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희는 호텔 카운터에서 수속을 마쳤다. 옆에서 대기하던 호텔의 직원이 재빠르게 다가와 그녀에게서 캐리어를 건네받았다.
"방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주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직원의 뒤를 따라갔다.
모처럼 해외까지 나와 긴 여행을 시작한 참이건만, 주희는 지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선명했고 푸석푸석한 피부와 축 처진 눈꼬리가 그녀의 상태를 짐작케 했다. 직원을 따라가는 발걸음에도 기운이 없었다.
객실에 도착하자 직원이 캐리어를 방 안에 넣고 키를 건네주었다. 주희가 감사 인사를 하고 문을 닫으려던 순간, 직원이 재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열두 시가 되면 종이 울립니다. 그 후에는 객실 복도를 되도록 돌아다니지 마세요. 꼭 외출해야 하시는 경우 카운터로 연락 주십시오."
"네?"
의아한 얘기에 주희가 되물으려 했으나 직원은 재빠르게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혼자 남겨진 그녀는 궁금증이 일었으나 굳이 객실 문을 열고 나가 더 묻기에는 너무 지쳐 있었다.
결국 그녀는 그대로 침대 위에 풀썩 누워버렸다. 그동안 쌓인 피로와 긴 비행으로 인한 여독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눈을 껌뻑이며 서서히 수마에 잠식되는 동안에도 직원의 알 수 없는 경고가 그녀의 의식 한쪽을 잠식했다.
"무슨 나폴리탄 괴담 같은 소리야······."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그녀는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댕, 댕, 댕······.'
눈을 떴을 땐 깊은 한밤중이었다.
"목말라."
주희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셨다. 시원한 물을 한 모금 들이켜고 나니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오는 듯했다. 뒤늦게 샤워를 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머리를 말리고 나니 살 것 같았다.
주희는 캐리어에서 짐을 꺼내 정리하다 말고 노트북을 노려보았다. 일에 치여 살다가 이대로는 과로사하겠다 싶어 충동적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말하자면 도망친 것이었다. 그녀는 노트북을 옷장 깊숙한 곳에 넣어버렸다. 그러고도 심란해서 객실을 왔다 갔다 하며 이 생각 저 생각하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쉬기 위해 온 곳이었다. 이래서는 안 되었다.
그녀는 겉옷을 입고 객실 밖으로 나갔다. 복도는 약간의 조명만이 켜져 있어 다소 침침했다. 로비로 가려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으나 한참을 기다려도 엘리베이터가 서지 않았다. 그제야 자세히 살펴보니 엘리베이터가 동작하지 않는 상태였다.
"뭐야? 고장인가?"
걸어내려가야 하나? 생각하는 순간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렸다.
"풋."
그때 뒤에서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주희는 뒤를 홱 돌아보았다. 웬 시커먼 복장의 남자가 한 명 지나가고 있었다. 주희가 눈꼬리를 치켜뜨며 노려보자 남자는 모자를 고쳐 쓰더니 그녀의 뒤를 지나쳤다.
그녀는 혀를 찼다. 그러나 따지고 드는 것도 모양새가 빠지는 듯해, 별 수 없이 꼬르륵 대는 배를 움켜잡고 발걸음을 옮겼다.
호텔 계단은 건물 끝에 있었다. 그녀는 긴 복도를 걸어가는 내내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강렬한 허기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생각해 보니 어제부터 제대로 된 음식을 거의 먹지 않은 것 같았다. 빨리 내려가서 음식점이든 편의점이든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주희조차도 멈칫할 정도로 호텔 계단은 어두웠다. 육중한 문을 열고 들여다본 계단은 새카맸고 희미한 비상등 불빛만이 계단을 비추고 있었다. 조심조심 내려가면서 깨달은 것은 자동 조명도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거였다. 별 수 없이 휴대폰 조명을 켜고 난간을 붙잡으며 한참을 내려갔다.
주희는 6층 투숙객이었다. 총 5층을 내려간 후, 다시 육중한 문을 밀고 나오자 6층과 동일한 카펫이 깔린 것이 보였다. 로비가 어디인지 두리번거리며 살펴보았으나 무언가 이상했다. 1층인데도 호텔 복도만이 길게 이어진 것처럼 보였던 것이었다.
층을 착각했나? 주희는 계단으로 향하는 문을 연 채로 휴대폰 조명을 이용해 층수를 비춰보았다.
"어?"
계단 사이 벽에는 '6F'라는 안내판이 붙어있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주희는 멍청한 표정을 지은 채 안내판을 쳐다보았다. 멍하던 머릿속이 찬물을 끼얹은 듯 확 깨는 것 같았다. 동시에 직원의 알 수 없던 경고가 떠올랐다. ······종이 울립니다, 객실 복도를 되도록 돌아다니지 마세요······. 쭈뼛, 머리털이 섰다.
탁!
"꺄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