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적 종교 체험의 정체 탐구 ①

by 서재원

양가적 속성, 이원성, 대비는 어디서나 발견되는 개념이다. 종교에서는 과거와 현재, 전통과 개혁이 동시에 존재함을 볼 수 있다. 변화는 기존의 것 없이는 성립될 수 없는 단어다. 일부 종교들은 같은 뿌리에서 탄생했고 갑작스럽게 등장하지 않았다. 아브라함과 야훼의 관계가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업보의 소멸로 인간 삶에서의 해방이라는 베다 사상이 불교와 힌두교가 이야기하는 세계관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연결성과 변화 가능성을 고려하면, 한 문화에서는 확고히 단일하게 보이는 궁극도 하나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른다. 가는 길 뿐만 아니라 목적지가 여러 곳일 수 있는 것처럼 궁극의 진리, 영원마저 여러 종류일 수 있다.


한 종교 내의 궁극의 진리는 다른 종교에서는 생경한 논리와 감각으로 다가간다. 인간의 삶은 태어나 죽는 과정으로 같은데 궁극의 진리는 왜 다른 형태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일까? 형태는 달라도 상위 관점에서는 하나로 수렴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을까? 물리학에서 더 큰 상위 이론인 M이론의 등장으로 개별 주장이었던 초끈이론들이 M이론의 사례들로 묶이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다양한 종교에서 높은 확률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은 방향성과 초월성이다. 인간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그 양태는 고립이 아닌 확장이다. 확장은 기존 세계를 넘어서야 가능하므로 다르게는 초월이라고 볼 수도 있다. 초월은 기존 감각에서 벗어나는 이탈과 다른 세계와의 연결이라는 두 속성을 동시에 가진다.


관련된 종교 체험도 여러 형태가 있어왔다. 신비 체험, 계시, 깨달음, 신 내림 등 다양하다. 이러한 초월적 체험이 종교의 필수 요소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어떤 측면을 보느냐에 따라 종교는 다르게 정의되고 분석되며 종교 밖에서도 이러한 체험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 또는 영적 존재와 초월적 교감을 하거나, 강렬한 영적 경험이 종교 탄생의 결정적 사건이 되거나, 혜안을 얻어가는 중에 다양한 임계 체험을 하고 마침내 깨달음에 이르게 됨을 볼 때, 종교 체험이나 체험 서사는 종교에서 변함없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의 비현실적 체험이라는 특징 때문에 논의의 한계가 있다. 다행인 것은 종교 심리학 등에서 종교 체험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인지 과학과 종교에 대한 유물론적 관점의 발전이 종교 체험을 물질적 차원에서 논의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주었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다양한 종교 체험 중 ①아브라함 계열의 종교들을 통해 특정 종교 체험의 형태들을 알아보고 ②’ 초월적’, ‘영적’과 같은 비일상적 범주의 단어와 쓰임새, 다양성 등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③비일상적 범주의 ‘실재성’에 대해, ‘생각’에 대해 물질적 관점에서 논의해 보고 ④어떠한 것이든 현실에서 구현해 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조건에 대해 논의해 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종교 경험이 ⑤보편적으로 열려 있는 경험인지, 어떤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종교 체험은 초월 의식 변형 상태를 의미하는 신비 체험만이 아니라 신자의 찬미, 헌신 등의 마음, 정서 변화도 포함하는 용어지만 이 글에서는 유물론적 접근의 일환으로 초월적 종교 체험을 언급할 때 ‘신비 체험’ 대신 좀 더 기계적이고 서술적인 ‘종교 체험’ 또는 ‘비일상적 종교 체험’이라고 언급하고자 한다.




아브라함 계열 종교의 종교 체험 특징

아브라함 계열 종교인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종교 체험은 연결성과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사례 중 하나인데 특히 개인 체험에서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인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예시로 들 수 있다. 아브라함이 경험한 야훼와의 만남은 고대 이스라엘 예언자들에게서 반복된다. 제사장 가문의 자손이었던 예레미야는 야훼의 부름을 받는다.


