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by 한소로


"쉿! 쉿! 저리 가지 못해!"


"키야옹!"


나는 펄쩍 뛰어 담벼락 위로 올라갔다. 재빠르게 달리는 내 뒤를 따라 기다란 빗자루 끝이 담 위를 내리쳤다.


"이 녀석! 이 고양이 녀석! 여기 오지 말랬지?!"


빗자루를 따라 고함도 날아왔다.


난 여길 오는 게 아니라고! 네 옆집에 사는 인간이 챙겨주는 밥을 먹으러 오는 거다!


나는 요리조리 빗자루를 피해 담장 밖으로 나갔다. 주택에서 멀찍이 떨어진 후, 뒤를 돌아 노파를 향해 이를 드러냈다.


"하아악-!"


"저, 저!"


노파가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해댔다. 성질이 나 얼굴이 벌게진 걸 확인하니 기분이 좀 나아져서, 나는 다시 뒤를 홱 돌아 단독주택에서 멀어졌다.


저 인간은 지치지도 않고 매번 나를 발견할 때마다 쫓아내기 일쑤였다. 늙은 인간이 휘두르는 빗자루 따위 피하는 건 일도 아니었지만, 전에 한 번은 방심했다가 얻어맞았다. 어찌나 화가 나던지!


그래서 발목을 아주 세게 할퀴어 주었다. 그 이후로 한동안 저 인간이 다리를 절뚝대는 꼴이 아주 볼만했다. 대신 성질부리는 게 더 심해졌지만, 상관없었다.




"야옹아, 오늘도 츄르 먹으러 왔어?"


"먀아~."


"자아, 오늘은 연어맛이야."


인간이 포장을 뜯자 맛있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혀를 내밀어 그걸 조금씩 핥아먹었다.


이 인간은 매번 나에게 맛있는 간식을 준다. 맛도 조금씩 다르다. 어떤 건 생선 맛이 나고, 어떤 건 고기 맛이 난다. 오늘은 내가 특히 좋아하는 맛이다.


한참 챱챱거리며 먹고 있다 보면, 늘 이 인간은 한 손으로는 간식을 주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나를 쓰다듬고 있다.


"하아······."


그리고 늘 이렇게 한숨을 쉰다.


"빨리 취업을 해야 할 텐데 큰일이네······."


이 인간의 관심사는 취업과 돈이다. 돈이라는 게 있어야 인간은 살 수 있는 모양이다. 취업은 뭔지 모르겠지만, 이 인간은 그걸 간절히 바란다. 매번 나를 볼 때마다 한숨을 쉬면서 취업, 취업 해댄다.


인간들은 복잡하다. 이것저것 알 수 없는 걸 만들어서 거기 얽매여서 살고 있는 것 같다. 바보 같긴.


나처럼 고양이로 태어나서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면서 살았어야지.


"휴우······."


나는 간식을 다 먹었지만 잠시 가만히 있어주기로 했다. 절대 이 인간이 걱정되거나, 이 인간이 쓰다듬는 게 기분 좋아서는 아니다.


또 한숨을 쉬면서 나를 쓰다듬던 인간이 불쑥 말했다.


"넌 되게 속편해 보인다? ······나도 고양이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아무 걱정할 필요 없게."


"캬옹!"


"아얏!"


나는 인간의 손을 살짝 할퀴어주고 자리를 떴다.


흥, 건방지게. 고양이로 사는 게 얼마나 힘든 건데!




일례로 이런 게 아주 힘들다.


나는 공원에 사는 그녀를 만나러 갔다. 그녀는 노란 줄무늬에 털이 매끈하고 허리가 날씬한 미녀다. 요즘 내가 구애하는 대상이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녀를 노리는 회색털 고양이 놈이 또 와 있었다.


내가 없는 동안 나의 그녀에게 또 접근을 해?!


"하악-!"


