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의 300만원 현질 사건
이번에 우리반 남학생이 큰 사고를 하나 쳤다. 저번 주 화요일 아침, J 어머님으로부터 하이톡이 하나 왔다.
“안녕하세여 선생님 편한시간에 전화 부탁드려여” 싸한 메시지였다.
전담 시간에 심호흡을 몇 번 한 후 연락을 드렸다. 어머님께서 놀라운 말씀을 하셨다.
J가 6학년 남학생 두 명에게 협박을 당해, 게임(로블록스)에서 100만원 가량의 현금 아이템을 빼앗겼다는 것이었다. 한 학생당 50만 원씩 총 100만원을 뺏겼다는 주장이었고, 나는 곧 학폭의 가능성을 직감했다.
이후 학부모님께서 보내주신 카톡 캡처를 확인해 보니, 실제로 문제의 6학년 학생들이 우리반 학생에게 욕설을 하며 아이템을 달라고 요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사안이 가볍지 않다고 판단하여, 즉시 6학년 담임 선생님들께 상황을 알리고 사실 확인을 부탁드렸다.
그리고 아이를 직접 조사해 보니, 어머님의 말씀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였다. 50만원씩 뺏긴 것이 아니라 대략 10만 원 정도의 아이템을 선의로 구입해 주었다는 것이었다.
J 학생은 중국 다문화 가정 출신으로, 말투가 다소 느리고 어눌한 편이었다. 내가 로블록스라는 게임 구조와 아이템을 잘 알지 못하다 보니 아이의 설명을 바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아이에게 직접 관련 용어를 적어 보도록 하여 상황을 파악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아이와 어머니의 진술이 서로 달라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졌다.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내 휴대폰에 로블록스를 설치하고 아이 계정으로 접속해 살펴보았지만, 결제 내역을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사안을 파악하는 데 애를 먹던 중, 6학년 부장님께서 연구실 컴퓨터로 로그인해 주셔서 결제 내역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결제 내역은 5월부터 불과 며칠 전 주말까지 이어져 있었고, 11,000 로벅스(robux)를 반복적으로 결제한 기록이 있었다. 11,000 로벅스는 한화 약 15만원이었으며, 전체 내역을 살펴보니 총 300만 원에 달하는 금액이 게임 결제로 사용된 것이 확인되었다.
이 사안은 곧바로 관리자에게도 보고되었고, 나는 어머님을 학교로 모셨다. 그만큼 규모가 큰 사건이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6학년 남학생들을 조사한 결과, 우리 반 J가 실제로 구입해 준 게임 아이템은 각 15만원어치 수준이었다.
또한, 카톡에 담긴 협박성 대화 역시 아이템을 직접적으로 요구한 것이 아니라 로블록스 내 ‘훔치기 게임’에서 비롯된 갈등 상황이었으며, 이미 학생들끼리 해결된 문제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J에게 다시 확인해 본 결과 역시 같은 내용이었다. 아이템을 구입해 준 것도 협박에 의한 것이 아니라, J가 스스로 “돈이 많으니 괜찮다, 용돈이 많으니 그냥 사주겠다.” 라는 식으로 자발적으로 제공한 것임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아이는 어떻게 300만 원이나 되는 금액을 게임에 사용할 수 있었을까? 조사 결과, 아이는 어머니의 지갑에서 꾸준히 현금을 가져온 것으로 드러났다. 한 번에 오만원권 여러 장을 훔쳐 근처 편의점에서 구글 기프트카드를 구입했고, 이를 통해 로벅스(robux)를 충전하여 게임 속에서 무분별하게 소비했던 것이었다.
게임머니 사용 내역도 모두 출력해 확인해 보았다. 로블록스는 ‘게임 속의 게임’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 다양한 미니게임마다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하는 게임 중에는 현금 아이템 하나가 7~8만 원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
방과후에 어머님께서 학교로 오셔서 교감 선생님과 상담을 진행하셨다. 나는 그 사이 연구실에서 아이를 다시 조사했다. “정말 두 명에게만 아이템을 사준 것이 맞느냐, 300만 원을 썼는데 다른 친구들에게도 선물을 했을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라고 재차 확인했다. 실제로 6학년 학생들 사이에서도 “같은 반 5학년 남학생들에게도 아이템을 사줬다."는 언급이 있었다.
추궁하자 아이는 같은 반 K학생에게도 아이템을 사줬다고 털어놓았고, 최종적으로 딱 3명에게만 사주었다고 말했다.
아이를 교무실로 데리고 내려가니, 어머님은 이미 울어서 눈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이를 보자마자 “넌 나보다 네 친구들이 더 중요하니? 거짓말 좀 그만해라.”라며 아이를 꾸짖으셨다.
그날 하루 정리된 사실은 이렇다.
아이는 어머니 돈 약 300만 원을 훔쳐 5월부터 최근까지 로블록스에 현질을 했다.
그중 친구들에게 선물한 액수는 6학년 남학생 각 15만 원, 같은 반 학생 8만 원 정도로 총 38만 원가량이었다.
전날 밤에는 가출하여 경찰서에 찾아가 자수를 하겠다는 행동까지 보였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놈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 날, 나는 우리 반 K에게 J로부터 아이템을 받은 적이 있는지 조사하였다. 그런데 아이의 이야기가 달랐다. J는 8만원 상당의 아이템을 줬다고 했지만, 실제로 k는 30만원 가량의 현금 아이템을 선물로 받았던 것이었다.
