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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토 Nov 06. 2022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2022)

멀티버스를 통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

극장에서 2차 관람하고 왔습니다.



두 번의 관람 모두에서 울기 시작했던 장면..

황량한 땅에 돌멩이 두 개일뿐인데

여기서부터 엔딩 크레딧까지 그냥 쉬지 않고 울어요.

안 보신 분은 이해를 못 하겠죠

눈 달린 돌멩이는 뭔데 보고 온 사람들이 이것만 보면 그렇게 슬퍼하냐..

저도 그래서 봤어요. 영화에 대해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 인터넷상의 여러 후기는 괴상하기 짝이 없는 코믹한 영화인 것 같은데 이게 그렇게 사람들을 울린다는 게 믿기지 않았죠.

그리고 나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 영화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올해 최고의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제목이 너무 길어서 편의상 '에에올'로 부르겠습니다.


에에올은 멀티버스를 소재로 한 SF 가족 코미디 영화입니다. 최근 멀티버스에 관한 영화가 많이 나오고 있지요. 인간이 선택을 할 때마다 우주에 새로운 가지가 갈라져 나와 수많은 우주가 존재할 수 있다면, 다른 우주에는 다른 선택을 해 지금의 나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내가 있다면, 가능성으로만 남아 있던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고 그 세계와 접촉할 수 있다면... 이는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다채로운 스토리로 뻗어나갈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해요. 그럼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 봅시다. 이런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건, 과연 좋은 것일까요?



개인적으로 올해 들어 많은 고민을 했던 주제였어요.

이 세계의 의미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 삶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이전에 철학 수업에서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는 모두 결정되어 있고 내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 과학적인 실험으로도 자유의지가 허상일 수 있음을 밝혀낸 바 있고, 논리적으로 따져 보아도 결정론을 반박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이죠.


그렇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지나간 일에도 또 다른 가능성이 있었을 거라고. 앞으로의 내 인생의 방향도 내 손에 달려 있을 거라고. 우리는 그저 우주의 흐름에 떠밀려 흘러가는 먼지가 아닐 거라고.

멀티버스가 답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류는 아직 다른 우주의 존재를 증명해내지 못했지만,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믿을 자유라도 남아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멀티버스가 존재하는 세계라면, 수많은 가능성들이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지지 않고 또 다른 우주로 실존한다면, 살아간다는 게 의미 없지 않을 거라고 믿었나 봅니다. 삶이란 매 순간 우주를 탄생시키는 것이니까요.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이런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건, 과연 좋은 것일까요?

'에에올'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니요.

삶은 무의미합니다.

그러니

그런대로 괜찮은 겁니다.


정말 천재적인 것 같아요. '아무 의미도 없어', '아무래도 괜찮아' 이 말을 영어로 하면 둘 다 'nothing matters' 니까요.


삶의 의미에 대한 해답을 멀티버스에서 찾으려 했던 저에게 이 영화의 빌런은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기대와는 달리, 광활한 우주 무한대의 세계에서 모든 것과 모든 곳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게 된다면 남는 것은 끝없는 허무함 뿐입니다. 모든 가능성을 살아 보았기에 더 이상 가능성이라는 게 남아 있지 않은 세계는, 우연에 우연에 우연이 겹친 특별한 순간마저 확률적 필연성으로 인해 더 이상 특별하지 않게 된 세계는 끔찍한 지옥일 뿐이지요.

우리가 세계에 대해 많이 알수록, 세계의 본질에 다가갈수록 인간은 너무 하찮고 볼품없는 존재일 뿐입니다. 그 사실은 바뀌지 않을 거예요. 삶은 무의미한 것이고 인간은 어리석고 허접하다는 것은.



이 영화는 '그럼에도'를 이야기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이 멍청하고 끔찍한 삶을 살아보려고 할까

해답은 사실 뻔합니다.

사랑하니까.

사랑에 이유가 필요할까요.

부딪히고 삐걱대고 깨지고 아파도 사랑하니까 곁에 있는 것입니다.