“그들의 소명은 야훼로부터의 직접적인 부름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한다. “야훼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모태에서 네 형태를 만들기도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너를 구별하여 온 세상의 예언자로 이미 세웠다.’”(「예레미아」 1:4 이하)”[1]


휴스턴 스미스는 “고대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종교 체험이 현대 심리학자들에게는 집단적, 자기 유도적 황홀경의 한 형태로 평가될 것”이라고 말한다. “음악과 춤의 도움으로, 예언자 무리는 스스로를 광란의 상태로 몰아갔다. 그들은 신성한 도취의 집단적 바닷속에서 자의식을 잃었다.”[2] 엘리아데도 예언자 집단 형성의 과정을 설명하며, 엑스터시 체험을 언급한다. [3]


실제로 유목 시대의 ‘선견자’ 제도는 이스라엘인들이 팔레스타인을 정복한 후에 발견한 나빔의 영향을 받아 변형된 것이었다. BC 1000년 무렵에는 야훼 신앙의 ‘선견자들’과 나빔이 공존하고 있었다. 점차 그 두 제도는 융합되었고, 그 결과 『구약성서』의 고전적인 예언자 집단이 형성되었다. 나빔처럼 예언자들은 성소나 제의와 연결되어 있었으며 엑스터시 체험을 했다.


엘리아데에 의하면 고대 이스라엘 예언자는 왕실 성소 제의에 참여한 궁정 예언자들과 위대한 성서의 예언자들로 나뉘는데 후자는 종교적 직업인으로서가 아니라 특별한 부름을 받은 자로서 메시지를 선포했다. [4] “모든 위대한 예언자들은 그들이 받은 소명의 진실성과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의 긴박성을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확신한다. … 신성한 영혼에 사로잡힘 [빙의]은 때로 엑스터시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엑스터시적 흥분이나 트랜스가 필수적인 것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5] 그러나 “북이스라엘 왕실 예언자들은 바알 예언자들처럼 열광적 행동(ecstatic behavior)을 하거나 역대기 전승의 예루살렘 왕실 예언자들은 모두 이스라엘의 계약전승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메시지를 전했다.”[6]는 기록을 보면 엘리아데가 이야기한 예언자들의 특징이 뚜렷하게 나눠져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예언자 집단은 이후 개인화 되어 황홀경을 경험하지만 윤리를 강조하고, 부패한 사회 제도에 도전하는 양상으로 변화한다. [7]




예수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억압받던 유대인들의 운동 중 한 분파의 지도자로 활동하다 요한의 세례를 받는다. 이 세례는 예수에게 특정 영적 경험을 하게 한다. 휴스턴 스미스는 예수가 영으로 가득 찬 중재자들의 유대교 전통에 서 있었다는 것이 그의 역사적 생애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사실이라고 이야기한다. [8] 이 전통에서 그의 직접적인 선임자는 세례자 요한이었다. 그의 영적 힘을 보여주는 증거는 예수에 대한 그의 입문식(세례)이 아시아인들이 말하는 제3의 눈 또는 영적인 눈을 열게 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예수는 ‘하늘이 열리고 영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내려온 영은 예수를 광야로 ‘몰아넣었고’, 그곳에서 사십 일간의 기도와 금식을 통해 자신 안에 들어온 영을 공고히 했다.


한 신약 학자는 역사적 근거로 볼 때 예수가 치유자이자 귀신 축출자였다는 것은 사실상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말하고 휴스턴은 예수가 자신의 시대와 장소를 넘어서 살아남게 된 것은 자신을 통해 흐르는 영을 자신의 민족부터 시작하여 인류를 치유하는 데 사용한 사랑과 자비에 중심을 둔 방식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9]




이슬람교의 탄생을 이끈 예언자 무함마드는 동굴에서 명상 생활을 하다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알라의 계시를 받는다. 다음은 무함마드가 첫 계시를 받기까지의 과정이다.


