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 Trois Grandes Dames _ 인상주의 세 여걸의 피날레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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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특정한 한 시대를 같이 보낸 예술가들은, 그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당대에 혹은 사후에라도 그 시대를 대표하는 얼굴로 묶이는 경우가 있다.
서양 미술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삼인방이라 해도 무방할 ‘레오나르도 다 빈치’ 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그리고 ‘라파엘로 산치오’ 는 전성기 르네상스의 3대 거장이다. 비록 서로 화풍을 나누고 교류하는 의기투합의 관계는 아니었지만, 각자 다른 방식으로 아카데믹 서양 미술을 완성시킨 동시대의 인물들이다. 베키오 궁전의 벽화에 서로 다른 전투 그림을 그리며 경쟁했던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가 길거리에서 서로를 헐뜯으며 말싸움했다는 일화는 흥미롭게 회자된다. 라파엘로는 이런 두 거장의 작품들을 보면서 각각의 좋은 점만을 취하여 최적의 비율을 찾아내려 애썼다고 하니, 상당히 흥미로운 관계의 예술가들이다.
인상주의에 대해 말하자고 하면, 흔히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그리고 ‘에드가 드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클로드 모네야 ‘인상’ 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사람이기도 하거니와 여러 화가들과 교류하며 인상주의 화풍을 널리 알린 화가이기에, 인상주의의 대표 주자로서 처음 언급되기에 당연하다. 모네의 절친이자, 깊은 미학적 교류를 나눈 오귀스트 르누아르 역시 부드럽고 풍부한 붓터치로 따뜻한 색감이 돋보이는 즐겁고 예쁜 그림의 인상주의 대표 화가이다. 에드가 드가는 논쟁적인 인물이다. 그는 1874년 첫 인상주의 전시회를 기획하는 이끄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또한 ‘인간의 찰나적 행위와 현대적 일상을’ 포착하였다는 점에서 인상주의의 핵심 인물이라 불릴 것이다. 특히 메리 카세트나 마리 브라크몽처럼 아카데믹 회화의 기초 위에 인상주의 기법을 덧붙인 여류 화가들의 멘토가 되었다는 점이 돋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빛에 따라 변하는 자연을 기록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으며(‘정원의 인상’ 에 그를 소개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인상주의자로 불리는 것조차 매우 싫어한, 좀 더 사실주의에 가까운 화가이기도 한다.
좀 더 대중적으로는 후기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폴 세잔’, ‘빈센트 반 고흐’ 그리고 ‘폴 고갱’을 말할 수 있다. 쟈드 부팡에서 지낸 경험을 바탕으로 죽기 전까지 정원사 발리에르의 그림을 놓지 않았던 폴 세잔은 ’사물의 본질은 구, 원뿔, 원기둥이다‘ 라고 하며 구조와 질서를 중시하는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 불리기도 한다. 빈센트 반 고흐의 거친 붓터치와 강렬한 색감은 그의 불안정한 내면을 숨김없이 표현하는 인상주의적 도구임과 동시에 하나의 사조로 가둘 수 없는 그만의 독창적인 주관의 증거이기도 하였다. 한때 반 고흐와 같이 지내기도 한 폴 고갱은 원시적인 색감과 상징을 통해 태초의 순수함을 표현하는 상징주의의 대가로 자리 잡았지만, 카미유 피사로를 통해 시작한 인상주의 화풍이 큰 영향을 미쳤음은 부인할 수 없다.
우리네 미술사에서도 시대적 사조를 대표하여 몇몇을 꼽을만한 화가들을 떠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특히 조선 후기에 활동하던 이들의 호를 따 ‘3원3재’로 부르고 있으니,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과 겸재 정선, 공재 윤두서, 현재 심사정이 그들이다. 조선 후기 풍속화의 거장인 신윤복과 김홍도의 ‘오원양식’을 완성한 장승업의 그림체를 떠올리는 것은 어려운일이 아니다. 이 글에서도 여러 번 소개한 ‘진경산수기법’의 창시자 겸제 정선이나 디테일에 능한 공재 윤두서 그리고 설경이 으뜸인 현재 심사정의 그림도 자연스럽다.
하지만, 오늘 자세히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한겨울 차갑고 건조한 바람이 물러가고 통통한 살집으로 곧 터질듯하게 부풀어 오른 꽃망울이 눈에 띄는 이른 봄이면 얼른 찾아가고자 하는 급한 성미를 숨길 수 없는, 우리 선조들이 즐기던 조선의 3대 정원이다.
< 담양 소쇄원 >
소쇄원은 조선 중기 선비 양산보가 스승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죽임 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세속의 덧없음을 깨달아 낙향하여 지은 정원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별서 정원으로 꼽히며, 특히 ‘소쇄(瀟灑, 맑고 깨끗함)’ 라는 이름처럼 깨끗한 계곡물을 정원 안으로 끌어들여 담장을 지나가게 한 자연스러운 계획이 돋보이는 공간이다. 정원 둘레에 서 있는 높고 낮은 담장은 주변의 대나무 숲과 산등성의 풍경을 ‘차경’ 하는 역할을 하며 바깥의 자연까지 즐기고자 한 조선시대 정원 조성 기법을 여실히 볼 수 있다.
< 보길도 세연정 >
세연정은 소쇄원과는 달리 인공 호수를 만들고 그곳에 정자를 둔, 전통적인 인공정원의 전형이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전라도의 끝 보길도까지 유배길에 올랐던 윤선도는 오히려 이곳에서 천혜의 비경을 발견하게 되고, 보다 적극적으로 ‘조경‘하여 ‘주변 경치가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하여지는 곳’이라는 뜻의 세연정을 조성하였다. 정자 앞 연못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보며, 왕을 향한 충심과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던 ‘어부사시사’가 이곳에서 지어졌으니, 인상주의자를 사로잡은 정원의 매력이 다른 방식으로 이곳에서도 작동한 듯하다.
<영양 서석지>
광해군 시절, 혼란한 정세를 피해 낙향한 정경세의 제자 정영방은 영양땅에 있는 작은 연못 안의 100여 개에 달하는 기암괴석들을 보며, 그 상서로운 모습에 ‘서석(瑞石)‘ 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색의 정원을 만들었다. 바위 하나하나마다 선유석, 통진석과 같은 이름을 붙이고 그 기운을 칭송하는 시까지 썼을 정도로, 이 정원은 다양한 모양의 바위와 그를 둘러싸고 있는 물이 특징이다. 하늘을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하는 전통적인 설계 방식, ‘천원지방(天圓地方)’ 의 개념을 본 따 조성한 연못은 물의 깊이를 얕게 하여 바위의 모습이 수면에 명확하게 투영되도록 만든 고도의 연출이 돋보이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