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B trainer
Nov 30. 2024
전에 올렸던 '3천 권의 책을 읽을 때까지는' 사연의 주인공 Y선배를 오늘 만났다. 내가 사는 곳에 친척의 결혼식이 있어 오는 중인데 잠시 만날 수 있느냐 해서 부랴부랴 약속을 잡았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선배는 자주 봤던 사람처럼 편안했고 너그러운 모습이었다. 그래서 물 흐르듯 얘기 보따리가 풀어졌는데 지난 사연과 관련된 내용을 여기 남긴다.
몹시 궁금했던 조부와 부친은 모두 작고하셨는데 조부 임종 시 두 분이 손을 잡고 나눴던 대화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조부께서 말했다. "나 때문에 네 인생이 막힌 것 같아 마음 아팠고... 미안하다." 그러자 부친이 말했다. "내가 그 입장이었어도 아버지처럼 했을 거예요. 난 아버지 사랑을 듬뿍 받아 행복했고 정직하게 살아오신 아버지를 정말 존경합니다." 그리고 한참을 그렇게 손잡고 계시다 숨을 거두셨단다. 책에 관하여 선배는 취직 후 바쁜 일을 핑계로 책을 멀리하며 살아 오히려 자기가 내게 배워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난 그 말은 믿지 않았다. 품격 있는 언어와 절제된 표현 속에 담긴 그의 깊은 내공을 보았기 때문이다.
35년을 돌아 다시 이뤄진 만남은 아쉽게도 1시간 만에 끝이 났다. 다음에 또 보자고 했지만 사는 곳도 멀고 서로를 묶어줄 연고도 없기에 쉽게 만나지 못할 것임을 난 안다. 그러나 자주 만난다고 꼭 좋은 인연이 되는 것은 아닌 것, 난 지금 이대로도 감사하고 만족한다. 선배를 배웅하고 돌아온 저녁 임종 시 나눴다는 두 분의 대화가 긴 여운으로 가슴에 파고든다. 이 얼마나 짧고도 아름다운 父子의 마지막 장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