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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

쑥과 두릅을 요리

by 메리골드

이 책을 소개하기 전에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소개하고 자 한다. 혜민 스님은 승려이자 미국 대학교수라고 적혀 있었다. 지은 책으로 [젊은 날의 깨달음] 이 있다. 국내에서는 '차세대 리더 300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던 분이다. 혜민 스님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란 2012년에 발간된 책이었다.


책 제목에 이끌려 읽긴 했다. 봄에 길을 걷다 멈추면 보이는 것이 뭐가 있을까?


내 눈엔 쑥이 보였다. 그리고 산 두룹이. 쑥 캐서 청국장에 같이 넣어 먹고 두릅 데쳐 초고추장에 무쳐 먹었다.


책도 이렇게 무치고 데쳐먹고 하다 보면 언젠가 보석이 보이게 마련이다.



에세이. 혜민 스님이 쓴 글은 내용이 쉬어 잘 익혔다. 음식과 비교하면 깔끔하고 소박한 취나물 느낌. 글의 내용은 다소 많은 깨달음을 주는 정도.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도서. 글을 읽다 보니 상대가 나를 칠 때 지혜로운 이는 굽힐 줄 안다고 적혀 있기도 했다. 그런데 우린 어리 석은 인간이라 그런 이치를 얼른 깨닫지 못한다.


여러 문장 중 '행복은 생각이 적을수록, 함께 같이 나눌수록, 지금 바로 이 순간에 마음이 와 있을수록~' 그것이 평안이란 말이 인상 깊었다. 행복의 지름길은 첫째 나와 남을 비교하는 일을 멈추라는 의미도 좋았다.




오늘은 목요일. 반찬 배달을 가는 날. 난 오후 점심을 먹고 큰 바위 얼굴을 한 어르신을 만나고 왔다. 여전히 얼굴이 평안했다. 몸에 통증을 달고 사는 연세였지만 얼굴은 평온했다. 한 동안 거동이 불편해 어르신이 보이지 않자 난 평소처럼 반찬을 싸 들고 어르신 집을 방문했다. 유방암을 몸에 안고 통증을 부여잡으며 사시는 어르신은 올핸 제발 저 세상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가고 싶다는 데 왜 날 안 잡아가느냐? 그러면서 자신이 어려서 보고 겪었던 그 이야기를 이번에도 또 하셨다. 남편은 스님이었단다. 그 남편은 자신이 예수쟁이라면서 부지깽이로 때리고 심지어는 그것도 모자라 집에 있는 솥단지를 떼어내 교회 앞마당에 내던지며 교회 가서 살아라며 머리채를 흔들었다는 말씀도 하셨다.


그런 그 남편이 죽기 전에 종교를 개종해 천국에 가셨단다. 다른 집은 초상날 울고 불고 눈물을 흘렸다는데 그날 그 어르신은 너무나 기뻐 벙글벙글 웃었다고 하셨다.


난 두 권의 책과 한 분의 만남을 통해 또 다른 깨달음을 얻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선 행복이란 멈추면 보이는 것이라는 것과 [내가 확실히 하는 것들] 이란 책에선 이 세상에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은 우리 인간은 영혼의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가치관을 가지며 살아야 하는지를 아주 똑똑히 보고 있다. 이러한 것을 가르쳐 주는 또 다른 책이 있어 소개한다.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 이 책은 오프라 윈프리의 글이다. 오프라 윈프리는 [타임] 선정 '20세기 위대한 인물' [포보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에 오른 사람이다. 그녀는 1954년 미시시피주에서 태어났다.


열여섯 살에 내슈빌의 WVOL 라디오 방송국 견학을 갔다가 우연히 그녀는 방송과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그녀는 1984년에 WLS-TV의 아침 토크쇼를 진행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독서는 우리가 자신을 드러내며, 우리의 정신이 흡수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접근하게 한다.

그녀가 독서를 하는 이유는 더 높은 곳으로 향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독서는 위로 올라가는 디딤돌이니 이 말이 매력적이다.


이 책에서 내가 확실히 알게 된 것은 그녀가 14년간 칼럼을 쓰며 토크쇼 진행을 하면서 시청률이 기록적으로 올라갔다는 것이다.


앞서 열거한 혜민 스님이나 오프라 윈프리 모두 쓰기 활동을 통해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전자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가 나중에 행실이 나빠 그 책의 가치가 하락한 예이고 후자는 여전히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두 책은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고 열심히 살다 보면 인생의 새로운 것을 계속해서 배우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진정한 나 자신을 발견한다고 한다.

오프라 윈프리의 정신적 스승은 마야 안젤루로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 토니 모리슨, 오프라 윈프리 등과 함께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 여성 중 한 명이다. 그녀는 1970년 자전적 소설 [세상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를 발표했다.


오프라 윈프리는 게일 캉을 1976년에 처음 만났다고 한다. 그녀는 볼티모어 방송국의 뉴스 앵커였고 게일은 제작 보조였다. 우리는 둘 다 외부와 별 교류가 없는 데다 외부인에게 절대 호의적이지 않은 환경 출신이었단다. 오프라 윈프리가 가장 대단한 일을 할 때마다 크게 응원해 준 사람이 게일 캉이란다. 그녀는 게일이 그녀가 알고 있는 사람 중 가장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녀는 모든 사람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진단다. 이런 사람이 가까이 있다면 정말 축복일 것이다. 생판 모르는 뉴욕시의 택시 운전사도 아이들이 있느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게일이라니. 얼마나 따스한 마음을 가진 사람인가?




