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죄와 벌

by 한소로


상식의 정의란 무엇일까?

지금까지 나는 공통된 개념 또는 사회 구성원 간의 암묵적 약속 등을 상식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그 공통된 개념이라는 것에 교집합이 없다면? 사람의 삶은 다양하고 경험 역시 그에 준하게 마련이다. 나에게 당연한 것이 남에게는 생소할 수 있다. 교집합이 없다면 그와 나의 상식은 완전히 다를 것이다.


때로 이것은 서로 간의 몰이해를 불러일으키며 불필요한 소요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은 복잡한 인간관계의 상호작용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하겠다.

오늘 말하고 싶은 것은 개인적인 경험과 지식에 따라 모든 것에 대한 평가가 변할 수 있으며, 상식이란 그 범주 안에 속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종종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 개인적으로는 고등학교 때 읽었던 죄와 벌이라는 고전 문학을 일례로 들 수 있겠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고유명사에 약하다. 러시아 문학작품을 읽기에 적합치 못한 특성이다. 또 단순하다. 복잡하다 못해 때로 난잡한 라스콜니코프의 생각을 이해하기 어려울만하다. 게다가 아직 어려 경험이 일천하니 더더욱 이 작품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경험이 좀 더 생긴 지금도 사람을 죽여 궁핍을 해소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지금은 종종 미간에 주름을 잡곤 하는 나지만, 이 당시에는 어지간해서는 찌푸린 표정은 짓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고, 결국 책을 중간쯤 읽다가 덮고 말았다. 난생처음 문학작품 읽기를 포기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우선 러시아라는 나라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었다. 이토록 지독한 가난이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이해가지 않았다. 또한 편지 한 장에 대해 혼자서 5페이지씩 생각을 이어가는 주인공도 내게는 너무 복잡한 사람이었다.

결정적으로 그놈의 고유명사가 나를 괴롭혔다. 너무 긴 주인공의 이름을 나는 L코프, 6글자라고 내 멋대로 바꿔서 읽었는데 이후에 L코프, 7글자가 등장했던 걸로 어렴풋이 기억한다. 젠장! 나는 애써서 7글자가 재등장할 때까지 책을 이어 읽다가 결국 덮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후에 엄마에게 말한 적이 있다. 등장인물들 이름이 너무 길어. 엄마는 러시아 문학작품은 원래 그렇다고 말씀해 주셨다. 푸틴은 두 글자다. 나라 이름은 세 글자고. 그토록 등장인물이 많은데 두 글자나 세 글자 짜리가 한 명 정도는 나와 줬어야 하는 게 아닐까.



다소 엉뚱한 생각의 흐름이었지만 결론은 이거다. 당시에 내가 러시아의 근현대사를 조금 알았다면 어땠을까? L코프와 공감할만한 경험이 있었다면? 책을 덮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러시아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해할 수 있었을 죄와 벌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이해, 그것이 내게 없었기에 나는 죄와 벌을 끝까지 읽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죄와 벌이라는 책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한다. 상식이란 얼마나 얄팍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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