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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토 Nov 13. 2022

하이 라이프 (2018)

종말에 관한 놀라운 상상력

푸른 배경에 아기의 손을 잡는 우주인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는 대사기극이었습니다...



포스터에 속아서 영화를 보게 된 것은 아니고, 악명은 미리 익히 들었습니다.굉장히 불쾌하고 찝찝하고 난해하고 지루할 수도 있는 영화라고 하더라고요. 이 영화를 보게 된 계기는 제가 참여하던 영화 소모임에서 <애드 아스트라>를 보았는데, 비교해볼 만한 작품으로 추천을 받아서 봐야지 목록에 넣어두고 있던 것을 이번 기회에 꺼내게 되었는데요, 알고 보니 '이동진 김중혁의 영화당'에서 두 작품을 비교해서 다루었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리뷰에서도 <애드 아스트라>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보았다면 많이 충격적이었을 것 같아요. 영화 전반에 깔린 어둡고 우울하고 무력해지는 분위기 가운데 인간의 폭력성과 잔인함과 날것의 욕망을 그대로 보여 주는, 의도적으로 기분 나쁜 영화입니다. 원래도 기괴한 호러나 스릴러를 (거기다 SF를 가미하면 훨씬 더)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이 영화의 의도된 기분나쁨이 나쁘진 않았는데 이야기나 메시지 측면에서 제 취향은 아니었네요. 호불호가 엄청 갈리는 영화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작품성은 정말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무엇보다 영상미는 최고였어요.



<하이 라이프>는 굉장히 난해한 영화입니다. 스토리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게 구성되지는 않았는데, 그래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인지 캐치하기 정말 어려웠어요. 사실 저는 영화를 보고 나서 정말 아무것도 이해가 가지 않아 어떤 감정을 느껴야하는지조차 감이 잡히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충격적이었다거나 정신적으로 힘들었다면 강렬한 인상으로 남기라도 했을 것 같은데, 안 그래도 그런 작품은 워낙 많이 보다 보니까 그렇지도 았았습니다. 굉장히 자극적인 장면이 많긴 했는데 영화의 느린 호흡과 관조적인 태도에 크게 몰입도 안 되고 살짝 졸리기도 하고 멍하니 보다가 끝난 느낌, 아무 생각도 감정도 없이 우주를 떠다니는 한톨의 먼지가 된 느낌으로 봤네요. 그래도 나쁘게 보지 않았어요. 좋다 나쁘다 평가도 뭘 알아야 할 수 있지... '그래서 결론이 뭔데?' 하는 궁금증이 가장 컸습니다.



영화의 설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범죄자로 이루어진 집단이 먼 우주로 실험을 하기 위해 보내지고, 우주선이라는 갇힌 공간 내에서 지구와의 통신도 끊긴 채 자살 임무에 배정된 사람들은 점점 파멸되어갑니다. 그 속에서 홀로 살아남은 주인공과 그의 어린 딸은 목적도 희망도 없는 삶을 계속해 나갑니다.


겉으로 봤을 때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폭력성과 잔인성, 욕망에 지배되고 서로를 파괴하는 인간의 추악함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인듯 합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굉장히 싫어하는 부류인데요... 인간에 대한 어떤 희망적 비전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그저 무력한 절망감에만 빠트리는 이야기를 정말 안 좋아합니다. 그게 현실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라도 픽션은 낭만적이었음 해요. 그럼에도 어딘가 존재하는 희망을 비춰 주었음 하고요.


하지만 이 영화를 그렇게 단편적으로 해석해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왜 범죄자들만 태운 우주선이었는지, 아빠와 딸 그 둘은 왜 살려 뒀는지, 한 줌의 희망이 싹트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면 딸을 키우는 이야기는 왜 등장했는지, 결국 마지막에 둘이 블랙홀로 뛰어드는 결말은 무슨 의미인지... 모든 것들이 의문 투성이었어요.



