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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나는 다시 나를 만난다

운이 아니라 길이다

by 은빛지원

오늘의 필사


푸른 밤 – 나희덕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 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 길이었다.

.



나는 운이란 걸 믿지 않았다. 세상에는 거저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은 결국 내 노력의 결과여야 한다고 여기며 살아왔다. 누군가는 운이 좋아 탄탄대로를 걸었다고 하지만, 내겐 그런 기회가 주어질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왔던 내가, 오늘 문득 3년 전의 비젼 노트를 꺼내 보았다.

아픈 몸을 이끌고 공부를 하겠다고, 변화하겠다고 다짐하며 만들었던 노트. 그때의 나는 나름 당당했다고 믿었지만, 지금 다시 들춰보니 마치 개구리가 처음 세상 밖으로 나와 소심하게 세상을 경험하듯, 두려운 마음으로 목표인지 꿈인지도 모를 것들을 적어 내려간 듯했다.


비젼노트 속 나의 길

공부, 사업, 재테크, 건강, 취미, 정리, 나에 대한 투자. 7개의 항목 중에

이룬 것도 많았지만, 시도조차 못 하고 기억에서 사라진 것도 있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들어오는 항목이 있었다.


나에 대한 투자 의 기록

. 잊고 살았던 내 꿈 찾기

. 사람 관계, 싫으면 싫다고 정리하기

. 나만의 공부 책상 만들기

놀랍게도 이 세 가지는 모두 이루어졌다.

나는 나를 위한 공간을 만들었고, 원하지 않는 관계를 정리하는 용기를 가졌다.

그리고 잊고 살았던 글쓰기에 대한 꿈을 찾아가는 길이다.


공부 쪽도 나름의 만족을 느낀다.

공부를 다시 시작한 계기는 암을 겪으면서였고. 치유하는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서 시작되었지만, 병으로 인해 몸이 멈춘 순간에도, 나는 내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나 자신을 성장시켜 나아갔다. 사업은 더 큰 확장을 꿈꾸기도 했지만, 건강이 허락하지 않았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한 채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결국 모든 걸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무리한 확장 대신, 지금의 가게를 유지하며 서서히 정리 수순을 밟기로 했다.


예전에는 불편한 관계를 억지로 유지하며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지만, 이제는 원하지 않는 관계들은 미련 없이 정리하고, 나에게 편안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기로 했다. 오늘 비전 노트를 펼쳐 보며 내가 기록한 나의 꿈 나의 비젼 노트를 보며 그래도 내가 기록하고 꿈꾸어 왔던 일들이 조금의 성 과는 이룬 듯해서 감사하고 제외된 기록들은 다시 수정하고 정비해 보려 한다.


오늘도 필사를 하며 시를 여러 번 읽어 보게 되었다,

나희덕 의 《푸른 밤》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이 시를 읽으며 내가 걸어온 길들을 떠올려 보았다.

멀어지려 했던 길이 결국은 나를 향한 길이었다는 걸.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돌아가고 돌아가며 수많은 길을 걸었지만, 결국은 내 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운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운이라는 건 특정한 길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걸어온 길 자체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방황하고, 때로는 외면하고 싶었던 길이었지만, 결국 그 길이 나를 만들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운이 아니라 실행이었다.


비젼 노트 속 몇몇 목표들은 사라졌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이루어냈다.

길 위에서, 나는 다시 나를 만난다

지금도 나는 길 위에 있다.

길을 걸으며 내 안의 목소리를 듣고, 필사를 하며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또 글을 쓰며 나의 길을 기록하고 있다.

3년 전의 나보다 조금은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나는 또 한 걸음을 내디딘다.

길 위에서, 나는 다시 나를 만난다.

그리고 나는, 멈추지 않고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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