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장미 _ 스카겐 학파의 대표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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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는 가장 화려하며 대중적인 꽃이다. 동시에 그만큼 나만의 이야기가 많기도 하다. 호텔의 스위트룸과 연회장을 장식하는 화려한 꽃잎이나 여느 공원에서든 여느 주택 담장에서든 볼 수 있는 빨간 장미는 ‘꽃’ 하면 쉽게 생각되는 일상적인 이미지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각자의 사연을 더한 특별한 추억의 꽃이 되기도 하는데, 첫 고백을 위해 꽃집 앞을 쭈뼛거리다 집어든 장미 한 다발이나 수백만 송이 장미원의 강한 향기는 쉽게 잊히지 않을 나만의 이야기가 된다.
옛부터 자생하던 야생장미(Wild Rose)는 여러 모양으로 분화되며 사람들의 삶에 가까워졌다. 찔레나 인동덩굴등 비슷한 종류의 장미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작되었을 것이나, 현대적인 의미의 장미를 칭하는 것은 서양이 시초라고 볼 수 있다.
고대와 중세를 거치며 여러 형태로 자생하던 야생장미(Wild Rose)를 정원에 키우게 되었는데, 이는 강한 향기가 매력적인 고대 장미(Old Rose)로 불린다. 19세기 사계절에 걸쳐 피는 장미가 도입되고 특히, 중국의 월계화와 접목된 형태가 개발되면서 현대 장미(Modern Rose)의 모태로 발전하게 된다. 현대 장미는 보다 다양한 색상과 풍성한 꽃잎이 특징적인데, 종자 배합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전에 볼 수 없는 신비로운 색상의 장미들도 개발되고 있다
장미는 고대로부터 ‘꽃들의 여왕’이라고 불리며 독보적인 존재의 꽃이었다. 특히, 고대 로마 시대에는 비너스를 상징하고 기독교 시대에는 성모 마리아를 나타낼 만큼 의미 있는 꽃이기도 하다. 장미 하면 떠 오르는 빨간색도 비너스에서 비롯되었다는 전설이 있는데, 큐피드의 화살을 맞고 아도니스와 사랑에 빠진 비너스가 그를 구하기 위해 달려들다 장미 가시에 찔려 흘린 피가 하얀 장미를 물들여 붉게 변했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여러 종류의 야생화를 장미로 부르곤 했었는데, 찔레꽃에서 유래된 야생화나 해당화, 월계화, 청간화 등을 장미로 칭하였다. 특히, ‘3월, 6월, 9월, 12월’ 사계절에 걸쳐 꽃을 피운다고 하여 사계화라 불리기도 했다. 사계화는 조선시대 원예가로 유명한 강희안이 쓴 원예서 ‘양화소록(養花小錄)‘ 에 등장하는데, 특히 그의 정원에 가장 많이 키운 꽃일 만큼 커다란 관심을 둔 꽃이라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한국 장미들도 많은 경우 찔레꽃과의 접목을 통해 개량된 품종들이다. 찔레의 성질 때문에 한국 장미는 덩굴형으로 자라는 모습이 좀 더 익숙하다.
P.S. 크뢰이어의 그림에서 보는 하얀 장미는 우리에게 익숙지 않다. 한국의 많은 장미가 보통 무엇인가를 타고 오르는 덩굴형(Climbing) 장미임에 비해 크뢰이어의 장미는 여러 개의 굵은 줄기가 땅에서부터 시작되어 나무와 같이 서 있는 관목형(Shrub) 모양이다. 때문에, 장미는 독립적인 초화의 일종으로 이해하기보다, 담장이나 시렁을 타고 넘나드는 덩굴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근래에는 장미 정원을 중심으로 다양한 관목형 품종이 선보이고 있고 그 매력도 확산되고 있지만, 크뢰이어 그림의 장미처럼 커다란 개체를 보기는 쉽지 않다.