해석을 찾아 보면서 이 영화가 '창세기를 거꾸로 뒤집은 영화다'라는 것을 보았고 이제 좀 감이 잡히게 되었습니다. 태초에 에덴 동산에서 둘로 출발한 인류가 금기를 어겨 죄를 짓고 수많은 인류로 퍼져 나가게 된 이야기를 반대로 뒤집으면, 죄를 지은 인간들이 가득한 상태에서 금기로부터 자유로운 세계에 둘만 남은 상태로, 거기에서 다시 태초의 무로 돌아가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이는 영화의 플롯과 완전히 일치합니다. 인류의 시작에 대한 신화와 완전히 대칭이 되는 종말에 대한 신화를 만들었다고 할까요.


등장인물들은 각각의 삶을 가진 개인이 아니라 거대한 신화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몰입하기 어려웠지요. 그들이 처한 상황이 절망적이거나 끔찍하다기보다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자연의 섭리로 보였습니다. 아빠와 딸이 담담히 블랙홀로 들어가는 엔딩은 그것이 체념 끝에 삶을 포기한다는 느낌도, 새로운 세상을 찾아 떠난다는 느낌도 아닌 그저 끝이 있기에 끝을 향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허무하고 이해가 안 가는 엔딩이었는데, 신화의 관점에서 바라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영화의 제목 <하이 라이프>는 영화가 보여주는 태도와 일맥상통합니다. 영화의 관조적 태도, 끔찍한 장면을 덤덤히 그리는 모습은 위도 아래도 없는 우주 공간이지만 이 모든 것을 무언가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이를 정말 효과적으로 표현한 것이 제목이 뜨는 오프닝 씬인데요, 영화가 시작한 후 거의 20분가량 한참이 지나서 등장하는 제목 씬이 이 영화에서 가장 최고의 장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딸과 둘만 남은 주인공은 죽은 동료들의 시신에 우주복을 입히고 우주 공간으로 던지는데, 중력이 없는 우주이지만 시신들은 마치 추락하듯이 그려져요.



위에서 모든 것을 관망하는 또다른 시선, 그리고 무력하게 흘러가는 인간이라 하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데요, 보면서도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정적인 분위기가 여러모로 비슷하기도 했고요. 하이라이프는 매운맛 버전 스페이스 오디세이랄까요. 둘 다 인류는 어떤 존재이고 어디로 향하는가를 그리는데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애드 아스트라>와 비교하자면, 하이라이프와 애드 아스트라는 우주 영화라는 것 말고는 공통점은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완전히 반대된다고 할 수 있어요. <애드 아스트라>는 간단히 말하자면 우주 멀리까지 떠나서 알게 되는 아버지와 아들의 진심과 그들의 화해, 가까운 사람들을 하루하루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얘기를 하는 것 치고 좀 쓸데없이 장황하고 지루하게 늘어놓았다는 느낌은 있었는데, 저는 그 메시지가 좋았어요. 우주라는 거대한 배경 속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인간이지만 결국은 그 별 것 아닌 것들, 가장 가까이 있는 것들이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이야기... 제가 앞에서 리뷰했던 다른 작품들에서도 수없이 말했던 것이죠.


<애드 아스트라>가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그린 반면, 그리고 우리가 발붙여 사는 세상으로 시선을 돌려놓는 반면, <하이 라이프>는 특정 개인이 아닌 인류의 운명에 대한 거시적인 이야기입니다. 인물들은 지구로 돌아오기는커녕 모두 죽고 블랙홀 속으로 삼켜져 영영 떠나게 되지요. 그런 측면에서 나랑 감성이 잘 맞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영화 자체로 정말 잘 만들었다 생각하고, 창세기를 뒤집어 우주 공간에서 펼쳐 놓는 미래의 신화를 만들어낸 상상력이 정말 대단했다고 생각합니다. 매번 취향에 맞는 영화만 볼 수도 없죠. 생각해볼 거리가 많아서 시도하기는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보고 싶지는 않네요..)



그리고 로버트 패틴슨을 보기 위해 영화를 본 사람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표합니다... 필모깨기용 작품으로서는 딱 제목 뜨기 직전까지 1n분만 좋았어요,, 귀여운 아기와 육아하는 홀애비..

테넷 이후 롭팻에 관심이 가기 시작해서 필모깰생각 드릉드릉 하고있는데 그의 필모 상당수가 다 이렇다니

저는 그냥 트와일라잇이나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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