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주의 그림과 정원 이야기 _ 프롤로그

그림에 나타난 정원의 인상을 좋아하는 조경가의 이야기

by Phillip Choi


‘태초에 하나님이 정원을 창조하시었으니, 그 이름은 에덴이었다. 물을 대지 않아도 사과나무가 자란 에덴은 인간이 타락하기 전, 평화와 기쁨이 넘치는 장소였으며, 물과 웃음이 가득한 향기롭고 비옥한 곳이었다. 아시리아 시대부터, 인류는 끊임없이 신화에 나오는 이러한 낙원을 재창조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 가브리엘 반 쥘랑 Gabrielee Van Zuylen. 세계의 정원. 시공사 >

< 에덴동산의 기억. 빈센트 반 고흐. 1888 >


인류 최초의 정원은 신이 창조하였다.

각종 열매 맺는 나무와 피는 꽃을 만들고 신을 닮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를 대신하여 다스리게 하였다. 신의 나라에서 인간의 땅으로 내려온 초기의 정원은 에덴의 기능을 본 따 먹을것을 기르고 짐승의 위협으로부터 거주지를 보호하는 집 앞의 뜰이었다. 뜰에는 여러 나무가 심겨 있고, 그 중 특별한 나무로부터 신의 성품을 찾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한 공통된 모습이다. 뱀의 꼬임에 빠져 금지된 생명나무 열매를 따 먹고 눈이 밝아지고 부끄러움에 숨었던 아담과 하와,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명상 중에 깨닳음을 얻고 중생을 구원하기 위한 고난의 길에 들어간 석가모니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커다란 정자목이 수백년간 마을을 지켜오는 수호신으로 역할하는 우리네의 구전되는 이야기도 익숙하다.

< 뱀의 꼬임에 빠져 생명나무 열매를 따 먹은 하와와 아담. 두오모 성당의 모자이크. 12세기 >


고대 이집트로부터 이슬람에 이르기까지 각 문화를 따라 먹거리 나무를 재배하거나 이상향을 표현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은 정원은 르네상스 시대에 부흥기를 맞게 된다. 절벽가의 빌라 위아래로 물이 흐르는 분수를 특징으로 하는 계단식 노단의 이탈리아의 정원, 커다란 성과 희귀한 식물을 기르며 권력의 정도와 그에 따른 향응을 자랑하고자 한 프랑스의 정원 그리고 여타 유럽의 기하학적인 정원과 달리 자연스러운 경관을 재현하고자 노력한 영국의 풍경식 정원 등 지금까지도 명맥을 이어오는 정원의 대표적인 양식이 등장한다. 산업혁명 이후로는 근대적 사회 구조가 자리잡으며 정원은 더 이상 특권층의 유희 공간이 아닌 대중이 쉽게 접근하여 즐길 수 있는 공공 정원의 형태로 바뀌게 된다. 프레드릭 옴스테드와 같은 사회적 조경가의 등장은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다양한 형태의 공원 발전을 가속화하며 소시민의 일상에서 쉽게 누릴 수 있는 자연으로서의 정원의 대중성을 확립한다.

< 센트럴 파크. 프레드릭 옴스테드 설계 >


신이 창조한 혹은 신을 위해 창조된 정원은 동경의 대상이 되었고, 인간은 정원을 그림으로 옮겼다. 인류 최초의 정원 그림은 이집트에서 발견되는데, 포도밭, 연못, 수목들이며 갈대와 파피루스 등이 그려진 무덤의 벽화에서부터 죽은자가 내세의 길을 잃지 않고 잘 가기 위한 정원의 모형까지 발전되는 모습을 보인다. 이후 로마 호르투스의 ‘쾌락의 정원(Pleasure Garden)’을 거치며 빌라와 정원이 함께 있는 풍경을 담아내는 일상 정원 그림의 틀이 구축되기 시작한다.

