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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네 Jan 27. 2022

더 많은 다니엘의 추락사를 막기 위하여

켄 로치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혼자서 50m 이상 걸으실 수 있나요? 전화기의 버튼을 누르실 수 있나요? 혼자서 밥을 짓고, 모자를 쓸 수 있나요?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중 다니엘이 신체 능력 심사를 받는 장면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주인공 다니엘이 질병수당 담당 공무원과 상담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대화 목적은 다니엘의 질병수당 신청으로, 공무원은 심장병이 있는 다니엘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며 그의 장애 정도를 측정하고 그것을 수치화한다. 하지만 이 공무원은 다니엘의 주치의가 아니라 그저 정부에서 고용한 파견 업체의 의료전문가인 탓에 다니엘이 어떠한 위험에 처해 있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다. 그렇게 3분 남짓의 응답으로 평가된 다니엘의 점수는 12점. 수당을 받을 수 있는 15점에 다소 못 미치는 점수다. 다니엘은 자신의 점수를 보고 황당함과 분노를 느끼며 당국에 항의 전화를 보낸다.


   다니엘의 황당함은 근거가 명확하다. 얼마 전 그는 일을 하던 도중 심장마비로 추락사할 뻔했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일을 쉬고 질병수당을 신청했는데, 정부가 그런 그에게 ‘근로 능력이 있다’고 대답한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니엘이 질병 점수로 고작 12점 밖에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로지 신체 기능만을 장애의 척도로 삼는 정부의 기준 앞에서 심장병으로 쓰러질 ‘가능성’은 장애가 될 수 없다. ‘충분히 죽을 수 있지만 신체 능력엔 문제가 없기에’ 그는 일을 해야 한다. 심장병이 있다는 항변은 가볍게 묵살된다. 아무리 항의해도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점수가 그런데 어떡하나요?”라는 정부의 황당한 답변뿐이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중 다니엘이 전화로 심사 결과를 항의하는 장면


영국의 복지 시스템과 효율 불가의 복지


   영국의 사회복지 시스템은 그 절차가 매우 까다롭기로 악명 높다. 다니엘이 그러했듯 상담원과 통화하기 위해서는 기본 1시간을 대기해야 하고, 수당을 신청한 수급자는 하염없이 상담원의 전화를 기다려야 하며, 설사 신청이 완료되어도 명단에서 제적당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무능력을 증명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컴퓨터를 쓸 줄 모르는 노인, 아이 둘을 데리고 생전 처음 온 지역에서 길을 헤맨 엄마의 사정은 고려되지 않는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문구를 선전하며 복지국가에 앞장섰던 영국의 과거 행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대체 어쩌다가 영국에서는 이런 복지 행정의 결함이 발생했을까?


   그 원인의 끝에는 2012년 복지개혁법의 제정이 있다. 이 법의 골자는 국민들이 일을 하게 하는 유인체계를 만들어 노동공급과 소득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1970년대 필요 이상의 복지 예산 지출로 경제 패닉을 겪었던 영국의 지난 시절을 배경으로 제정되었다. 고복지, 고비용, 저효율의 ‘영국병’으로 발생한 경기침체를 극복하고자 복지 혜택의 수급조건을 강화하고, 임신보조금과 아동출연기금 및 교육유지수당의 추가 지원을 폐지해 정부의 재정 지출을 줄인 것이다. 그렇게 영국 내 시민과 행정은 멀어지고, 사람들은 형식에 시달리다 실질적인 도움을 포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즉 효율과 경제의 논리가 사람들의 생존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복지와 효율은 결합할 수 없다. 애초에 복지와 효율의 목표가 다르기 때문이다. 복지가 모든 사람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데서 출발한다면, 효율은 사람의 쓸모를 평가한 뒤 그들을 알맞은 곳에 배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복지와 정면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구나 효율은 모든 인간을 수치화된 신체 능력과 노동 가치로 평가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정부의 매뉴얼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매뉴얼을 통해 개개인을 수치화하고 그 점수를 바탕으로 어디에 무엇을 투자할지 결정한다. 도움받는 개인의 사정은 고려 대상에 없다. 인간의 존엄은 배제되고, 개인은 하나의 항목으로서만 명단에서 기능한다.


