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쩌면 '마주 보기'는 용기가 필요한 걸 지도
<2025.10.22>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한 시간 반 만에 백세희(1990.~2025.10.16) 작가님 책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완독 했다. 2018년도에 나온 이 책을 왠지 모르게 계속 미루다가, 읽으려고 마음먹었던 23년도 어느 날 공황이 찾아왔다. 사실 읽다가 결국 포기했던 적이 있었다.
18년도부터 미루던 책을 25년도 10월이 돼서야 읽었다니 작가님이 너무 좋아져 버렸는데 이제 어찌해야 할까.
그 당시, 정신과 상담을 받는 중이라 상담내용이 담긴 이 책의 페이지를 더 이상 넘길 수가 없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마주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샥샥 소리를 내며 잘 만 넘어가는데 이제 작가님을 볼 준비가 되었는데 그럴 수 없어 이 책을 완독하고 난 후의 온전한 마음이라도 담아보려 미루고 미루던 브런치를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쓰기 전에,
작가님! 저에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 나 자신을 마주 볼 수 있는 용기, '나 자신을 아주 살짝 꺼내볼까?'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질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나서 해야 할 것들에 대해 5가지를 고민해 봤다.
1. 스무 살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편지 써보기
2. 내가 어려워하고 어렵게 느끼는 것들과 내가 편하게 생각하고 안정감을 느끼는 것들은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보기
3. 브런치(글쓰기) 시작하기
4.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적어보고 <내가 보는 나>와 <주변 사람들이 보는 나>의 차이점을 써보기
5. <모멸감> 책 읽어보기
이걸 언제 할지 모르지만 나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것들이 생겼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상담 갔을 때 다른 점이 무엇이 있었는지, 읽으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집중했다.
나는 갑자기 생긴 공황이 공황인지 모르고 심장병이나 뇌질환인 줄 알았다. 코로나백신 부작용으로 심장이 약해졌고, 아빠가 뇌질환이 있었으니까 어쩌면 당연한 의심이었다. 그래서 내가 구급차를 불러서 응급실을 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예약된 날짜에 상담실에서 상담 중이었고, 그때 나는 의사 선생님말에 집중하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의 "죽을 거 같았죠? 근데 안 죽었죠?" 이 한마디에 내 마음은 문을 없애버렸고, 머릿속에는 '나는 안 힘들어. 내 힘듦은 너무 사소한 거라 말할 내용이 없어.', '밖에 대기하는 사람들 중에 완전 아가들도 있던데 뭐가 그리 힘들어서 왔지?', '원래 이 정도는 다들 힘든데 내가 너무 나약해서 티가 났어. 부모님, 친구들 괜히 걱정하겠네.'이 생각들 뿐이었다.
처음 진료는 5분도 안돼서 나왔고 진료비가 아까웠다.
나는 그 이후 병원을 가면 여전히 입을 열지 못한다. 안 여는 걸 지도 모른다.
마치 무당에게 간 것처럼 '전문의니까 내 마음 다 알 거야.' 나보다 더 똑똑하고 더 살아온 사람이며 이 과정을 꽤 오래도록 공부한 사람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너무 사소해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내 약점을 드러낸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몇 년 전, 엄마의 병원(당뇨진료)을(를) 같이 간 적이 있었다.
엄마는 의사 선생님께 미주알고주알 자기의 사정, 감정을 다 털어놓으셨다.
엄마의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그 상황이 싫기도 했다.
엄마의 그런 부분들을 의사나 간호사분들이 알게 되면 나중에 엄마 혼자 왔을 때 무시하는 상황을 겪게 되실까 봐 무서웠다.
책을 읽고 나니 엄마는 참 멋지고 대단한 사람이다.
혼자 알고 있는 것에 두려움과 공포감을 아는 사람이다. 자꾸 꺼내 놓으신다. 그 공포감을 이겨내려 자꾸 용기를 내시는 분이다. 엄마는 두렵다고 말하고 있는 걸 내가 그렇게 하지 말라며 상처를 드린 건 아닐지 미안해진다. 엄마는 내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다. 나를 아무런 조건 없이 믿어주는 존재이다. 이걸 왜 항상 엄마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한참 뒤에 알게 되는 건지 괴롭다. 나는 엄마보다 스스로 마주 볼 용기가 부족한 사람이다. 나는 2년째 상담실을 그냥 나온다. 아무래도 약점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그냥 그럴 땐 언젠가 엄마를 꼭 닮길 바란다.
문득, 작가님은 책으로 상담내용을 꺼내 보인 것에 후회하지 않으셨을까 괜한 걱정이 들었다. 나는 작가님이 후회는 한점 없으시길 바란다. 조금이나마 나를 마주 보게 해 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그 말이 이렇게 길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