그림 속, 하얀색의 탐스러운 꽃을 자랑하는 이 장미는 ‘알바 막시마(Alba Maxima)’ 로 불린다. 오늘까지도 정원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품종의 하나이며 매우 아름다운 향기를 자랑하는 ’고대 장미(Old Rose)’에 속한다. 서양에서 하얀 장미 하면 떠올리는 전형적인 대명사로 ‘데카메론(Decameron)’을 쓴 이탈리아의 작가 G. 보카치오가 로마의 정원을 묘사하면서 그 아름다움을 칭송한 꽃이기도 하다.
‘알바 막시마’는 영국의 오랜 정원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스코틀랜드 저항시대의 추방된 왕 제임스 2세를 상징하여 요크가의 문장이 된 전통 있는 꽃이기도 하다. 그 후, 영국 왕위 계승권을 두고 싸웠던 하얀 장미 문장의 요크가와 붉은 장미 문장의 랭커스터가의 장미 전쟁에서 승리한 랭커스터가의 튜더가문 헨리 7세가 두 색상의 장미를 섞어 ‘튜더 로즈’라는 새로운 문장을 만들었고 지금까지도 영국 왕실의 문장으로 사용되는 역사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가장 대표적인 장미정원의 하나는 프랑스의 ‘말메종 장미원‘일 것이다.
나폴레옹 황제와 결혼한 황후 조세핀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짓고자 장미정원의 원형인 말메종(Malmaison) 정원을 만들었다. 당대의 식물학자와 정원가를 고용하여 250종이 넘는 다양한 장미를 모으고 키웠고 상당수는 아직도 그대로 아름다운 꽃과 향기를 자랑하고 있다고 한다. 장미를 향한 그 열정은 그녀가 고용한 화가 삐에르 조제프 르두테(Pierre Joseph Redoute)가 그린 100여 장의 장미 세밀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정원과 지역 축제의 활성화로 요즘 국내에서는 가까운 공원에서 다양한 장미원과 축제를 즐길 수 있다. 그중 대표적으로는 에버랜드의 장미원을 꼽을 수 있다.
1970년대 자연농원 시절 120종 3500송이의 규모로 시작된 에버랜드 장미원은 최근에는 700여 종 300만 송이 규모에 이르기까지 성장하였다. 단순히 여러 종류의 장미를 심고 가꾸는데 그치지 않고 약 30종의 신품종을 개발하였다고 하니 장미에 대한 세심한 정성을 볼 수 있다. 특히, 2022년에는 국내 최초로 ‘세계장미회(World Federation of Rose Societies)가 선정한 우수한 장미원 ‘어워드 오브 가든 엑설런스(Award of Garden Exellence)’에 뽑히기도 하였다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장미원이라 부를 만하다.
그 밖에도 전라남도 곡성의 ‘세계 장미 축제’나 서울 중랑천 일대의 ‘서울장미축제‘ 또는 부천의 ’백만 송이 장미축제‘ 등은 이미 유명한 지역 행사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럼에도, P.S. 크뢰이어의 ‘알바 막시마’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어려운 품종이다. 아무래도 ‘덩굴장미(Climbing Rose)’가 흔하거니와 붉은 장미를 선호하는 탓에 하얀색의 관목형 장미는 많지 않다.
대표적인 덩굴장미로는 ‘폴스 스칼렛 클라이머(Pau’s Scarlet Climber)’ 종을 꼽을 수 있다. 요즘에는 좀 더 향이 좋고 밝은 색상의 ’스칼렛 메이딜란드(Scarlet Meidiland)’ 품종이 인기를 끌고 있다. 메이딜란드 품종의 하얀색 버전인 ‘알바 메이딜란드(Alba Meidiland)’ 나 독일에서 온 사계장미 ’아이스버그(Iceberg)’ 가 찾아볼 수 있는 하얀색 장미이다.
알바 막시마와 같은 풍성한 향기를 기대하면 대표적인 영국 장미인 데이비드 오스틴의 ‘수잔 윌리엄스 엘리스(Susan Williams Ellis)’ 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꽃의 크기가 작고 모양이 풍성함이 다르지만, 덤불형의 찔레꽃이 전체적으로는 비슷한 모양이기도 하다.
장미의 원조라 할만한 찔레꽃이야 야산에서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좀 더 진한 향기를 느끼고자 하면 한강 고덕생태경관보전지역이나 경남 산청에서 열리는 찔레꽃 축제에 참가해 보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