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할인행사 광고가 눈에 많이 띈다. 토종 한국인인데 이상하게 블랙프라이데이라는 단어에 심장이 뛴다. 이럴 때일수록 이성의 끈을 잘 부여잡아야 하는데 2023년 4분기의 나는 여전히 할부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매일 수많은 선택을 하고 살아간다. 나는 선택 앞에서 망설이는 사람은 아니다. 대학교 전공을 한 번에 선택한 청소년에서부터 오늘 뭘 입을지 1초도 고민하지 않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나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내가 내린 선택의 결과에 책임을 지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내 가치관이 반영된 나다운 선택이 모여서 나다운 삶을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2. 출퇴근길에 에리히 프롬의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를 읽었다. 감도 높은 자아성찰에 관한 작가의 가치관이 문장 곳곳에서 느껴져서 읽는 내내 흥분이 되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을 소개하자면,
'자신을, 자신의 호불호를 타인에게 투영하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의 훈련과 감수성, 매우 높은 객관성이 필요하다. 그에 더해 높은 집중력이 필요하다.'
3. 요즘 누군가 나에게 무슨 노래를 듣냐고 물으면 정미조의 너의 웃음이라고 대답한다. 우연히 간 식당에서 알게 된 노래인데 무한반복 중이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불안만이 아닌 뜻밖의 행복을 얻게 되는 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인 거겠지. 그렇기에 평상시에 너무 많은 긴장과 예민을 덜어내려고 노력하는데 쉽지가 않다.
4. 어떤 콘텐츠는 혼자 보는 것보다, 옆 사람과 보면서 호응도 하고 떠들면서 봐야 훨씬 재미있을 때가 있다. 혼자서는 절대 안 볼 것 같은 '피지컬 100'을 그런 식으로 친구와 함께 보기 시작해 밤을 지새운 적이 있다. 술도 마찬가지이다. 똑같은 술과 안주를 누구랑 먹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취향이라든지 관심사가 비슷해서 '나랑 생각하는 게 비슷하구나'라고 느끼는 순간 마음의 빗장이 확 열린다.
올해는 감사하게도 좋은 술친구를 많이 사귀었다. 제철음식을 보면, 푸근한 정이 느껴지는 오래된 식당을 알게 되면 누구라도 먼저랄 것 없이 연락을 하는 친구도 있고, 같은 동네를 살아서 먼저 가보고 맛있으면 연락이 오는 친구도 있다. 마음이 맞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어려워지는 요즘, 한 사람이라도 대화가 통하는 사람과 짧은 생활을 같이 하는 길지 않은 그 시간이 참으로 소중하다.
5. 한동안 나를 돌보지 않았다가 계절이 두 차례 바뀌고 나서야 보살피고 있다. 체육관에 다니며 복싱을 배운 지 한 달이 다 돼 가는데 비록 잘하지는 못하지만 샌드백을 치는 6분 남짓의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과 감정이 교차한다. 더욱더 매일매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스스로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매일이 ‘채움’으로 가득 찬 것이 감사하기도 하지만, 비우는 시간이 절실해진다. 가만히, 스스로와 보내는 시간 그리고 비움의 시간들을 사수해야 비로소 진정으로 다시 채울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6. 나는 처음이 좋다. (찔려서 말하지만 처음처럼도 좋아합니다)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그 몽글몽글한 감정도 좋고, 앞으로 펼쳐질 일들을 기대하게 되는 그 마음가짐이 좋다. '처음'을 생각하면 청춘이 자동적으로 오버랩돼서 20대의 수많은 '첫' 경험들이 스쳐 지나간다. 지금은 12월이고 어떻게 보면 끝이지만 관점을 달리하면 2024년을 준비하기에 앞서 시작하는 '처음'의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7. 얼마 안 남은 2023년을 잘 보내주고 싶다. 작고 다정한 일들을 나를 위해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위해 하루에 하나씩 하고 싶다. 나를 위해 예쁜 옷을 차려입거나, 예쁜 말로 주변인들을 칭찬하기 같은 것들 말이다. 세모난 마음을 둥글게 빚고 싶다. 아주 작은 다정한 마음에서 그 모든 것이 출발한다 생각해서 더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