으신 반면, 나는 워킹맘 밑에서 자란 현직 워킹맘으로, 살림에는 영 젬병인 신세대 K-며느리다. 그래서 늘 하던 대로 천진난만하게 대답했다. “한식은 어렵더라고요. 잘 안 해 먹고, 캐나다에서처럼 일식, 중식, 양식을 더 많이 해 먹는 것 같아요.”
그러자 시어머니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씀하셨다. “니가 보고 배운 게 없어서 그렇다. 원래 혼자 하려면 어렵다 아이가.”
나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우리 엄마도 워킹맘이었고, 나 역시 워킹맘이니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아침밥을 맛있게 먹으려는데, 평소 온화함을 잃지 않는 남편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엄마는 말을 왜 그렇게 해? 내가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야 하나?”


순간, 식탁 위 공기가 묘하게 얼어붙었다. 시어머니는 당황한 듯 변명하셨다. “아니, 내는 그런 뜻이 아니고… 어릴 때는 엄마가 하는데 관심이 없어서 못 배웠다꼬. 영혜도 그렇다 아이가. 어릴 때는 몰라도, 나중에 시집가서 다 내한테 배웠다 아이가.”
남편은 단호하게 “아니라고!”라고 한마디 더 던졌고, 시어머니는 얼른 수습하듯 “알았다, 알았다. 어서 묵으라!”며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나는 평소처럼 흘려들으려 했지만, 남편의 반응을 보니 무언가 더 깊은 뜻이 있는 것 같았다. 지난 10년 동안 시어머니의 말과 행동을 곰곰이 떠올려 보았다. 나는 시어머니가 직설적인 화법을 쓰는 이유를 ‘학력이 짧아서 매너 있는 소통법을 잘 모르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왔다. 사실 그런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아버지가 말기암 투병 중이실 때 병문안 오셔서 우리 엄마에게 “지금 멀쩡해 보여도 사람 죽어삐는 건 한순간이라예. 우짜노~”라고 하셨다. 듣는 입장에서는 위로가 아니라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지만, 애써 넘겼다.


이번에도 그냥 넘기려 했는데, 남편이 나서서 반박한 걸 보니 시어머니의 말에는 단순한 걱정보다 더 깊은 뉘앙스가 숨어 있었다. 시어머니는 내가 단순히 요리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살림을 소홀히 하는 며느리로 여기고 계셨던 것이다. 그동안 “니는 뭐 해 먹고 사노?”라는 말이 단순한 걱정이 아니라, ‘우리 귀한 아들이 이런 형편없는 밥상을 받으며 사는 건 아닌가’ 하는 불만과 나무람이 섞인 질문이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내가 귀한 아들의 아내라 귀한 대접을 받는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시어머니에게 있어 살림, 특히 부엌일은 단순한 가사 노동이 아니었다. 시골에서 태어나 스무 살 갓 넘은 나이에 대가족 살림을 책임졌고, 이후에는 음식점을 운영하시면서 평생을 부엌에서 살아오셨다. 부엌은 단순히 요리를 하는 공간이 아니라, 시어머니의 인생 그 자체였던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부엌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살림을 똑소리 나게 하는 것이 시어머니에게는 자부심의 원천이었다. 그런 시어머니 눈에, 한식은 어렵다며 대충 설거지하고, 식기세척기에 모든 걸 해결하는 며느리는 그저 못 미더운 존재였을 것이다.


설거지만 봐도 그렇다. 나는 하루 한 번, 저녁 식사 후 그릇을 헹궈 식기세척기에 넣고 끝낸다. 하지만 시어머니의 설거지는 예술에 가깝다. 먼저 건더기를 제거하고, 물로 한 차례 헹구고, 전용 수세미로 거품을 내어 문지르고, 다른 수세미로 헹군 뒤, 마지막으로 흐르는 물에 다시 씻는다. 그리고 삶아서 말린 행주로 일일이 물기를 닦아 마무리한다. 이 과정이 끝나면 기본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시어머니에게 설거지는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올바른 삶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나처럼 그 방식을 따르지 않는 며느리는 한심하고 못마땅한 존재일 것이다.


나는 시댁에서 돈은 없어도 귀하게 여겨주시고, 선하디 선한 시부모님 덕에 행복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번 일을 계기로 내 환상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부엌일에 매진해 시어머니의 인정을 받을 생각도, 서운한 마음에 괴팍한 며느리가 될 생각도 없다.


시어머니가 부엌일을 인생의 최고 가치로 여기듯, 나에게도 나만의 중요한 우선순위가 있다. 시어머니가 평생 부엌에 갇혀 살면서 경험하지 못한 찬란한 순간들이, 내가 누리는 자유와 가능성들이 어쩌면 부럽지는 않으실까?


감히 내가 평가할 입장은 아니지만, 시어머니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넓디넓은 세상에서 부엌이라는 작은 공간에 갇혀 살아온 삶, 그 안에서 모든 것을 증명하려 애썼던 그녀가 안쓰럽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녀 역시 그렇게 살아왔기에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시어머니처럼 살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나답게 살며, 나의 방식대로 가정을 꾸려갈 것이다.


언젠가 꼭 용기 내어 말하고 싶다.

“어머니, 그래봤자 설거지는 설거지일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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