"메카 외곽의 히라 산에는 한 동굴이 있었고, 고독이 필요했던 무함마드는 그곳을 자주 찾기 시작했다. … 정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야만성, 미신, 형제 살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는 … 신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 종종 밤새도록 지속되는 기도를 통해 알라의 실체는 무함마드에게 점점 더 명백하고 경이로운 것이 되었다. … 무함마드의 동굴 방문이 점점 더 강렬해지며, 그가 후에 숙명으로 보았던 명령이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전에 아브라함, 모세, 사무엘, 이사야, 예수에게 떨어졌던 바로 그 명령이었다. … 하늘에서 떨어지는 목소리가 말한다. "네가 선택된 자다." … 첫 번째 힘의 밤(Night of Power)[10], 무함마드가 동굴 바닥에 누워 가장 깊은 명상에 잠겨 있을 때, 한 천사가 남자의 모습으로 그에게 나타났다. 천사는 그에게 말했다: "선포하라!" 그러자 그는 "나는 선포자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무함마드에 따르면, "천사는 나를 붙잡아 내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품에 안았다. 그런 다음 나를 놓아주고 다시 '선포하라!'라고 말했다. … 황홀경에서 깨어나 무함마드는 들은 말씀이 자신의 영혼에 새겨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두려워하며 집으로 달려가 발작 상태에 빠졌다. [11]"




성전 기반의 이스라엘 종교 특성 덕분에 고대의 영적 체험 형태가 이어져 내려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브라함 계열의 종교 전통에서 나타났던 예언자 또는 창시자들의 종교 체험은 유일신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 체험은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받는 형태로 사회, 정치적 영향을 주는 행위로 이어졌는데 이러한 영향력은 초월에 대한 감각과 개념이 광범위하게 퍼지게 했다. 이러한 종교 체험은 실제로는 주변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광범위한 영향력과는 달리 기록에서 보듯이 특정 집단이나 소수만이 이러한 경험에 접근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 문화권을 벗어나 베다 철학의 사고방식이 적용되었던 인도 문화권에서는 종교 체험이 유일신을 만나 계시를 받는 형태가 아닌, 삶의 궁극적 원리를 깨우치는 깨달음, 해탈의 형태로 경험된다. 이 두 대비되는 세계관과 종교 체험을 마주하면, 초월 세계도 인간이 오랜 시간 만들고 조정해 온 것으로 보인다. 초월 세계는 인간이 만든 것일까?




비일상적 종교 체험의 의미와 다양성

종교 체험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다. 일부 사람들만 경험하고 형태도 다양하다. 웃음은 모두 경험하기 때문에 모두가 이해하는 경험이지만, 종교 체험은 그렇지 않다. 연구를 위한 신빙성과 공동 이해에서부터 제한되어 있으나 초월 세계에 대한 관념은 경험 유무를 떠나서 더 광범위하게 공유된다.


신비 체험은 일시적으로 변성된 초월적 상태다. 초월超越은 두 한자 모두 뛰어넘다는 뜻을 가지며 어떤 영역을 넘어서는 것을 의미한다. 종교에서는 신, 무한한 존재나 세계, 근원 등을 가리킬 때 초월적 존재 또는 세계라고 언급한다. 또는 인간의 일반적 범주를 넘어선 경험을 설명할 때 초월적 경험이라고 이야기한다. 신에 대한 무수한 논의 및 정의와 연결되어 있고 인간의 일상 경험과 대비되는 넓은 스펙트럼을 지닌다.


