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무리

엄마 밥이 먹고 싶어

by 단려


“따르릉따르릉”

이른 아침, 전화벨이 울렸다. 보통 이런 시간의 전화는 급한 소식일 때가 많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시어머니였다.

“내다. 별일 없으면 이번 주말에 아이랑 같이 들어와라.”

짧고 일방적인 말씀이었고, 곧바로 전화는 끊겼다.

저녁에 퇴근한 신랑에게 어머님의 전언을 전했지만 남편은 대꾸가 없었다.

남편과 나는 주말에 읍내 과일 집에서 과일을 사 본가로 들어갔다. 그 당시는 자가용이 없어 시외버스를 타고 읍에 내려 몇 가지 장을 본 후 시댁 동네로 가는 택시를 타야 했다.

본가에 도착했지만 어머니는 경로당에 가셔서 뵐 수 없었다. 나는 왜 불렀는지 궁금했지만, 남편은 집안을 기웃거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경로당에서 돌아오신 어머니는 우리의 인사를 받고 나에게 점심을 차리라고 하셨다.

부엌으로 들어갔지만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나는 살림살이를 잘 알지 못했다. 어머니가 대충 꺼내주시는 반찬을 챙겨 둘러앉아 식사를 했다.

나는 젓가락을 들었을 뿐 식사를 할 수 없었다. 밥상에는 감자 몇 개 띄워진 뻑뻑한 된장과 밭에서 뜯은 상추로 겉절이를 하고 묵은 김치만 있을 뿐이었다. 거기에 밥은 보리쌀과 도정을 덜 한 쌀로 밥을 한 시커먼 밥이었다.

남편은 밥이 맛있다며 어머니에게 밥 한 그릇을 더 받아먹었다.

“우리 아들은 반찬이 없어도 이렇게 밥을 잘 먹는다. 아주 성격이 좋은 아이야.”

밥을 받는 남편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며 밥을 떠 주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나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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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이 있은 후, 이번에는 친정에서 우리 내외를 불렀다.

주말이 되어 친정을 간 우리는 한 상 잘 차려진 음식을 먹었다. 물론 그곳에서도 신랑은 음식을 잘 먹었다.

“장모님, 잡채는 저희 시골에서 잔칫날에나 먹을 수 있어요. 무척 맛있습니다.”

남편은 친정어머니가 차려준 음식이 맛있다고 말하며 연거푸 엄지를 올렸다.

“집에 갈 때 좀 싸 줄 테니 많이 먹게. 음식을 잘 먹는 모습을 보니 보기에도 좋구나.”

친정 엄마는 생선 가시를 발라 남편의 수저에 올려주며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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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 어머니를 만난 후 나는 가끔 남편에게 투정을 했다.

시어머니는 우리가 갈 때마다 새로운 음식을 사놓거나 해 놓는 일은 없었다. 늘 된장에 그때 밭에 있는 채소를 뜯어 겉절이를 하거나 삶아 무친 음식이 전부였다. 반면에 친정엄마는 늘 새로운 반찬 몸보신 할 수 있는 음식을 차려주시고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셨다. 그 차이가 늘 불만스러웠다. 하지만 세월은 흘러 두 분 다 노령으로 세상을 마감하셨다.

이제는 내 차례였다. 잘하는 반찬은 아니지만 매 끼니 친정엄마가 했던 것처럼 반찬을 굽고 조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시어머니가 했던 것처럼 신선한 채소로 겉절이를 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차려진 밥상에서 두 아들을 키웠고 아이들이 객지로 나가자 이제는 남편과 둘이 식탁을 지켰다.

얼마 전 방학을 맞아 두 아들이 집에 내려왔다. 오랜만에 차린 저녁상에 온 가족이 둘러앉으니 마음이 벅찼다. 나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훗날 엄마 하면 어떤 음식이 떠오를까?”

아이들은 잠시 눈을 마주치더니 말했다.

“그냥 이런 밥상이요. 항상 푸짐했고, 고기반찬이 많았던 것 같아요.”

옆에서 묵묵히 밥을 먹던 남편에게도 물었다.

“당신은 어떤 음식이 먹고 싶어?”

조용히 숟가락을 내려놓은 남편이 말했다.

“나는… 엄마 밥이 먹고 싶어. 우리 엄마.......”

밥상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작은아이가 말했다.

“아빠, 할머니 밥이 먹고 싶은 거예요?”

“그래. 아빠는 클 때 너희들처럼 이렇게 고기반찬을 먹고 크거나 하지는 못했어. 반찬은 없지만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먹는 밥. 그 밥이 제일 맛있었단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시댁 밥상에 불평하며 진정한 가족이 되는 법을 배우지 못했었다. 어머니의 된장국과 상추겉절이, 친정엄마의 잡채와 생선, 그리고 내가 차린 고기반찬까지.......

그 모든 밥상은 다르지만 같은 사랑이 담겨 있었다.

오늘처럼 온 식구가 모이니 남편은 엄마 생각이 많이 나는 것 같다. 남편의 말이 마음속에 오래 남았다. 반찬의 가짓수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함께 둘러앉아 먹는 밥상, 그것이 진짜 가족의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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