사랑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세계니까

친절하고

아끼고

보듬으며 살아가자는 것이죠.



아직까지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못 했네요... 하지만 핵심은 전부 이야기했습니다

"Be kind"

이 얘기를 위해 두 시간 반 동안 배꼽 빠지게 웃기고 눈이 팅팅 붓게 울게 만드는 영화...

그래도 이제 내용 얘기를 해봐야겠죠..

무엇 때문에 울고 웃었느냐!



웃음 포인트



1. 이상 행동(?) 총집합



에에올에서는 '버스 점프'를 통해 다른 우주의 자기 자신과 연결되어 그의 기술을 빌려 올 수 있는데요, 예를 들어 쿵푸를 연마한 우주로 버스 점프를 하면 원래 우주의 자신도 똑같이 쿵푸 마스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버스 점프를 하기 위해서는 '상황과 맥락에 어울리지 않는 정말 뜬금없고 이상한 무작위의 행동'을 해야 합니다. 립밤을 먹는다거나, 벽을 핥는다거나, 갑자기 사랑 고백을 한다거나...ㅋㅋㅋㅋ

그러다 보니 영화에서는 절체절명의 급박한 상황에서 온갖 이상한 행위가 난무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게 정말 재미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그저 웃기기 위해 들어간 설정은 아닙니다. 쓸데없고 엉뚱하고 예측 불가능한 일들이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보여주지요.



2. 화려한 볼거리


메인 빌런 '조부 투파키'의 스타일이 영화의 볼거리를 아주 풍성하게 만들어준 것 같아요. 모든 우주를 넘나들고 자신과 사물을 이리저리 변형할 수 있는 인물로서, 매 장면 너무나 독특한 의상과 메이크업으로 등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싸우는 장면도 한 편의 마술쇼 같기도 현대 예술 같기도 합니다.

초 단위로 달라지는 배경과 정신없는 액션, 멀티버스라는 특성을 극대화해 정말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로 꽉꽉 눌러 담은 영화라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이동진 평론가는 '맥시멀리스트 영화'라고 표현했는데 딱 맞는 말인 것 같아요. 볼거리는 과하게 던져 주지만 핵심 메시지는 하나로 단단히 모이기에 중구난방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3. 온갖 반가운 오마주


여러 영화를 오마주 했는데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여러 쿵푸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라따뚜이, 화양연화 등등 말고도 아마 더 있을 거예요. 이러한 오마주들은 코믹하게 비틀어져 있습니다. '라따뚜이'의 쥐 대신 너구리가 머리에 올라간 '라카쿠니'가 되어서 나오거나,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유인원들이 나오는 유명한 장면에서 손가락이 소세지인 유인원들이 승리하는 바람에 소세지 손가락 인간으로 진화한 우주가 등장하기도 하지요.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장면입니다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보고 가기 잘했다고 생각해요ㅎㅎ) 영화 후반부로 가서는 라카쿠니도, 소세지손가락 유니버스도 마냥 웃으면서 볼 수는 없지만요...



눈물 포인트



1. 엄마와 딸에 대한 이야기


에에올은 모녀관계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사랑하지만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상처 주고, 해소하지 못한 상처가 쌓이고 곪아 단단한 벽이 생겨 버린 평범한 엄마와 딸의 이야기이지요. 갈등의 골이 가장 깊어진 세계가 영화 속 '알파 버스'입니다. 알파 버스의 에블린은 딸 조이를 한계까지 몰아붙여 조부 투바키를 탄생시키고 그는 모든 우주에 거대한 위협이 되는 빌런이 됩니다. 메인 우주의 주인공 에블린은 조부 투바키를 물리칠 사람으로 발탁된 인물이었으나, 딸을 사랑하기에 조부를 구하기로 결심해요.