나는 등을 굴리고 소리를 지르며 그 녀석에게 다가갔다. 그 녀석도 나를 보더니 마찬가지로 꼬리를 흔들며 소리를 질러댔다.


우리는 곧 엉겨 붙어 마구 싸웠다. 녀석이 발톱을 세웠지만 나는 재빠르게 피하고 이를 들이댔다. 그러자 그 녀석은 앞발로 나를 밀어댔다. 나는 발톱으로 녀석의 앞발을 할퀴면서 다가가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정신없이 싸우는 와중에도 곁눈질을 하니, 그녀가 조금 떨어진 곳에 우아하게 앉아있는 게 보였다. 그녀는 아닌 체 눈을 빛내면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절대 질 수 없어!


회색 고양이와 나는 더욱 격렬하게 싸웠다. 그러나 체격도 비슷하고 싸움 실력도 비슷한 탓에 쉽게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이 동네에서는 내가 한 싸움하는데! 자존심이 상해 더더욱 물러날 수 없었다. 회색 고양이도 비슷한 생각을 한 듯했다. 녀석과 나는 원수를 만난 것처럼 서로에게 덤벼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싸웠는데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 어느새 뉘엿뉘엿 해가 지기 시작했다. 회색털도, 나도 이제는 체력이 다해 더 움직이기 힘들었다. 자연스레 싸움은 소강상태가 되었다.


그녀는 어딜 갔는지 사라지고 없었다.




아까 밥도 먹었고 간식도 먹었는데, 괜히 힘만 빼는 바람에 또 배가 고팠다.


평소 인간들이 먹이를 주던 장소를 다 돌았는데 오늘따라 허탕이었다. 근처에 잡아먹을만한 것도 마땅치 않고. 그렇다고 굶기는 싫으니 오늘은 새로운 걸 찾아야겠다.


차 뒤에 몸을 숨기고 어슬렁어슬렁 걸으면서 목표물을 탐색하는데 딱 적당한 것이 걸렸다.


이상한 냄새가 안 나는 크지 않은 인간이었다.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니 인간이 시선을 느꼈는지 나를 마주 바라보았다.


나는 빤히 그 인간을 바라봤다. 인간도 빤히 나를 바라봤다. 이건 아주 좋은 신호다.


나는 재빠르게 차 뒤에서 나와 그 인간의 다리에 머리와 몸을 비볐다. 소리를 내는 건 덤이다.


"냐~, 냐~."


"어머, 너 아주 애교쟁이구나?"


나는 대답 않고 인간의 다리에 계속 몸을 비볐다. 인간도 손을 뻗어 나를 머리부터 꼬리까지 길게 어루만졌다.


꼬리를 만지는 건 썩 좋아하지 않는데.


그렇지만 나는 싫은 티를 내지 않고 계속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그리고 인간의 앞에 앉았다.


인간은 고양이에 익숙한지 내가 좋아하는 턱 밑을 간질이고, 엉덩이를 통통 두들기는 짓을 했다. 그러나 그건 내가 지금 원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꼬리로 바닥을 탁탁 쳤다. 먹을 걸 내놔! 인간!


"미야옹~."


"잘 있어~, 다음에 또 봐~."


인간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손을 흔들더니 그냥 가버렸다.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앉아있었지만 인간은 돌아오지 않았다.




"초코, 하루 종일 어딜 갔었어?"


"냐앙~."


언제나처럼 창틈으로 집에 돌아오니 인간이 집에 먼저 와 있었다.


그는 나를 몇 번 쓰다듬더니 반짝 들어서 먹이그릇과 물그릇 앞에 놓았다.


"원래 길고양이라 돌아다니는 거 좋아하는 건 알지만, 이렇게 너무 늦게 돌아다니지는 마. 걱정되잖아."


난 말없이 먹이를 먹었다. 이 인간에게는 굳이 몸을 비비거나 알은체를 해 줄 필요가 없었다.


이 인간은 나를 너무 좋아하니까.




- 혼자 써 본 한 시간 글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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