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 Trois Grandes Dames _ 인상주의 세 여걸의 피날레
시대를 바꾸는 새로운 시도, 전에 없던 독특한 사조가 한 시대를 풍미하며 후대까지 그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 데는 수많은,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노력이 숨어있기 마련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동생 테오의 아내인 ‘요한나 반 고흐-봉거’가 없었다면, 생애 단 한 작품만 팔렸던 빈센트의 그림은 오늘날과 같은 명성을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녀는 빈센트의 작품들을 잘 간직하고 전시했을 뿐 아니라, 테오와의 사이에 오간 많은 편지들을 출판하여 화가의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만들고 널리 알린 뛰어난 기획자이기도 하였다. 칸딘스키의 연인이자 그녀 자체로 뛰어난 화가였던 가브리엘 뮌터 역시, 비록 칸딘스키 생애에 그는 뮌터의 뛰어난 능력이 발현되는 것을 방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칸딘스키의 그림을 숨기고 후에 미술관에 기증함으로써 미술사에 청기사파의 시대를 아로새겼다.
그리고 인상주의에는 귀스타브 제프루아가 있다. 기자, 작가, 예술 비평가인 제프루아는 1893년에 잡지 ‘라 르뷔 앙시클로페딕’에 인상주의에 대한 기사를 쓰고 이듬해에는 폴 세잔의 작품에 대한 연구를 출고하면서 당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인상주의를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뛰어난 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그는 클로드 모네의 전기를 출간하기도 하였는데, 특히 인상주의 화풍에 대한 문학적 철학적 배경을 설명하는 이론가로서 역할하였다.
‘인상주의는 단순히 빛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화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자유‘ 그 자체를 그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인상주의의 세 여걸(Les trois grandes dames)‘ 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내며, 당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던 여성 화가들에 대한 평가를 전면에 내세웠다. 앞서 소개한 베르트 모리조, 메리 카사트 그리고 오늘의 뮤즈인 ’마리 브라크몽‘ 이다.
마리 브라크몽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베르트 모리조와 메리 카사트가 부유한 집안 덕에 상류층 여성의 취미로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였다면, 마리는 일상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하는 수단으로 혼자 그림을 익히곤 하였다. 잠시 신고전주의의 거장인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눈에 띄어 그의 화실에서 공부하기도 하였지만, 여성 화가를 무시하는 보수적인 앵그르 아래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였다. 그녀의 화풍은 인상주의를 접하면서 크게 변하게 되는데, 그녀는 특히 나무 가지 사이로 부서져 내리는 햇빛이 하얀 드레스에 반사되어 만들어내는 공기의 효과를 탁월하게 표현하였다.
제프루아는 브라크몽을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졌으나 대중에게 과소평가된 거장’ 으로 소개한다. 앵그르의 영향을 받은 고전주의의 ‘엄격한 선‘ 과 인상주의의 ’밝은 색채‘ 가 어떻게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지를 높이 평가하였다. 탄탄한 기본기 위에 인상주의의 빛을 얹은 그녀의 그림에서 특히, 사물이 빛과 만났을 때 생기는 공기 중의 미묘한 색감을 표현하는 섬세한 감각을 찾아냈다.
‘그녀의 팔레트는 눈부시게 밝으며, 그 밝음 속에서도 사물의 형태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마리 브라크몽에 대한 비평가의 찬사를 언급하는 것은, 앞선 두 화가와 달리 그녀는 참혹한 말년을 보냈기 때문이다. 유명한 판화가였던 펠릭스 브라크몽과 결혼한 마리는, 같은 예술가로서의 기대와는 달리, 남편의 지속적인 반대 속에 작품 활동을 이어갈 수 없었다. 펠릭스는 한때 에두아르 마네와 에드가 드가 등과 교류하며 인상주의 전시전에도 출품하여 판화의 영역을 넓히고자 하였으나, 제1회 인상주의전의 이름은 ‘화가, 조각가, 판화가 등의 익명협회’ 이다!!, 인상주의의 흐릿하고 자유로운 화풍을 견디지 못하며 반대자로 돌아서게 된다. 결혼 후, 폴 고갱으로부터 빛과 색채를 강렬하게 전수받아 더욱 원숙한 그림을 그리며 인상주의가로서 자리 잡아가는 마리는, 같은 시기 다른 방향의 생각을 굳힌 남편의 비난과 시기 속, 결국 화업을 거의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제프루아가 인상주의의 세 여걸을 거론하며 마리 브라크몽을 추켜 세운 때는 이미 그녀의 작품 활동이 끝난 후였고, 그래서 재능 있는 화가를 잃은 비평가의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찬사로 들린다.
비평가들로부터 ‘세 가지 은총(Les Trois Grâces)‘ 이라 불린 이 그림은 마리가 자기 자신과 여동생 루이즈 퀴보롱을 모델로 그린 그림이다. 실내에서 세 모델의 구도를 잡고 야외 정원의 인상을 더한 방식으로 고전주의와 인상주의의 절묘한 조합을 보여주는 이 그림은, 한편으로는 왠지 인상주의의 세 여걸을 담아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특히 자신 있게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으로 그려진 중앙의 마리 브라크몽의 모습은, 다른 두 명에 비해 잊히게 될 대중의 평가에 의연하게 맞서는 듯한 모습으로, 그래서 조금은 안타까운 모습으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