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달걀 꾸미기와 실버들의 기적의 그림
지난 4월 20일은 부활절이었다. 난 올해 실버 어르신들에게 그림지도를 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일종의 재능기부로 봉사하는 날 책을 읽고 읽은 책 속의 꽃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난 이 일을 하면서 민들레를 많이 그려 보았다.
그린 민들레를 최근에 승진한 지인에게 선물로도 주었다. 민들레를 보면 왜 그리 할 말이 많은지 모르겠다. 어려서 본 민들레꽃인데 중년이 되어 이제 실버 어르신들과 민들레를 보니 저 민들레가 그냥 피는 꽃이 아님을 느낀다.
내가 그린 민들레는 노란 털도 있고 초록 줄기도 있다. 그런데 실버 어르신들의 민들레는 머리가 다 사라졌고 줄기도 제각각 뭐라고 표현해야 맞을까? 젊은 시절이 다 사라진 어쩌면 쪼그라들고 힘도 없는 선들은 불규칙했고 색도 젊음의 색이 아닌 보라색, 어떤 색은 검은색 등도 있었다.
그림을 지도하면서 난 매번 뭔가 특별한 색감을 느낀다. 민들레 보라색 줄기를 보면서 아이들의 그림과 좀처럼 비교가 안 되는 또 다른 역동감도 조금 느끼기도 했다. 어른과 아이의 차이는 무엇일까?
아이들은 민들레를 색칠하라고 하면 온갖 색을 다 갖다 칠한다. 완전 총 무지객색이다. 그런데 어른들의 민들레는 단순하다. 한 가지 색이 거의 전부다. 아이들은 색연필 안의 색깔을 색깔은 거의 사용해 본다.
그러나 어른들은 단색인 것도 있었고 반대로 완전 화려한 색도 있었다. 아무튼 우린 민들레 그림을 서두로 부활절 잘 스티커로 달걀 꾸미기를 해 보았다.
난 어르신들이 색칠 놀이하는 것보다 스티커 붙이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을 보았다. 단순히 붙이고 떼고를 무한 반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난 그날 색을 단 두 가지 색만 사용하기를 권장했다. 빨강이나 노랑, 노랑이나 빨강, 초록이나 파랑. 이렇게 패턴식으로 스티커를 붙이게 해 보았다.
그랬더니 훨씬 색감이 조화롭고 그림이 질서가 있어서 좋았다. 색을 어떻게 잘 써야 그림이 예쁘게 나오느냐고 물어보길래 단조롭게 시작하라고 말했다. 너무나 화려한 색은 보는 사람의 눈을 산만하게 한다고 말이다.
그렇게 붙이고 떼고를 반복했더니 그럭저럭 작품이 되었다.
그 부활절 달걀 그림을 지도하던 차 아주 창의적인 작품이 나왔다. 입체적으로 표현한 분의 달걀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사람은 그저 스티커를 무한정 붙이기만 했다. 그런데 이 분은 스티커를 절반으로 붙인 후 끝 부분을 반으로 갈라 달걀에 붙였다. 그랬더니 병아리의 코와 입이 되었다.
두 번째 날은 민들레를 다시 그려 보게 했다. 그리고 난 선을 다시 그리게 했다. 첨에 6명이었는데 두 번째 수업엔 무려 10명이 되어 버렸다. 그림이 재밌다고 소문이 났나 보다. 난 그림을 그리는 일이 재밌어서 이렇게 어르신들과 소통하며 지내고 있다.
난 그날 가장 안타까운 그림을 한 장 발견했다. 검정 테두리 안에 빨간 하트를 넣어 그린 그림이었다. 그리고 빨간색으로 엄마라고 쓰여 있었다. 엄마, 얼마나 그리운 낱말인가?
그 어르신은 내가 일명 큰 바위 얼굴이라고 부르는 어르신이다. 일제강점기 까마귀 떼처럼 시커먼 반란군에 둘러 싸인 날 자신을 구하기 위해 귀하게 담근 고추장 통을 통째로 반란군에게 바쳐 자신의 생명을 구한 그 엄마라는 이름을 말이다.
그 당시 그 어르신의 연령은 겨우 16세. 그러니 그 엄마는 그 귀한 딸을 살리고 싶었을까?
"반란군의 총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 숨 죽이고 있어야 돼. 들키면 잡아갈지 몰라."
총을 피하고 하늘에 날아가는 쌕쌕이를 피해 목숨을 부지해야 했던 그 어르신의 연세는 이제 90 하고 한 살.
올해 그 어르신은 부쩍 거동이 불편하다. 난 그 어르신의 집을 목요일마다 반찬을 가져다 드린다.
그런 횟수가 벌써 10년이 되었다. 그러니 난 그 어르신을 어머니라 부르고 그 어르신은 날 딸이라고 부른다.
오는 길도 가는 길도 너무나 힘든 거동이다. 작은 유모차를 이끌고 디귿자 허리를 겨우 구부려 이 자리에 참석하신 거다. 요양보호사님의 말에 의하면 옷을 입고 몸을 움직여 마음을 열기까지 무진장 애를 쓰신다고 한다.
그러니 난 그 어르신의 팔과 다리가 얼마나 연약한지 안다. 그림을 그리는데 그 엄마라는 글자를 새겨 넣는데 팔이 떨리는 걸 보았다.
그러면서도 엄마를 그려 넣기 위해 온 힘을 다 끌어 모으신 그 어르신을 보면서 난 이 민들레는 민들레라는 그림책 수업과 그림 그리기가 한 사람을 살리고 있음을 알았다.
여기다 더 짠한 어르신이 또 한 분 있다. 이분은 휠체어를 타고 오신다. 그 옆에는 딸이 함께 있다. 어르신은 미소가 백만 불짜리다. 몸은 비록 걷지 못하고 손고 발이 말을 안 듣지만 웃는 모습은 내가 본 그 어떤 사람보다 밝다.
난 그 어르신이 그날 그린 민들레 그림에 감동을 받았다. 많은 민들레 그림을 보고 실물을 보았지만 그 그림은 내가 본 그림 중 최고였다. 세상에 다시없을 귀한 그림이었다. 마비가 된 손으로 덜덜 떨리는 손으로 펜을 붙잡고 온 손끝에 집중해 그림을 그렸으니 말이다. 그러니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그 정성이 너무가 가득했다. 그 어르신은 그날 온 신경을 다 끌어 모아 민들레 그림을 그리셨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딸은 엄마의 손을 같이 붙잡고 두 손이 같이 민들레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그러니 완전 초집중 모드다. 손이 있어도 다리가 활발히 움직여도 난 그림에 재능이 없다고 그림을 안 그리겠다는 어르신도 있었다.
그래서 난 이렇게 말씀드렸다. 내가 본 가장 멋진 그림이 바로 저기에 있어요. 그러면서 난 그 어르신의 그림에 박수를 쳐 주었다. 그랬더니 나머지 어르신들도 힘을 내어 그림을 더 집중해서 그렸다.
누구든 작은 희망이 있고 할 수 있다는 믿음만 있다면 난 기적이 일어난다고 본다. 그날 난 그 어르신들의 그림을 보고 마치 기적의 손, 기적의 습작, 마술 같은 그림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텃밭에 민들레 넘 많아 뽑아도 뽑아도 자란다네
그 질긴 생명력 그게 매력인데
근데 지난번에도 줄기는 안 칠하셨던데 두번째도
줄기가 민낯이다. 그것 참 희안하다.
들에 피어도 민들레
산에 피어도 민들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