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에서 뜨개질하는 리디아 2 _ 메리 카사트

정원의 인물을 즐겨 그린 여성 인상주의 화가

by Phillip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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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 앉아 쉬는 가족의 모습을 담는 인상주의 그림은 그 화풍의 독특함을 볼 때, 너무나도 적확한 주제의 사용일 것이다.

도시 외곽 자연의 요소가 공원과 정원 안에서 조화롭게 재현되고, 공공의 공원과 개인의 정원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우리의 일상에서 반짝이는 햇빛을 받아내는 경관이 자연의 그것인지, 혹은 공원이나 정원의 그것인지에 대한 구분이 의미 없어진 근대화 시대의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정원은 작가 개인이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을 투영하여 만들어낼 수 있는, 아직 캔버스로 옮겨지기 전의 그림 그 자체였을 것이다. 앞에서 이미 이야기한 바와 같이, 우리는 적극적인 정원사로서의 클로드 모네와 구스타프 카유보트가 가꾸는 정원을 보았고, 정원에 대한 애정으로 그 경계를 뛰어넘는 자연을 그린 빈센트 반 고흐와 호아킨 소로야의 그림에 감탄했으며 정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담은 폴 세잔과 카미유 피사로의 붓길에서 상쾌한 땀방울을 느낄 수 있었다.

< 지베르니 화가의 정원. 1900. 클로드 모네(왼쪽). 작은 정원에 있는 장미꽃. 1866. 구스타프 카유보트(오른쪽). >


<아를 요양원의 정원. 1889. 빈센트 반 고흐(왼쪽). 소로야 자택의 분수와 장미. 1919. 호야킨 소로야(오른쪽). >


< 정원사 발리에르. 1906. 폴 세잔(왼쪽). 에라니의 화가의 정원. 1898. 카미유 피사로(오른쪽). >



전통적인 아카데믹 화풍에 등장하는 종교적 성인들과 유명한 사회 지도층을 그리던 그림의 주제도 인상주의자들이 찾아내려 애쓴 자연스럽게 자연의 햇빛을 받아내는 그림의 주인공으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야외에서 몇 시간이고 따가운 태양빛을 참아내며 자연의 일부로서 그림의 소재가 되는 것을 사회적 ‘주인공’ 들이 흔쾌히 받아들였을 리 만무하거니와 예측할 수 없는 빛의 변화를 순간적으로 담아내기에는 화가와 가깝게 지내는 이들의 일상보다 더 적합한 것은 없을 것이다. P.S. 크뢰이어와 클로드 모네의 아내는 그림 속에서 더욱 아름다웠으며, 빈센트 반 고흐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친구는 그 자연스러운 모습이 화폭 안에서 더욱 빛났으며, 베르트 모리조와 메리 카사트의 언니를 향한 사랑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 양산을 든 여인. 1886. 클로드 모네(왼쪽). 장미, 장미 정원에 앉아 있는 마리 크뢰이어. 1892. P.S.크뢰이어(오른쪽) >


< 우체부 조제프 룰랭의 초상. 1889. 빈센트 반 고흐(왼쪽). 신문을 읽고 있는 모네. 1872. 오귀스트 르누아르(오른쪽) >


< 요람. 1872. 베르트 모리조(왼쪽). 정원에서 강아지와 앉아 있는 리디아. 1880. 메리 카사트(오른쪽) >



이 글을 시작하게 된 것도 사실 우리 일상의 정원과 인상주의자의 정원이, 수백 년의 시간 차이에도 불구하고, 같은 경관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는 발견에서부터이다. 모네를 사로잡은 수련은 지금도 세미원의 연못을 부유하고 있고, P.S. 크뢰이어가 그려낸 하얀 장미는 더욱 풍성하게 발전된 그 후손들의 꽃봉오리를 기뻐할 것이다. 올해도 대지를 장식할 매화꽃은 분명 반 고흐의 아몬드 나무를 떠올리게 할 것이며 화원 앞에서 하얗고 노란 장미라도 볼치면 카유보트의 정물화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인물이 달라졌고, 문화가 달라졌고, 기술이 달라졌고, 그림의 사조가 달라졌고, 그 외 거의 모든 인간 문명의 것들이 달라졌음에도, 자연은 햇볕은 정원은 장미는 국화는 매화는 별 달라진 것이 없다.


물론 우리의 사정만을 놓고 보자면, 크게 달라진 것의 하나는 이러한 정원을 사유하는 공간의 변화일 것이다. 공공의 공원과 개인의 정원을 오가던 일상의 녹색이 이제는 공동주택, 곧 아파트의 정원 공간에 재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파트의 정원은, 모두의 공동 주택이면서 동시에 나만의 집인 건물의 특징과 다르지 않게, 공공의 공원이 되는 동시에 나의 집의 나의 정원이 되는 특별한 공간이 된다. 단지 전면에 심어진 멋들어진 커다란 소나무와 높은 폭포에서 쏟아지는 시원한 물소리, 그리고 감각적인 디자인의 티하우스 안에서 이웃과 나누는 정감 있는 대화는 분명 공공의 것으로서 아파트의 정원 모습이다. 하지만, 커다란 놀이시설 아래의 작은 아지트 공간이나 석가산 뒤쪽에 물어놓은 작은 새둥지, 그리고 오솔길을 걷다 마주치는 야생화 무리는 나에게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나만의 정원일터이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나만의 정원을 함께 누리는 이는 나의 누이요, 벗이요, 아들이며 딸이 될 것이다.

< 아파트 정원. 저자 디자인. >


매서웠던 겨울바람이 잦아들어 남녘에는 벌써 홍매화가 꽃을 피운다 하는 소식이 들려올 때, 아직은 진갈색의 흙바닥만 보이는 듯하는 우리 아파트의 정원을 조용히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조근조근 꾸물꾸물 있는 듯 없는듯하면서도 꾸준하게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낼 준비하고 있는 꽃과 나무의 생명력이, 머지않아 정원 구석구석을 수놓는 생생한 화려함으로 변할 테니까..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