   매뉴얼의 허점이 바로 여기서 발견된다. 매뉴얼은 효율을 위한 신체능력 평가에만 집중할 뿐 그 이외의 모든 것들은 예외로 탈락시켜버린다. 심장병으로 죽음을 예고 받았지만 아직 일은 할 수 있는 다니엘의 경우가 그렇다. 효율의 그물망은 나름 촘촘하게 그를 평가하는 듯하지만, 결국에는 어떠한 도움도 제공하지 않은 채 그를 그물망 밖으로 추락시켰다. 그가 받고 있던 주택 수당을 끊고 제재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컴퓨터로 구제 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지원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영화의 결말부에서 다니엘은 상담원에게 자신의 상황이 ‘수치스럽다’고 말한다. 이 제도가 자신을 모욕하고 있다고, 더는 이 짓을 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전산 시스템의 숫자와 번호로만 판단하는 이 시스템이 그에게 수치와 모욕을 안겨준 것이다. 그렇게 다니엘은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다 잃는 거라오.”라는 대사를 남기며 자리를 떠난다. 이때 문장 속 ‘자존심’을 ‘존엄’으로 바꿔보면 그 의미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다 잃는 거라오. 이 한 마디가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주제를 대변한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중 다니엘이 상담원 앤에게 자신의 박탈감을 이야기하는 장면


한국의 장애인등급제와 소외되는 개인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영화 속 이야기와 비슷한 사례가 한국에도 있다. 바로 2019년 폐지된 장애인등급제다. 그러나 2년 전에 폐지된 제도를 ‘있었다’고 표기하지 않고 ‘있다’고 표기한 것은, 아직 제도가 단계적 폐지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정부는 장애인을 장애의 정도가 심한 경우(1·2·3급)와 심하지 않은 경우(4·5·6)로 분류한다. 두 등급에 할당된 점수를 기준으로 지원의 정도를 일괄적으로 결정한다. 이 제도의 문제점은 앞선 영국의 경우와 동일하다. 장애인등급제는 누구에게 얼마나 어떻게 무슨 도움이 필요한지의 문제를 우리의 눈앞에서 감춰버린다.


   간단한 예를 들어볼까. 파킨슨병으로 사지마비가 진행 중인 환자가 있다고 치자. 그는 언제고 몸이 굳어버려 위험천만한 상황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일을 해서는 안되지만, 연금공단에서는 그럼에도 그가 당장은 노동 가능한 몸을 가지고 있기에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다고 판단, 필요한 지원을 충분하게 제공하지 않는다. 이렇게 아직 남아있는 장애인등급제는 점차 복지의 목적에서, 시민의 존엄에서 멀어져간다. 인간을 수치화할 수 있다는 믿음 아래에서 시민은 그저 건강보험 번호와 일련의 항목에 불과하다. 제도화된 전산시스템을 통과하면 사람이고 통과하지 못하면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만약 그 지원자가 다니엘처럼 전산시스템에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제도의 그물망 밖에서 사람은 결코 사람대접을 받을 수 없다.


   지난 18일, 중앙대학교 인권센터에 열린 휴먼북 프로그램에서 장혜영 의원은 ‘얼마만큼 도와야 하느냐’는 필자의 질의에 ‘필요한 만큼 도와야 한다’고 대답한 바 있다. 정의당 차별금지법제정 추진본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그의 위치에서 현재 들을 수 있었던 가장 인상적인 답변이었다. 그의 말이 옳다. 한 명의 사람이 하나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사회는 필요한 모든 도움을 그에게 제공해야 한다. 신체 능력과 장애를 점수로 판가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정을 듣고 그들에게 전문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서류 전형에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의 특징을 고려해, 유연하게 매뉴얼을 조정하고 지원 기준을 넓힐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전문가를 더 많이 고용하고 그들이 현장에서 목격한 것들을 정책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항목들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 기본적인 것들을 못 해서 지금의 한국 사회는, 영국 사회는 복지국가라는 이름이 민망한 사회가 되었다. 더 많은 다니엘의 죽음을 막기 위해 이제라도 사회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효율은 불가하다. 우리는 더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그러나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그들의 생활을 유지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만이 사회 밖으로 추락한 수만 명의 다니엘을 구조하는 유일한 방법이 될 것이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중 다니엘이 항고를 요구하며 건물에 글을 쓰는 장면


나, 다니엘 블레이크. 굶어 죽기 전에 항고일 배정을 요구한다.




자료 출처 : NAVER MOVIE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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