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ppysmilewriter Oct 23. 2024

 잃지 말아야 할 것들 10

다시 J


J는 이 세상 모든 불행의 원인이 아진에게 있는 것만 같았다. 자기가 호감을 느꼈던 자가 본인의 외모에 대해 섬뜩하다고 한 것, 성형의 부작용으로 힘들어하던 자신을 비웃었던 점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전화통화를 엿듣고 화가 난 J가 아진이의 뒤통수를 때렸지만, 그걸로는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J는 아진의 뒤통수를 때린 후 급하게 도망갔다. 다행히 누가 쫓아오지는 않았다. 사람은 발 디딜 틈 없이 많았으나 쓰러진 아진이를 보며 비명니타 탄식만 지르고 쳐다만 봤다. 그 누구 한 명도 J를 잡는다거나 신고하는 사람은 없었다. J는 분한 마음에 씩씩거렸다. 죽일 것을 그냥 뒤통수만 때린 것이 아쉬웠다. J는 호신용으로 매일 가방 안에 들고 다니던 과도로 저 사람도 죽이고 본인도 죽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화나게 했던 사람을 죽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J는 쓰러진 아진이가 본인을 불행하게 만든 모든 원인인 것으로 여겨졌다. 그를 죽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집에 돌아온 J는 방에 들어가 한탄만 했다. 자신의 얼굴을 볼 때마다 괴로웠다. 일하는 아주머니가 매일 와서 청소, 밥, 다른 심부름을 해주지만 그분을 만나는 것도 힘겹고 괴로웠다. 그 아주머니 J 자신을 향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봤다. J는 사람들이 앞으로 저 얼굴로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동정의 눈빛으로 바라봐주는 것이 싫었다.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던 표정도 짜증 났다. J는 돈은 궁하지 않았다. 별로 기억도 나지 않지만 아빠의 보험금이라고 자주 들어오는 돈이 있었고, 엄마의 교통사고 보험금이 있었다. J가 실컷 쓸 수 있을 만큼 큰돈이었다. 어릴 때 J는 아빠가 평범한 회사원인 줄 알았다. 초등학교 때 어떤 분이 집에 와서 산재보험금이라며 10억을 현금 가방에 넣어 주었다. 10억이라는 돈을 알지 못했던 나이였으나, 엄마가 이모에게 산재보험금을 10억 정도로 크게 주는 게 이상하지 않냐며 전화통화하는 것을 들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산재보험금을 통장에 입금하는 것이 아니라 가방에 현금을 넣어 들고 준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회사 동료라던 그 사람은 아빠가 해외에서 돌아가셔서 시신을 한국에 못 들고 온다는 것을 전화받았냐고 물었다. 엄마는 회자에서 전화와 시신을 옮기는 금액이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라 시신을 그 나라에서 화장하면 어떻겠냐고 했다. 대신 그 돈 이상을 산재보험금에 포함시켜 주겠다고 설득했다. 엄마는 남편이 사망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딸과 자신만 남겨진다고 생각하니 불안함이 더 앞섰다. J의 엄마는 자신과 딸만 두고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진 남편이 하염없이 미웠다. 앞으로 자라 갈 J에게 돈이라도 남겨준다면 남편이 덜 미울 것 같았다.
해외에서 아빠를 급하게 화장했다고 했다. 직원이 죽었다고 연락받아 회사 관계자 두 명만 대표로 화장터에 임장 했고, J와 J의 엄마는 가지 못했다. J의 엄마가 여러 번 까무러쳐서 위험해 보인다고 회사 관계자만 가서 마무리하자고 권유했다. J의 엄마는 남편 없는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무게에 짓눌려 울기만 했다. 회사 관계자들이 J의 집에 와서 J의 엄마에게 앞으로도 집에 종종 들러 회사에서 나오는 보험금을 전해 주겠다고 했다. 엄마는 울지도 않고, 알았다고만 했다. J 눈에는 이상했다. 아무리 아빠가 엄마에게 고통을 안겨준 사람이지만 어떻게 평생 같이 살았고 자녀까지 낳았던 남편의 죽음을 저렇게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J는 그런 엄마가 싫었다. 그 뒤로 아빠의 회사 사람은 산재보험금이라면서 상자를 가끔 들고 왔다. 왜 저 회사는 보험금을 상자에 넣어주는지 어린 J는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다. 아빠와 좋은 기억은 거의 안 나지만, 그래도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J를 힘들게 했다. J는 자기 방에 틀어박혀 몇 시간이고 울곤 했다.
J의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상자 안에서 현금을 꺼내 사용하곤 했다. J의 엄마는 J에게 상자는 절대 열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엄마는 어떤 방에 J를 밀어 넣었다. 그러고는 열쇠공을 불러 몇 중으로 잠금장치를 한 후 항상 그 방문을 잠가놓았었다. 아라는 당시 엄마보다 집안일 봐주는 아주머니가 엄마처럼 포근했고 진짜 엄마 같았다. 엄마는 아빠가 돌아가신 후 항상 넋 나간 상태로 유령처럼 살았다. J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나 고민을 아주머니에게 하곤 했다.
돈은 많았지만, J와 엄마는 외로웠다. 집안의 소파나 침대, 가전과 같은 물건은 모두 최고급으로, 현금으로 샀었다. 사람들은 현금 부자인 J와 엄마를 벼락부자라고 생각했다. 성형 수술할 때도 엄마는 의사에게 상자에서 돈 한 뭉치를 꺼내주었다. 대략 5천만 원 묶음이었다. J가 돈을 달라고 하면 J의 엄마는 달라는 대로 줬다. 성형외과에서 아무리 비싼 수술을 권해도 다 동의했다. J에게 돈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J는 예뻐지기만 하면 자신감을 얻고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성형외과에서 입원실까지 운영해서 J는 최고급 대우를 받으며 지냈다.

작가의 이전글 잃지 말아야 할 것들 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