여기서 잠깐 오프라 윈프리에 대해 알아보자. 그녀는 열 살부터 열네 살까지 성적 학대를 당했단다. 그로 인해 성적으로 문란해져서 열네 살에 임신까지 했다고 한다. 1968년에 그녀는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는 몇 주 후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단다.


그녀는 그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단다. 퇴학당할게 두려워서. 그런데 가족 중 한 명이 자신의 비밀을 폭로했고 그 뒤로 모든 것이 변했다고 한다. 그녀는 충격을 받고 울었고 자신이 뭘 잘못했기에 이런 일을 당하는 거냐 소리쳤단다.


이런 그려가 그 후 또 한 번의 배신을 당했단다. 역시나 배를 걷어 차인 것 같은 고통을. [너를 치려는 어떤 무기도 소용없으리라]는 이사야서 54장 17절을 그녀는 그때 결코 잊지 않았단다. 어떤 힘든 순간에도 밝은 면이 있다는 것을 그녀는 깨달았단다.


이 일 후로 그녀는 자신의 내면에 난 상처를 치료할 수 있었단다. 난 어제 일타 강사로 알려진 전한길이란 유명 강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대치동에서 학원을 하다 약 20억 원의 빛을 졌다는 이야기는 가슴이 아팠다. 그런 일을 겪으면 사람들은 분명 가족에게 알리고 유서를 쓰고 삶을 포기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전한길과 오프라 윈프리의 공통점은 두 사람 다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또한 인종차별 정책에 관심이 많다. 그녀는 미시시피 주에서 나고 자랐다. 그 시절 그녀는 TV를 보기 위해 읍내까지 나가야 했단다. 그녀는 우리가 인생이란 긴 마라톤을 하면서 끊임없이 장애물과 함께 달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 긴 마라톤은 고난이지만 가끔 축복이기도 하기 때문이란다. 왜냐면 고난을 당할 때도 우리 인생은 우리가 당한 모든 경험은 소중한 가르침을 주기 때문이란다. 난 오늘 아주 소중한 이야기를 통해 욕심이 넘쳐 책을 출간했지만 욕심으로 세상에서 구설수에 오른 한 젊은 불자를 그리고 자신을 젊어서 그렇게 구박했던 어르신의 또 다른 불자의 이야기와 어려서부터 모진 일을 당했지만 시련에 굴복하지 않고 강인하게 살아남은 여성 앵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내면은 우리의 것이 아님을 내가 통제하고 해결할 일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잘 지키며 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가끔 고난을 당하면 주저앉고 싶어 한다. 살면서 누구나 겪게 마련인 그 순간을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넘어야 하는 장애물을 그냥 품고 그 장애물을 통과하면서 배우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게 성공하는 자와 뒤처지는 자와의 차이란다. 그러니 뭐든 긍정적인 자세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느낀다. 난 요즘 나이 들면서 몸이 변하는 것을 느낀다. 전처럼 빨리 걸을 수도 그리고 속내를 남에게 털어놓으면서 살 나이도 이젠 아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자신이 나이 들어 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어두운 그림자도 그녀는 우주를 향해 가는 여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난 오프라 윈프리의 정신이 맘이 든다. 결코 굴복하지 않는 나아감의 자세 말이다.


어딘가 강인한 면이 보인다. 역경을 많이 겪었음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온 그녀에게 이 글을 통해 큰 박수를 보낸다. 앞서 내가 만난 큰 바위 얼굴 어르신에게도 말이다. 지랄 같은 세상을 만나 전쟁에서 어머니를 잃었고 승려인 남편을 만나 욕을 당하면서 살았지만 지금도 오프라 윈프리처럼 암세포를 짊어지면서도 또 한해를 맞이하신 그 어르신을 보면서 늘 우리가 사는 인생이란 매 순간 긍정적인 사고로 어려움을 버티면서 사는 것임을 느끼는 하루였다.


또한 그녀는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린 가장 덜 감사할 때 감사해야 한다.


사실 난 요즘 감사할 일이 별로 없다. 왜냐면 이 사회의 여러 단면을 돌아보니 불편한 일,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일, 남을 배려하지 않는 교만한 일 들이 너무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 예로 난 약 한 달간 영어 알바를 하면서 전임자 때문에 굉장히 힘든 일과를 보낸 적이 있다.


일을 인수인계받아야 하는 자리에서 전임자는 여러 모로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정작 넘겨주고 가냐 할 엄무는 해결하지 않은 채 전화조차 받지 않고 해외로 가 버렸다.


이 상황에서 난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대한 감사하려고 노력했다.


약 이주 정도 이 일을 했을 때는 겨우 이 일에 적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일도 곧 있으면 자릴 비워 줘야 한다.


학생 중 한 명은 내가 영어를 가르치지 않으면 이 수업을 끝겠다는 학생도 있었다. 아이는 전부터 영어 수업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듯했다.


어른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된다. 겨우 열 살 안 팤의 아이들이 어려운 영어 단어를 외우느라 머리를 쥐어뜯으며 있을 일을 생각해 보라.


아이들의 이런 상황을 넘 나도 잘 아는 나로서는 최대한 수업을 즐겁고 쉽게 해야 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은 내 수업 참여도가 높았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신이 태풍의 눈 안에 무지개를 넣어 놓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 그 아이 덕분에 그날 무척 감사한 하루를 보냈다. 아이가 나에게 그려준 상당한 양의 사과 그림은 다른 아이의 그림과 비교했을 때 아이의 마음 상태가 매우 평안함을 잘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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