< 이집트인의 천국 ‘세켓트 아루(Sekhet-Aaru)’ 또는 ’진격의 밭(Field of Rushes)’ >


특히, 폼페이의 벽화에는 매우 자세하게 묘사된 테라스, 트랠리스 정원과 분수대를 볼 수 있는데, 당시 로마 사람들의 정원에 대한 열정과 관심을 확인 할 수 있다.

< 정원이 그려진 프레스코. 폼페이 벽화 >


이슬람의 창시자 마호메트의 낙원에는 사방으로 흐르는 물과 과일 나무가 풍성한데, 이슬람의 정원과 이를 옮긴 그림 모두 축복 가득한 신성의 세계를 담아내고자 하였다. 특히 알함브라 궁전 정원으로 대표되는 스페인 무어 양식의 부흥기에는 서양 문화와 접목된 화려한 이슬람 정원 풍경을 담은 여러 장의 그림을 생산해냈다.


< 이슬람 정원을 묘사한 사랑의 장미 정원. Gulshan-i ‘lshq. 1743 >


중세시대 높은 성안에 갇혀 있던 정원이 보카치오의 ‘데카메론’과 페트라르카의 시 등 문학 속에 묘사된 정원의 모습을 통해 다시 부흥하는 계기를 찾은 것처럼(한때 빈센트 반 고흐가 공공정원을 ‘시인의 정원’이라 명명하며 보카치오와 페트라르카를 동경하던 일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유럽 르네상스 문화의 융성과 함께 조경 예술에 대한 관심도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성경과 신화에 등장하는 이상향 정원을 그리던 그림은 정원을 조성하는 설계도로서의 정확도를 갖추거나 ‘내 정원’에 펼쳐진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신과 같이 높아지고자 하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 방식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권력자의 독점적인 정원 즐김이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확장되었을때, 우리는 사실주의적인 자연의 표현을 넘어 빛의 변화에 따른 찰나의 인상을 담아내는 화풍으로의 변화를 감상하게 된다. 이들은 ‘앙 플랭 에르(En Plain Air)’ 운동을 시작한 인상주의 화가들이다.

< 인상, 해돋이. 클로드 모네. 1872년 >


빛의 변화를 그리는 화가로서 인상주의자의 자연에 대한 사랑은 일견 당연한 이치이다. 사실 이들 가운데에는 많은 이는 스스로 정원가가 되어 자연을 이해하고 가꾸는 일에 진력을 다하기도 하였다. 인상주의의 시초인 모네는 수련 가득한 연못 위로 일본식 다리를 설치한 지베르니의 정원을 가꾸고 즐기며 그림의 소재로 삼았고, 스카겐 학파의 대표자인 P.S. 크뢰이어는 화가 자신 덕분에 유명해진 마을의 복잡함을 피해 외곽의 작은 집에서 정원을 가꾸곤 했다. 스페인의 호아킨 소로스는 지금 봐도 좋을 세련미를 자랑하는 이슬람식 정원을 가꾸어 그림을 그리며 친구들을 초청하였으며, 영국의 세드릭 모리스는 백합을 좋아하고 가꾸는데 전심을 다하여, 심지어 그의 미술 학교 ‘벤톤 앤드(Benton End)’의 이름을 딴 백합 품종 ’벤톤 아이리스‘ 까지 있을 정도이다.

< 벤톤 아이리스 정원. 첼시 플라워쇼 >


자연과 정원을 사랑하여 섬세하게 관찰하며 표현하는 것을 업으로 삼은 많은 화가의 작품을 감상하며, 그림 속의 자연과 정원의 모습이 생동감있게 재현되는 것을 상상하는 이 시대의 관객으로서, 화가의 작품 속 정원 이야기를 찾아 그 의미를 다시 발견하며, 우리 주변의 걸을만한 정원에서 재현되는 그 풍경을 즐기는 일에 이르기까지의 담담한 여정을 시작하고자 한다.

< 에덴 동산의 아담과 이브. 루카스 크라나흐 더 엘더. 1530 >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