조부처럼 모든 우주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게 된 에블린은 마찬가지로 세상의 무의미함을 깨닫고 모든 우주에서의 일들을 고의로 망쳐 버리며 '될 대로 되라지' 하는 행보를 보이지만 그런 그를 돌려놓는 것은 그럼에도 모든 무의미한 것을 뛰어넘는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이 세상의 무의미함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건 남편 웨이먼드인데.. 웨이먼드 얘기는 일단 뒤로 미뤄 두도록 하겠습니다.


조부가 온 우주를 건너가며 그렇게나 자신을 이해해 줄 에블린을 찾아다녔다는 점에서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죽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곁에 있어 줄 엄마였던 것이에요. 세상에 남아 있는 한 그의 공허함과 허무함이 본질적으로 해소될 수는 없지만, 그 마음을 이해해 주고 그가 보는 세상에 공감해 줄 사람만 있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조부 투바키의 혼돈과 광기가 사랑에 대한 갈망이라는 것이 여실히 느껴져 빌런을 보는 내내 슬펐습니다.


조이와 에블린의 관계가 저와 엄마의 관계랑 굉장히 닮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부분의 아시아 모녀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관계였던 것 같아요. 너무나도 사랑하는 가족이지만 같이 살면 싸우고 부딪히고 깊은 속마음을 터놓기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는 것 같은 느낌.. 에에올은 그런 현실적 관계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면서, 서로의 사이에 자리한 모든 장애물들을 한 순간에 없애 버리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엄마니까, 사랑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거라고, 그렇기에 과거해 존재했고 앞으로도 있을 여러 작은 행복의 순간이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니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영화를 처음 볼 때 새벽에 혼자 극장에서 봤습니다. 새벽 감성의 영향을 크게 받는 사람이라 더 눈물이 났던 것 같아요. 각성한 에블린이 그럼에도 난 너와 살아가겠다 선언하며 딸 조이를 와락 껴안는 걸 보았을 때는, 내 인생 전부에서 엄마와 있었던 모든 갈등과 부딪힘의 순간을 한 번에 보듬어 주는 엄청난 위로를 받는 듯했습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꽤 긴 시간을 가족과 떨어져 살았다 보니 엄마에 대한 이미지는 그립고 애틋하고 소중한 관념적인 존재처럼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새벽에 엄마 생각이 나서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을 더 울었습니다. 이렇게 감동받아 놓고는 또 본가에 내려가면 하루 이틀 지나지 않아 서로 귀찮아하고 싸울 것이면서도요.

뭐,

아무렴 어떨까요.

평탄하고 행복하기만 한 결말은 없는 게 인생인걸요.



2. 아무리 최악의 현실이더라도


주인공 에블린은 정말 별 거 없는 인물입니다. 세탁소를 운영하며 세금 신고에 쩔쩔매고, 가족과의 사이는 이리저리 삐걱대고, 포기한 꿈이 너무 많고, 쳇바퀴 같은 각박한 현실을 겨우겨우 살아내고 있는 사람이지요. 하지만 그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수많은 에블린 중 가장 실패한 삶을 살고 있기에 가장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에블린이 과학자로 크게 성공한 우주에서는 딸을 빌런으로 만들고 말았지요.


최선의 현실이 있고 최악의 현실이 있을까요? 내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과연 그럴까요? 에에올은 정말 많은 다양한 가능성들이 현실화된 우주를 보여 줍니다. 무엇이 낫고 무엇이 나쁜지 판단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에블린은 다른 세계에서 웨이먼드와 결혼하지 않고 배우로 성공한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빛나고 부러워 보이지만 그 세계에서의 웨이먼드의 꿈은 세탁소도 하고 세금도 내면서 함께하는 삶인 걸요. 어떤 선택을 하건 내가 이루지 못한 다른 선택이 더 낫지 않았을까 후회하는 건 똑같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아가건 결국 죽을 것이라는 건 변하지 않지요.