엘리아데는 종교 역사의 목표를 “인간 경험에서 초월적인 것의 현존을 식별하고, ‘무의식’의 광대한 덩어리 속에서 초의식적인 것을 분리하고 … 일상생활에서 초월적이고 초역사적인 것의 현존을 ‘벗겨내는’ 것”(엘리아데 1982: 148에서 인용된 오토)[12]이라고 언급하며 초월 감각을 일상에서 분리시켰다. 바스케즈는 “초월은 ‘인간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심지어 보편적일 수 있는 것으로 관심을 받을 만한’ 것이지만, ‘이것이 신론이나 신적 존재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테이브스 2009: 14). 하이데거적 언어를 사용하자면, 현존재 운명의 일부인 타자성은 인간을 초월을 향해 열어준다. 그러나 이 초월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며, 그중 일부는 특정 역사적 시점에 종교로 정의되게 된다.”[13]라고 이야기했다. 그에 의하면 초월은 타자성에서 비롯되어 보편성을 지니고, 한 가지 현상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종교 개념의 탄생 전에 존재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신비적, 정신적, 종교적과 유의어 관계인 영적靈的(영의 성격을 띠는)에서 영靈은 신령, 영혼, 귀신, 정기, 정신, 감정, 무당, 하늘, 영적인 존재 등 다층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영적인 존재, 영적 체험, 영성 등 다양하게 쓰인다. 영적 체험은 사전 정의에 의하면 신령스러운 또는 정신이나 영감을 통한 경험이라고 한다. 이 단어는 모든 종교에서 쓰이지 않고 비슷한 종류를 가리키는 동의어 역할도 하지 않는다. 기독교에서는 신의 계시, 은총, 기적 등 영적인 체험을 묘사한다. 무교에서는 신 내림, 접신, 신병, 영 등으로 주로 언급된다. 불교에서는 깨달음이나 삼매, 선정, 선(禪) 등 체험을 묘사하는 단어가 있다. 영적 체험은 모든 종교 체험이나 초월적 체험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동서양 종교들의 다양한 비일상적 체험들을 합일 체험이라 보고 비교하고자 했던 학문적 견해는 몇 가지로 나뉜다. 신비적 합일 체험이 모든 종교에서 찾아볼 수 있는 보편적 현상(동일한 체험이 문화적 맥락에 따라 달리 표현되고 문화적 맥락을 초월하는 인간 경험이 가능하다고 주장)이라고 보는 보편주의, 문화적 맥락의 차이가 체험의 차이를 만든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보는 구축주의(문화 맥락이 체험 내용 자체를 결정짓는 것으로 봄), 마지막으로 체험 해석과 표현에 체험자의 개인적/사회적 맥락이 영향을 끼친다고 보는 맥락주의로 나뉜다. [14] “변형의식상태(Altered States of Consciousness) 개념을 활용한 종교 심리학 연구에서는 합일 체험 유형에 대해 내향적/외향적 유형, 지복(至福, bliss)의 유무, 합일 의식 상태의 지속 여부, 훈련의 유무 등 네 가지 기준을 제시했고, 이는 합일 체험 유형이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15]


이처럼 비일상적 종교 체험은 다양한 형태와 언어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일반적 감각으로는 접근하기 힘든 종교 체험은 과학으로 검증하기 힘들기 때문에 더욱 접근이 힘들다. 화학, 물리 등은 원자, 분자구조, 양자, 상대성이론 등 인간이 보편적으로 감각하기 어려운 세계를 설명하지만 보편적 현상과 원리이기 때문에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접근 및 이해가 가능하게 되었다. 역사에서는 꾸준히 반복되어 왔던 이러한 체험이 여전히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는 신비로 남아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의 관점은 어디까지 이러한 경험을 분석할 수 있을까?





참고문헌

[1] 미르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 『세계종교사상사』 1: 석기시대에서부터 엘레우시스의 비의까지, 이용주 옮김 (서울: 이학사, 2005), 522.

[2] Huston Smith, The World’s Religions: Our Great Wisdom Traditions, (Harper San Francisco, 1991), 290.

[3] 엘리아데, 『세계종교사상사』 1, 520.

[4] 엘리아데, 『세계종교사상사』 1, 522.

[5] 엘리아데, 『세계종교사상사』 1, 523.

[6] 박해령, 「고대 이스라엘 초기 예언자들의 역할에 대한 연구」, 『서양고대사연구』66 (2023): 44-5.

[7] Huston, The World’s Religions, 290-93.

[8] Huston, The World’s Religions, 322.

[9] Huston, The World’s Religions, 322-23.

[10] 코란이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처음 계시된 밤을 기념하는 신성한 밤

[11] Huston, The World’s Religions, 224-26.

[12] Manuel A. Vasquez, More Than Belief: A Materialist Theory of Religion (Oxford University Press, USA, 2010), 102.

[13] Vasquez, More Than Belief, 116.

[14] 성해영, 「동서양 종교 전통의 ‘신비적 합일 체험’은 동일할까? 보편주의와 구축주의의 논쟁을 중심으로」, 『종교문화연구』31(2018), 4-10.

[15] 성해영, 「동서양 종교 전통의 ‘신비적 합일 체험’은 동일할까?」, 14, 내향형은 오감 인식 작용이 없는 경험을 뜻하고 지복 유무의 구분은 합일 체험에 희열 혹은 기쁨과 같은 정서적 차원이 포함되는가를 판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