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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거리가 필요해.

오래가는 관계는 서두르지 않는다

by 은빛지원


오늘의 필사

윌리엄 셰익스피어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

격렬한 기쁨은 격렬하게 끝이 나게 마련이지. 불과 화약이 닿자마자

폭발하듯 승리는 절정에서 죽게 마련이야. 지나치게 단 꿀은 도리어

달아서 싫증이 나고, 맛을 보면 입맛을 버리지. 그러니 사랑은 적당히

해야 해. 오래가는 사랑은 모두 그러해. 서두르면 느리게 가는 것보다

오히려 느린 법이지.



"격렬한 기쁨은 격렬하게 끝이 난다.

불과 화약이 만나면 폭발하듯,

지나치게 단 것은 도리어 싱거워지기 마련이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속 로런스 신부가 두 사람의 비밀 결혼을 주재하며 건넨 충고다. 뜨겁게 타오르는 사랑일수록 쉽게 식어버릴 수 있음을 경고하며, 사랑도 적당한 속도로 가야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이 문장을 읽으며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빠르고 강하게 다가가면 쉽게 타올랐다가 사그라지는 불꽃처럼 관계가 금세 식어버릴 수 있다. 반대로 오래가는 관계는 서두르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를 존중하는 사이에서 만들어진다.

어릴 적 만난 친구들뿐 아니라 사회에서 알게 된 인연 중에도 오랜 시간 변함없이 이어지는 관계가 있다. 몇 년 만에 만나도 어제 본 것처럼 편안한 친구가 있는가 하면, 한때는 세상 무엇보다 소중했지만 지금은 기억 속에서 서서히 사라져 가는 인연도 있다.


오랜만의 전화 한 통, 그리고 위로

지난겨울, 눈이 펑펑 내리던 날. 독감 후유증으로 몸도 무겁고 머릿속은 온갖 잡다한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순간, 오래 연락이 뜸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커피 한잔 할래?"몇 년 만의 연락에도 망설임 없이 "얼른 나와!" 하며 반갑게 맞아주는 친구,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머릿속이 맑아졌다. 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친구이기에, 언제나 명쾌한 답을 내려준다. "넌 그동안 연락도 안 하고 뭐 했니?" 그런 말조차 필요 없는 사이다. 서로 바쁘게 살다 보면 1~2년은 금세 지나가 버리지만, 다시 만나면 어제 본 것처럼 편안한 관계,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마음이 정리되는 듯한 그런 친구. 이런 관계야말로, 정말 소중한 인연 아닐까?


집착이 만든 거리, 그리고 시간이 준 해답

어릴 적, 나에게 지나치게 집착하던 친구가 있었다. 도시락도 같이 먹어야 하고, 화장실도 꼭 함께 가야 했고, 교실 자리도 무조건 내 옆이어야 했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지정 좌석 없이 먼저 오는 사람이 원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했다. 나는 늘 일찍 등교하는 편이라 자연스럽게 내 옆자리를 가방으로 친구 자리를 잡아두었는데, 다른 친구가 그 자리를 탐내며 장난을 쳤다. 그 친구는 속상한 마음에 다른 자리로 갔고, 나는 여러 친구들과 두루 잘 지내는 편이었는데 그 친구에겐 그게 큰 상처였던 거다. 미안하기도 하고 잘 됐다는 두 마음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멀어졌고, 가장 친했던 친구와 말을 하지 않는 상태로 졸업을 하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났을 땐, 어릴 적 감정은 모두 잊은 듯 서로 반갑게 맞이할 수 있었다. 자주 만나지도 연락도 자주 못하지만 그 친구가 어디에서든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오래가는 관계의 이유

사람과의 관계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너무 가까우면 서로를 지치게 하고, 너무 멀면 마음이 닿지 않는다.

서로에게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오랜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이어지는 인연.

그런 관계야말로 진짜 소중한 것이 아닐까?

오래된 인연들의 얼굴이 하나둘 스쳐간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불꽃같이 타오르는 사랑은 없었지만, 대신 오래도록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인연들이 곁에 있다. 그것이야 말로 내가 가진 가장 큰 재산이며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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