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드 <쿠조의 대죄>, 내 청춘은 지났구나 느낄 때
넷플릭스 일드 <쿠조의 대죄>를 보다 엉뚱한 장면에서 '아...'하는 풍선 바람 빠지는 탄식이 나왔다. 10년 전 죽은 딸의 진실을 쫓는 형사가 딸의 옛 친구를 만나는 장면이다. 세월은 무심하게 흘러, 딸의 스마트폰에 붙여진 스티커 사진 속에서 함께 웃던 소녀는 어느덧 우는 아기를 유모차에 태운 어머니가 되어 나타났다.
“그 애는 카라를 좋아했어요.” 친구가 회상했다.
“입는 옷의 카라말이냐?” 아버지가 되물었다.
“아뇨, 그때 유행했던 한국 아이돌요. 저는 소녀시대를 좋아했고요.”
그 대화를 지켜보던 나의 시간이 순간 덜컥, 하고 길을 잃었다. 아 소녀시대는 벌써 옛날이 되었구나. 영영 20대일 것만 같던 날들이 어제의 벚꽃처럼 흩날려 가버렸다는 실감. 내 찬란했던 젊음도 이제는 '그때 그 시절'이라는 서랍 속에 정리되어야 할 과거가 되었구나 싶어 마음 한구석이 헛헛해졌다. 사진 속 시간은 박제되어 그대로인데, 인생은 쉼 없이 흐르며 나를 낯선 계절로 데려다 놓는다. 이제 세월의 뒷자리에 앉아 흐릿해지는 일만 남은 것일까.
하지만 아쉬움에 젖어 고개를 드니, 어제까지 만개했던 벚꽃 대신 작은 연두색 잎들이 돋아나 있었다. 묘하게도 아쉽지 않았다. 수많은 벚꽃의 개화와 낙화를 지켜보며 충분히 그 계절을 통과해왔기 때문일까.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나는 벚꽃보다 녹음을 더 사랑한다는 것이다. 꽃이 질 때 비로소 나무의 단단한 골격이 보이고, 가을 단풍의 아름다움도 알고 겨울 나뭇가지가 추위를 견디는 존엄함도 이제는 안다. 흐드러진 벚꽃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날 좋은 날 나들이를 가지 못해 안달복달하며 생의 화려함에만 매달리던 예전의 나는 몰랐던 풍경이다.
불교에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은 변하며 영원한 것은 없다는 뜻이다. 이 말은 인생의 허무를 탓하는 비관이 아니다. 오히려 만물이 변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순리이며,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역설이다.
삶의 고통은 대개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거나 오지 않은 미래를 앞질러 걱정하는 데서 온다. 하지만 이미 흘러간 것은 빛바랜 사진일 뿐이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안개처럼 희미할 뿐이다. 지금 내 눈앞의 연두색 잎사귀처럼 가장 선명하고 뚜렷한 실체는 오직 '현재'뿐이다. 소녀시대의 노래에 열광하던 나의 뜨겁던 시대도, 잎사귀가 돋아나는 이 정적인 봄날도, 결국 같은 생의 궤적 위에 있다. 나는 오늘도 변해가는 나를 긍정하며, 내 곁을 흐르는 이 순간을 살아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