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가감 없는 25, 겁먹은 32

by 문달슬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의 시작의 단어를 정하곤 한다.

오늘의 단어는 <무미건조>.

나는 '오늘 참 무미건조하다.'라고 생각하며 오전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유독 25살 때의 내가 떠오르는 날이었다.

나는 나의 25살을 <제일 생각이 없고 치기 어렸던 나이>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생각이 바뀌었다. <한 사람으로도 내 삶이 180도 달라진다는 걸 깨달은 나이>로 정정되었다. 그 해는 정말 나의 무기력의 끝을 본 시간이었는데 오늘에서야 생각이 바뀌었다. 그전까지 하고 싶은 걸 하고자 너무 치열하게 살며 목표를 이룬 대신, 서툰 내가 소중한 사람을 잃었기에 의지 없고, 무기력했던 게 당연했던 시간이었다.

어릴 때 받은 연애편지들을 최근까지도 모아놓고 있었는데, 본가가 이사를 하면서 정리를 했다. 어쩌면 늦게나마 마음 정리까지 한걸지도 모른다. 25살에 받았던 편지내용을 보고 적잖게 놀랐다. 나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겨 있어서. 나 또한 그 사람이 정말 소중했고 내 감정을 받아들이는 걸 잘했던 시기라 겁도 없이 솔직하고 가감 없이 마음을 다 꺼내 보여줬을 것이다. 25살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왜 이렇게 무미건조해졌어?"라고 물어볼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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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살의 나: 왜 이렇게 무미건조해졌어 사람이?


32살의 나: 앞으로가 너무 불확실한 미래라 순간의 감정에 휘둘리기 싫어.


25살의 나: 불확실? 원래 다 불확실한 거 아냐? 고르는 재미가 있지 않아? 대학교를 갈지 말지, 실습으로 취업을 할지 학교에 남을지 고를 때도 불확실했는데 골랐잖아. 내가 고를 수 있다는 게 좋다고 생각했는데 , 혹시 그런 거 고르기 전에도 감정에 휘둘렸어?


32살의 나: 그때는 하고 싶은 게 꽤나 명확했어. 지금은 하고 싶은 게 없어.


25살의 나: 오히려 좋네. 하고 싶은 거 처음부터 다시 찾으면 되잖아. 지금 하고 있는 거 같은데 너만 모르는 거 같은데? 가계부 쓰는 거랑 운동하는 걸로 블로그 쓰기, 운동 가고 자기 몸 챙기는 거, 글쓰기 하는 거 다 하고 싶은 거 아냐? 모르면 그냥 처음이다 생각하고 다시 찾아봐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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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만나면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거 같다.

왜 나이 들면 아는 게 많아져서 겁이 많아진다고 그러던데 글로 적어보니 32살의 내가 겁이 더 많은 게 보인다.

25살 당시 적어둔 위시리스트를 보면 그 당시 나의 실행력이란 무모한데 정말 부럽다.

겁도 없이 10개를 적고 9개를 해냈던 25살.

저런 대화를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그래. 해보자>하는 마음이 생겼다

겁이 많지만 하고 싶은 걸 찾아보기로 마음먹고 글로 남긴다.

얼마 전, 청년센터에서 컬러테라피 프로그램으로 <컬러 DNA> 검사를 했는데 이 검사는 선천적인 내 성향을 보여주는 검사라고 한다.

인지컬러는 성격이나 가치관, 생각을 볼 수 있고 행동컬러는 기본적인 내 행동유형을 볼 수 있다.

나는 골드와 블루가 나왔는데 이 색이 나온 사람은 목표의식이 강하고 계획&전략을 잘 짜고 삶이 FM인 사람이라고 한다.

이 날 너무 신기했던 게 글을 쓰려면 소재가 있어야지 싶어서 항상 생각해 둔걸 사진으로 남겨두는 편인데 이날의 생각은 <내 어릴 때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색은? 블루!>였다.

그래서 옷도 블루였고, 블루만 보이면 찍어보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블루가 FM을 나타낸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생각나는 일화가 하나 있다.

일화에 앞서 설명을 먼저 해야 하는데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도안 나는 아가시절에, 내 기억엔 과자 먹을 때 시간과 규칙이 정해져 있었던 거 같다. 기억뿐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시간은 밥 먹고 20분 뒤 30분 동안(한번 나오면 과자시간 끝), 규칙은 꼭 본인(나)이 신문지 깔고 그 위에서 먹기, 치우는 건 내가 다 먹었을 때 엄마나 아빠 중 가까이 있던 사람이. 그 대신 신문지 공간은 오롯이 내 공간. 과자 먹는 30분 동안은 부모님. 동생 포함 그 누구도 거기를 가로질러 지나가거나 구기거나 치우지 못했다.

이제 일화얘기를 하자면, 그날 갑자기 친척 어른들이 집을 놀러 오셨는데 내 과자시간 때문에 10분 동안 복도에서 기다리셨던 적이 있었다. 그 집이 내 기억으로는 현관에서 방을 가려면 긴 복도형 거실 끝에 방입구가 있는 구조였는데 왜인지 이유는 모르지만 내가 하필 방이 이어지는 끝쪽에 신문지를 깔아버렸다. 20분 동안 먹고 있었는데 어른들이 오셨고 방을 가려고 지나가려고 하면 "과자시간이야!!!!!" 하며 소리를 지르고 울먹거렸던 기억이 있다. 예정된 방문이 아니었고 어른들도 과자시간을 알고 계셨기에 귀엽게 넘어가주셨던 거 같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기억이지만,

이렇게 고집쟁이 FM 어린 시절을 지나 감정을 인정하고 가감 없이 꺼내놓는 25살을 만나고 지금은 잔뜩 겁은 먹었지만 하고 싶은걸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 32살의 내가 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