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을 사랑한 인상주의의 대가
ㅁ 그림 이야기
프랑스 파리 서북부, 기차로 한시간이면 닿는 한적한 시골 지베르니(Giverny)에는 클로드 모네의 ‘정원을 품은 집’이 있다.
당시 권위있는 프랑스 화단에 대항하는 인상파의 선구자 역할을 하며 많은 센세이셔널을 일으켰던 유명인임에도 불구하고 모네의 경제적 불안정은 계속되었다. 아르장퇴유(Argenteuil)에서 비교적 편안한 생활 후에는 후원자들의 잇단 파산으로 고향 르아브르(Le Havre)를 포함하여 부지발(Bougival), 파리(Paris)와 베테위(Vetheuil)를 오가며 거처를 옮겨야 했다. 한편으로는 다양한 빛의 순간과 자유로운 소재의 실험을 찾아 그림 출장을 즐기던 그가 지베르니에 이르렀을때 마침내 평생의 머무를 집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지베르니에 ‘모네의 정원’을 만들었다.
모네의 지베르니 정착은 여러 장소의 자연이 만드는 다양한 경관을 찾아다니던 화가가, 이제는 한 공간이 시간과 빛의 변화를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모습을 그리는것만으로도 충분하리만큼 노련하며 깊은 시각을 갖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사실 지베르니의 집을 빌려 이사한 후에도 초기에는 부르빌이며 지중해, 네덜란드 등으로 그림의 소재를 찾는 여행을 다니곤 했다. 그러다 조금씩 지베르니의 경관에 관심을 두었고, 봄의 노란 아이리스 들판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때마침 커지는 명성과 부를 바탕으로 1890년 지베르니의 머물던 집과 주변 부지를 구입하였고, 모네는 지베르니에 정착하였다.
자기 소유의 집을 가지게 된 화가는 정원을 가꾸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정원은 자신의 예술적인 철학이 투영된 자연이자 시각적 감흥을 극대화하는 그림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정원의 레이아웃부터 작은 꽃의 모양과 위치까지, 땅위에 그리는 그림 마냥 정원을 가꾸어갔다. 더욱 욕심이 생긴 모네는 정원안에 연못을 만들고자 지방관청에까지 요청하여 개천의 물길을 바꾸기까지 하였고, 연못을 가르는 (그 유명한!) 일본풍의 다리와 새로운 수련품종들과 버드나무들을 가져 놓았다.
새롭게 꾸며진 물의 정원에서 클로드 모네는 많은 관찰과 사색의 시간을 보낸다. 사실 모네는 연못에 떠 있는 수련을 ‘단순히 관상용으로 심었을‘ 뿐, 처음부터 그림의 대상으로 삼을 생각은 없었다. 그저 가만히 풍경을 명상하는 조용한 시간을 보내길 원했고,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순간에서야 비로소 ’수련을 이해‘ 하게 되면서 ’일본식 다리‘ 주변의 물의 정원을 화폭에 담기 시작한다.
이렇게 탄생한 수련 연작 시리즈는 총 250여점이나 된다! 초기의 그림은 연못과 정원 전체를 담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수련에 대해 보다 집중하게 되면서 후기작에는 연못의 수면과 수련(가끔은 배경이 되는 수양 버들의 늘어진 잎) 정도만 등장하게 된다. 특히,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된 17미터!가 넘는 수련 그림은 경계를 잃어 처음과 끝을 알 수 없는 연못안의 경관이 몽환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사실 모네의 수련 연작의 유명세에는 이 그림만을 위해 만들어진 ‘오랑주리 미술관’ 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수련을 계속하여 그려오던 모네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국가에 기증하겠다고 하였다. 어쩌면, 전쟁에서 사망한 동생을 위로하는 화가의 방식이었을지 모를 모네의 뜻을 따라 프랑스 정부는 오랑주리 미술관에 대형 수련 연작을 위한 공간을 만들기로 하였다.
모네의 요청에 따라 그림을 가득 채우는 자연 채광을 받아들인 미술관은 100여미터의 벽을 따라 ‘수련:구름(Les Nymphéas : les Nuages)’ ‘수련 : 아침 (Les Nymphéas : Matin)’ ‘수련 : 일몰 (Les Nymphéas : Soleil couchant)’ ‘수련:초록 그림자(Les Nymphéas : Reflets verts)’ ‘수련:나무그림자(Les Nympheas : Reflets d’arbres)‘ ‘수련:아침의 버드나무들(Les Nymphéas : Le Matin aux Saules)’ ‘수련 : 버드나무가 드리워진 맑은 아침 (Les Nymphéas : Le Matin clair aux saules)’ ‘수련 : 버드나무 두 그루 (Les Nymphéas : Les Deux saules)’ 등 그림을 전시하고 있다.
오랑주리의 그림은 실재 크기의 수련을 담아내고자 했던 화가의 의도에 따라 아주 커다란 화폭에 그려졌다.
말년에 시력이 매우 나빠진 모네는 보다 커다란 화폭 위에 그나마 빛을 가장 잘 포착할 수 있는 한 낮의 풍경을 눈에 담아 기억속의 모습과 결합하며 작업하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러 색상의 물감을 두껍게 겹쳐 바르는 방식으로 대상의 물성을 과감하게 드러내고 있다. 때문에 가까이에서 보자면 대상을 알아볼 수 없을만큼 흐릿한 그림이지만 한발짝 떨어져서 보자면 빛을 받아들이고 굴절시키며 수면 아래 깊은곳까지 전달하는 윤슬과 그 위에 떠있는 수련 잎의 찰나가 적확하게 표현되고 있다.
이렇게 노회한 화가는 그가 시작한 인상주의를 완성함과 동시에 사물의 본질에 집중하여 표현되는 현대적인 추상주의를 시작하고 있다. 사실,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모네의 이러한 시도는 대단히 놀랍고 존경스러운 일일것이다.
노병의 집요한 열정이 탄생시킨 우연한 창조와, 동시적으로 필연적인 일생의 탐구의 결과를 통해 완성된 이 풍성한 열매는, 후대의 인류가 누리는 행운의 하나일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땅도 하늘도, 그 어떤 제한도 존재하지 않는다. 잔잔하고 비옥한 물이 캔버스의 들판을 완전히 덮고 있으며 빛이 넘쳐흘러 녹청색 잎의 표면에서 활기차게 뛰논다. 화가는 원근법의 피라미드식 선이나 단일 초점을 추구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서양의 전통적인 회화 규칙에서 벗어난다’
< 수련 연작 비평. 잡지 ‘가제트 데보자르’. 로저 마르크스 >
‘수련 연작’ 다음편 _ 수련 이야기 & 우리네 수련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