그러니 반대로 생각하면, 아무리 최악의 현실이더라도 사랑할 만한 점은 무조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손가락이 소시지인 황당무계한 우주에서도 발을 무척 잘 쓰니깐요. 모든 세계는 똑같이 의미 없고 결점 투성이니까, 거기에서 어떤 아름다움을 발견할지는 온전히 내 몫에 달려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이렇게 기분이 홀가분하고 세상이 아름다워 보일 수 없더군요. 내가 놓쳐 버린 것에 집중하느라, 슬픔과 분노의 감정을 자극하는 사건만 들여다보느라 세상에 여전히 존재하는 수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돌아보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에올의 눈물은 위로받는 데서 오는 감동의 눈물이라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찝찝함이나 먹먹함 하나 없이 너무나 상쾌했던 것 같아요. 카타르시스를 통한 정화라는 게 이런 거구나 몸소 느꼈습니다.



3. 사랑과 다정함과 친절함이 세상을 구한다


앞에서 못 한 웨이먼드 이야기를 해 볼까요.

에블린의 남편인 웨이먼드는 이 영화의 근본 정신을 함축한 캐릭터입니다. 조금은 어리숙하고 순진하고 엉뚱하지만 이는 그 나름대로 세상과 싸우는 방식이고 살아남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이런 인물들을 무시하기 쉽습니다. 약해 보이고,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이니까요. 하지만 영화는 웨이먼드처럼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임을 보여 줍니다.



조부 투바키에게 동화되었던 에블린은 전쟁의 한복판에서 싸우지 말고 친절해지자는 웨이먼드의 말에, 또 다른 세계에서 자신의 낙관적인 태도는 살아가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말하는 웨이먼드의 말에 마음을 돌립니다. 그리고 웨이먼드의 방식으로 싸우기를 택하지요. 적을 해쳐서 이기는 것이 아닌 싸움 자체를 없앨 수 없는 방식으로요. 그렇게 세계를 새롭게 보는 눈을 뜨듯 장난감 눈알을 이마에 붙이고 나타나서는, 자신을 향해 덤벼드는 적들의 불편함을 해소해 주거나 행복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는 식으로 싸워나갑니다.


왜 이렇게 감동적이었나... 개인적으로 제가 웨이먼드와 비슷한 사람이어서 그럴지 모르겠습니다. 주제를 모르고 현실을 모르고 낙관적이기만 한 사람. 그렇기에 내가 너무 철이 안 든 것인지, 내가 못나서 어른이 될 준비가 안 된 것인지 끊임없이 의심하곤 해요. 그런 저에게 '괜찮아 잘하고 있어', '넌 약한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싸우는 거야'라고 말해주는 영화라 가슴을 깊이 울렸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랑과 다정함과 친절함이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가 좋아요..

힘을 가진 영웅이 아니라 보잘것없는 사람들도 할 수 있는 일이니깐요. 곁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친절히 대하는 것이 어떤 영웅적 행위보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해주는 이야기가 좋습니다...




그러고 보니

에블린 같은 엄마를 둔 딸로서 조이에 공감하면서 봤고

더 나은 현실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으로서 에블린에 공감하면서 봤고

세상을 밝고 희망차게 바라보고 싶은 사람으로서 웨이먼드에 공감하면서 봤네요.

인물들이 죄다 마음을 울려서 과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전에 테넷을 봤고 이번에는 에에올을 보면서 내린 결론은

그렇게 고민했던, 결정론적 세계관인지 멀티버스인지 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계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간에 우리가 삶에서 희망을 볼 지 허무주의에 빠질지는 온전히 사람에게 달린 일인 것 같아요. 어떤 세계이든 의미를 찾을 구석은 많고 살아가는 건 헛되지 않습니다.

그저 매 순간 충실하고 긍정적으로 살면 될 것 같아요:)



매번 글 쓸 때마다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다시는 이렇게 긴 리뷰는 없을 것 같아요... 명실상부 2022년 최고의 영화입니다. 아직 극장에서 상영 중이니 많이들 봐주셨으면 좋겠고, 다들 친절하고 사랑하면서 살아가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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