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by 한소로


목요일입니다. 글쓰기 모임에 참석하는 날이에요.

주제가 만만치 않아 30분짜리 글쓰기는 45분짜리 글쓰기가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글은 중간에 끊겼습니다.

혹시 뒷내용을 상상하신 분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저도 제가 상상한 내용을 남겨보겠습니다





"이혼해."


"······이러지 말자, 여보."


아내는 남자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침묵이 무겁게 공기를 짓누르자 남자가 힘겹게 입을 뗐다.


"조금만 참으면 돼, 진짜 조금만······."


"그 말만 수백 번이야. 더는 못 참아."


아내의 말이 차분한 듯 냉정하게 떨어졌다. 화가 나면 날수록 더 차분한 목소리를 내는 여자의 성미를 알고 있어, 남자는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지금 상황이 좀 안 좋아서 그래. 조금만 기다리면 우리 다시 잘 살 수 있어."


"난 그때까지 못 버티겠어. 우리 둘만이 아니잖아."


"······애들도 이해해 줄 거야."


"애들이 이해해도 난 못해. 아니, 안 할래. 난 우리 애들 남부럽지 않게 키우고 싶어. 그런데 지금 우리 꼴을 봐. 이 좁은 집에서 몇 년이나 버티라고? 난 못해."


"여보."


"당신 사업이 잘못된 거,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당신이 한 푼도 없는 상태야? 아니잖아. 가진 거 다 팔아서라도 좀 더 나은 곳에서, 가끔 애들 맛있는 거라도 먹이면서 살아야 하잖아. 얼마 전에 애들이 뭐라는 줄 알아?"


차분하게 시작된 아내의 목소리가 남자를 찔러오기 시작했다.


"저번엔 피자가게 앞을 지나는데 정말 맛있는 냄새가 나더라. 애들이 침을 꼴깍꼴깍 삼키는 거야. 내가 피자 먹고 갈까, 했더니 애들이 뭐라는 줄 알아? 아니에요, 엄마. 우리 이제 이런 거 못 먹잖아요, 이러더라. 이게 말이 돼? 애들도 다 알아, 우리가 망한 거. 내가 이 정도는 괜찮아, 그러는데 그렇게 먹고 싶은 얼굴을 하고도 계속 아니라고, 아니라고 하면서 빨리 집에 가자고······."


울음 섞인 울분이 터져 나왔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힘든데 그 망할 주식은 왜 안 파는 거야? 땅은 또 왜 안 팔아?! 조금만, 조금만! 그놈의 조금만! 그게 대체 언제까지인데? 우리 애들 다 크고 난 다음에?!"


그녀는 숫제 악을 쓰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동안 억누른 채 참아왔던 것들이 한참을 쏟아져 나왔다. 종내에는 눈물과 함께 끝이 났고 울음소리만이 집안을 가득 채워 남자의 발목께까지 찰랑거렸다. 그동안 할 말이 없는 남자는 고개를 숙인 채 모든 것을 듣고 있었다.


"······난 애들 데리고 친정에 갈 거야. 그렇게 알아."


여자의 선고가 떨어지는 순간에도 그는 소파에 동상처럼 앉아있었다.


쾅, 차가운 현관문 소리가 집안을 울렸다.




남자의 이혼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위로한답시고 전화를 건네거나 얼굴을 보자 했다. 한동안 그런 연락이 참 많이도 왔다.


그럴 때마다 남자는 술을 진탕 마셨다. 혼자서도 마시고, 집에서도 마시고, 밖에서도 마시고······.


그러나 다음날 일어나면 잔소리를 하며 해장국을 끓여주던 아내는 이미 집에 없었다. 술 마시고 들어와 꺼끌꺼끌한 수염이 난 턱을 비벼댈 아이들도 없었다. 남자는 점차 피폐해져 갔다.


"야, 그러게 팔라면 그냥 팔지 뭘 붙들고 있냐?"


친구가 잔에 소주를 따라주며 말했다.


"······그게 어떤 건데. 그건 안돼."


남자는 이미 취해 혀 꼬부라진 소리로 대꾸했다.


"어떤 건데?"


"마지막······ 보루지. 그래, 어쩌면, 진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푸, 남자가 술 냄새 가득한 한숨을 뿜어낸다. 마찬가지로 취했지만 상대적으로 조금 더 정상인 친구가 낄낄대며 웃었다.


"야, 그거 누구 추천받고 샀냐? 제대로 된 거 맞아? 너 사업하면서 사기 많이 당했잖아~."


"에라이, 씨. 야, 말도 하지 마! 내가 그것들만 생각하면~, 어휴~."


"그때 사기만 안 당했어도 사업은 안 말아먹었겠다, 인마."


친구의 말과 달리 사기당한 돈을 다 합쳐도 마지막 위기를 넘기진 못했을 터였다. 그러나 남자는 그 말을 술과 함께 꿀꺽 삼키고 딴소릴 했다.


"이번 건, 푸, 진짜야~. 이건 진짜라고."


"너 그 주식이랑 땅값 오르는 거 기다리는 게 벌써 몇 년째냐? 벌써 한 3년은 된 거 아니냐?"


"5년째다, 5년째."


"뭐? 벌써?"


"벌써는 무슨."


남자는 소주잔을 입속으로 또 털어 넣었다.


"그거 팔고~, 그냥 와이프 원하는 대로 더 큰집을 갔으면, 끅, 이혼은 안 당했잖냐. 무슨 똥고집이냐?"


"내가 그동안 사기당하면서 배운 게 좀 있다. 이번 건, 푸, 진짜야~. 이거 붙들고 있어야 말년에 고생 안 한다."


"너랑 같이 그 땅 산 정식이는 벌써 그거 팔았던데? 돈 될 땅도 아닌데 괜히 샀다고~, 팔리지도 않는다고 툴툴대더니 어떻게 팔았다더라."


"될 땅이니까 팔았지, 웃기는 놈이네! 그놈!"


남자는 입으로는 친구를 욕했지만 조금 불안해져 괜스레 목소리를 높였다.

"너한테 그 주식 추천한 거 현태지? 그놈은 그거 아직 갖고 있다던?"


"······팔았대."


"언제?"


"3년 전인지, 4년 전인지······."


남자의 목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줄어들었다.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남자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소주잔을 들어 올렸다. 둘은 잔을 부딪치고 한 잔씩 더 마셨다.


탁! 소주잔을 소리 나게 내리면서 남자가 거칠게 중얼거렸다.


"내가, 그거 살 때 10년 보고 산 거야! 그놈들 말만 듣고 산 게 아니라고! 푸우, 두고 봐라, 5년 뒤에 어떻게 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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