또한 K 외에도 우리 반 남학생 3명이 로블록스 아이템을 받았으며, 각각 10만원 내외의 금액에 해당하였다. 정리해 보면, 6학년 학생 두 명이 각각 15만 원, 같은 반 K가 30만 원, 그리고 나머지 3명이 10만원을 받은 셈이었다. 결국 총액은 약 100만 원 정도가 맞았다.
나는 다시 한 번 J에게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J가 거짓말을 한 것인지, 아니면 기억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다만 그만큼 J가 상황 파악이 서툰 아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였다.
나는 현금 아이템을 받은 학생들을 모두 불러 어떤 아이템을 받았는지 직접 쓰게 하였다. 포스트잇을 나누어 주고 각자 받은 아이템과 날짜를 적도록 하였으며, 이를 실제 결제 내역과 대조하여 몇 월 며칠에 무엇을 받았는지까지 확인을 마쳤다.
그 후, 각 가정의 학부모님들께 연락을 드렸다. J 어머니께서는 돈을 돌려받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다른 학부모님들께 J 어머니의 뜻을 전달하고, 구체적인 금전 문제는 가정 간에 직접 연락을 통해 조율하도록 조치하였다.
1. 반장 어머니는 흔쾌히 돈을 돌려주겠다고 하셨다. 이전에도 J가 5만원 짜리 선물을 준 것을 이상하게 여겨, 반장에게도 5만원 상당의 선물을 주도록 하고 부모에게 허락을 받았는지 확인까지 하셨다고 한다. 그 이후로는 비싼 아이템이나 부모 허락을 받지 않은 선물은 금지했다고 하셨다. 그런데 아이가 이를 어기고 다시 비싼 게임 아이템을 받은 것이었다. 어머니께서는 아이를 엄하게 다스리겠다고 하셨다. 추후에 들으니 아버지께서 휴대폰을 부수셨다고 한다.
2. 30만원 어치를 선물받은 K 어머니도 마찬가지로 흔쾌히 돈을 돌려주셨다. 금방 돈이 입금되었다고 한다.
3. 부반장 어머니도 같은 태도를 보이셨다. 이미 이 사건에 대해 아이에게 들어서 알고 계셨기 때문에 설명할 필요가 줄어든 점이 좋았다.
4. 문제의 L학생은 아버지와 먼저 통화를 했다. 아버지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일단 돈 문제에 있어서는 돌려주는 것이 맞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어서 하신 말씀은 조금 엉뚱하게 느껴졌다. 자신과 아내가 게임 업계에서 일하는데, 로블록스라는 기업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하셨다. 작년에도 아동 성추행범이 그 게임을 통해 범죄를 저질렀으며,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그렇게 큰 돈을 가지고 현질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납득하기 어렵다며 환불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내게 물으셨다. 내가 그런 부분을 알 리가 없었다. 나는 가급적 직접 문의해 보시라고 안내드렸다. 잠시 후에는 어머니께서도 연락을 주셔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이 어머니는 돈을 돌려주고 싶어 하지 않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른 학부모님들의 의견은 어떤지 내게 물으셨고, 나는 대부분 돌려주시는 게 맞다라는 입장이라고 전달드렸다. 그러나 이 분은 아이에게 직접 확인 후에 돈을 돌려주겠다는 입장을 고수하셨다.
5. 6학년 학생들은 각 담임 선생님들께서 연락을 하셨다. 그중 문제의 H학생은 형편이 어려운 가정이었다. 어머니와 학생 단둘이 사는 가정으로, 아이는 자주 결석을 하였고 돈이 없어 현장체험학습 참여도 꺼릴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6학년 부장님과의 통화가 처음에는 반가운 분위기로 시작했으나, 곧 험악해졌다. 상대 학부모가 돈 관리를 제대로 못한 것이 원인 아니냐, 내가 돈을 물어줄 것이 아니라 본인 지갑부터 잘 간수하라는 식으로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물론 그 말에 일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줄 돈이 없다.”는 의미였다. 다행히 다른 6학년 남학생의 경우에는 학부모님께서 원만히 돈을 보내 주시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이 가정에 대해 더 살펴보니 부모간의 관계가 매우 좋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이에 대해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고, 어머니는 아이를 통제하지 못했다. 아이는 오늘도 학교에 휴대폰을 들고 왔다. 분명 지난번 교감 선생님과 담임인 나와의 상담에서 휴대폰을 2G로 바꾸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달라진 점은 없었다. 물론 아이의 현질은 당분간 멈추겠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부모가 협심하여 아이 교육에 힘을 쓰지 않는다면 훗날 아이가 성장했을 때 더 큰 규모의 사고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300만 원을 현질했다는 것은 단순히 돈 일부를 돌려받는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다. 나 역시 초등학생 시절, 추석에 받은 용돈 5천 원을 당시 인기 있던 게임인 ‘던전앤파이터’에 몰래 사용하였다가 부모님께 들켜 크게 매를 맞은 적이 있었다. 그때 들었던 말이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였다. 지금 이 아이는 이미 소도둑의 낌새가 보인다.
요즘 출근하면 나는 J의 휴대폰부터 압수한다. 그러나 아이가 과연 제대로 반성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오늘도 눈빛이 맹한 아이의 표정을 보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한숨이 절로 흘러나온다. 교사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어디까지일까,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