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사장

by 한소로


쏴아아아. 쏴아아아.


파도가 들이쳤다가 빠져나가며 모래를 쓸어갔다. 지유는 발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자락을 느꼈다. 따가운 햇빛이 피부를 찔러왔다. 그러나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온몸이 식었던 지유에게는 따스하게 느껴졌다. 옷에서 떨어진 물이 뚝뚝 떨어져 검은 모래사장을 한층 더 까맣게 수놓았다.


집에서 멀지 않은 모래사장은 지유의 놀이터이자 휴식처였다. 잠시 바다를 바라본 채 몸을 덥히며 서 있다가 짐을 두었던 그늘로 돌아왔다.

물기를 털고 집은 것은 책이었다. 지유는 책을 참 좋아했다. 책 속에는 가족이 있고 사랑이 있고 희망이 있고 모험이 있었다. 학교 선생님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지유야, 생일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이건 선생님이 준비한 지유 생일 선물이야.'


지유는 말 잘 듣는 아이였다. 선생님들은 착한 아이를 좋아한다. 담임 선생님은 반 아이들 모두를 공평하게 대해 주시는 좋은 분이었지만 지유에게 조금 더 마음을 쓰시곤 했다. 모두에게 주는 생일 선물이지만 지유에게는 콕 집어 책을 골라주신 것처럼.


'책이에요? 여기서 풀어봐도 돼요?'


'그럼.'


볼을 발갛게 물들인 지유가 조심조심 선물을 풀었다. 근사한 책이었다. 파도치는 바다와 황금빛 모래사장이 겉면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었다. 현무암 지대라 온통 검은 모래사장뿐인 지유의 섬마을과는 달랐다.

지유는 눈을 반짝이며 책을 꼭 끌어안았다.


'이 섬 출신인 작가가 쓴 책이라는구나. 지유네 동네 이야기도 나오던걸? 내용은 이제 고학년인 지유에게는 조금 유치할 수도 있겠지만, 그림들이 아주 멋지니까 마음에 들 거야.'


선생님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지유는 책을 펼쳤다. 선생님 말씀대로 책은 아주 멋졌다. 마음에 꼭 들었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어딜 가든 책을 들고 다녔다. 오늘도 책가방에 넣어서 학교에 가져갔다.

지유는 얼굴을 찌푸리며 손으로 책 귀퉁이를 만졌다. 딱딱한 표지가 조금 망가진 것이 느껴졌다. 쉬는 시간에 책을 펼쳐서 읽고 있다가 공에 맞은 탓이었다.


'야, 한지유! 너 또 책 읽고 있냐?'


'책 읽어서 뭐 하냐? 엄마도 없는 게.'


지유를 곧잘 괴롭히는 같은 반 아이들이었다. 지유가 반격에 나서려던 참에 반장이 아이들을 말리길래 그만두었다.


"별 것도 아닌 것들이."


지유는 투덜거리며 책을 읽어 내려갔다. 책의 내용은 이랬다.


어느 날, 대부호로 유명한 상인이 무역을 위해 항해에 나섰다. 그는 검은 모래사장이 가득한 섬에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모래사장을 발견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곳의 경관에 감탄한 부자는 항해가 끝나면 이곳에 돌아와 별장을 짓겠노라며 금화와 보석을 숨겨두었다. 그러나 배가 난파하는 바람에 부자는 두 번 다시 황금빛 모래사장으로 돌아올 수 없었고 그의 재산은 행방을 알 수 없는 보물이 되고 말았다. 오랜 시간이 지난 끝에야 보물은 주인을 만나게 된다. 바로 주인공이었다.


보물을 찾아 떠나는 모험 가득한 여행기였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마을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황금빛 모래사장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전설이 담겨 있었다.

그런 전설이 섬에 떠돌고 있다는 것은 지유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허무맹랑한 소리였다. 지유는 크지 않은 섬의 모든 모래사장을 다 돌아다녀 보았다. 어딜 가도 검은 모래와 자갈뿐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붉은 석양을 뒤로하고 지유는 집으로 향했다.





"야, 한지유! 어디 갔어!"


"너 잡히면 가만 안 둘 줄 알아!"


지유는 숨죽이며 바위 그늘 뒤에 숨었다. 그러나 들키는 건 시간문제였다. 지유가 이 동네를 속속들이 다 아는 것처럼, 같은 반 녀석들도 모르는 곳이 없었다. 지유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때, 평소에는 위험해서 접근한 적 없었던 동굴이 보였다. 마침 썰물 때였다. 지유는 반아이들의 눈을 피해 동굴로 숨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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