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영화 리뷰

by The Seoul Cinema Scene

평점: 3 / 5


홍상수는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독특하면서도 논쟁적인 인물이다. 장편만 30편이 넘는 그의 방대한 필모그래피를 따라가다 보면, 감독에 대한 나의 감정은 자연스레 그의 영화가 가진 속성과 닮아간다. 존경과 피로, 감탄과 짜증이 묘하게 뒤섞인 이 감정은, 방금 본 작품이 조용한 울림을 남긴 수작인지 아니면 매너리즘에 가까운 자기 반복인지 쉽게 단정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 후》는 내가 마주한 홍상수의 세 번째 작품이다. 2017년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통해 처음 경험했던 그의 미니멀한 연출과 날것의 감정, 그리고 관객을 은근히 엿보는 위치에 세우는 시선은 꽤나 강렬했다. 그 절제된 형식과 대담한 솔직함은 오랫동안 잔상을 남겼다. 그러나 작품을 거듭해 볼수록, 그가 구축한 견고한 문법은 역설적으로 감흥의 유효기간을 점점 단축시키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영화의 중심에는 지성과 품위라는 가면을 쓴 중년 남성(권해효 분)이 있다. 홍상수는 그를 변호하지도, 노골적으로 비난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의 허약함과 이기심, 그리고 비겁한 민낯을 집요하게 응시한다. 여기에는 불편할 만큼 솔직한 태도가 있다. 감독의 개인적 스캔들을 차치하더라도, 영향력 있는 중년 남성과 젊은 여성의 관계라는 반복적 구도는 자전적 고백을 넘어 거의 ‘자기 폭로’에 가깝게 읽힌다. 어떤 순간에는 결점을 외면하지 않는 예술가의 용기로 보이지만, 또 어떤 순간에는 충분한 성찰 없이 자신의 도덕적 실패를 재연하는 듯한 불쾌함을 남긴다.


흑백의 영상은 이 영화의 정서를 떠받치는 중요한 장치다. 색채를 제거함으로써 인물 간의 거리와 감정의 공백은 더욱 또렷해진다. 다만 조명의 설계가 치밀하게 계산된 느낌은 크지 않다. 몇몇 장면에서는 과다 노출에 가까운 화면이 몰입을 방해하며, 형식적 선택이 충분히 활용되지 못한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택시 안에서 눈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는 김민희의 얼굴을 비춘 장면만큼은 단연 인상적이다. 차량 내부의 단 하나의 빛이 만들어내는 명암 속에서, 찰나의 누아르적 낭만과 홍상수 특유의 절제가 절묘하게 맞물린다. 영화 전체에서 가장 사색적이고 아름다운 순간이다.


홍상수 영화의 핵심 동력이라 할 수 있는 술자리 장면은 이번에도 반복된다. 식사와 소주를 사이에 둔 긴 대화는 노골적인 갈등보다 더 많은 진실을 끌어올린다. 특히 후반부, 하루만 근무했던 직원과의 재회는 조용하지만 잔혹하다. 여자는 그날의 기억을 또렷하게 간직하고 있지만, 남자는 거의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않은 채 자신의 근황을 늘어놓는다. 기억하는 자와 잊는 자 사이의 비대칭. 이 지점이야말로 《그 후》가 가장 날카롭게 파고드는 통찰이다.


문제는 반복이다. 커피, 술, 또 다른 식사. 처음에는 주제적 변주처럼 보이던 장면들이 점차 서사의 정체로 다가온다. 감정이 확장되기보다는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며, 초반의 긴장과 친밀감은 서서히 희석된다. 여기에 홍상수 본인이 맡은 음악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장면의 무게를 가볍게 만든다. 긴장과 우울을 심화하기는커녕, 때로는 아마추어적 인상을 남기며 감정의 고조를 평평하게 눌러버린다. 몇몇 장면에서는 음악이 침묵보다 못한 선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완전히 부정하기는 어렵다. 권해효가 연기한 인물의 습관적인 거짓말과 현실 왜곡은 파편화된 편집과 맞물리며, 기억과 진실이 뒤엉키는 독특한 체험을 만들어낸다. 전통적인 완성도나 세련된 가공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태도, 자신의 집착과 결함을 거의 무심하게 스크린 위에 드러내는 방식은 여전히 도발적이다. 그는 자신의 반복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그 안에 스스로를 가둔다.


결국 《그 후》는 홍상수식 변주의 연장선에 있다. 그의 정직함에 끌리면서도 반복에 지치고, 인상적이라 느끼면서도 어딘가 허탈해지는 이 기묘한 밀고 당김은 여전하다. 그는 여전히 답답하고, 때로는 스스로의 강점을 스스로 무너뜨린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영화에는 가공되지 않은 자의식과 조용한 잔혹함이 공존한다. 쉬운 카타르시스를 거부하는 대신, 결함 많고 이기적인 인간의 민낯을 집요하게 드러낸다.


나는 이 영화를 온전히 즐겼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심히 지나칠 수도 없다. 어쩌면 그 애매하고 불편한 중간 지점이야말로, 홍상수가 관객을 기어이 머물게 하고 싶어 하는 자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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