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트로

by 브로콜리

형과의 시간

태어나서 지금까지 장애가 있는 형과 함께 살아왔다. 어릴 때 그건 너무 큰 슬픔이자 고통이었다. 아픈 형이 슬펐고, 남들과 다른 형이 부끄러웠다. 그런 감정을 가지는 내가 싫었다. 외출할 때면 느껴지는 사람들의 시선이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그 시절 부모님이나 주변의 어른들이 내 감정에 대해 배려해 주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하지만 당시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경제 성장만 중시하던 시대였고, 장애인을 위한 복지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때였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형을 더욱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던 것 같다.

세월은 많이 흘렀다. 의학 전문가들이 형과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은 오래 살지 못한다고 했지만, 엄마의 헌신 덕분일까. 지금 형은 사십 대 중반, 건강하진 않지만 잘 지내고 있다.


엄마의 무게

형을 돌보는 일은 온전히 엄마의 책임이 되었다. 칠십 중반을 넘긴 지금, 엄마는 날마다 "죽겠다"라며 힘에 부쳐한다. 가끔 누군가 "그럼 니가 형을 돌보면 되잖아"라고 말할까 봐 겁난다. 나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내가 겪었던 슬픔과 고통을 내 아내나 자식이 겪게 하고 싶지 않다.

"엄마, 이제 그만 좀 신경 써요. 그렇게 하면 엄마가 먼저 쓰러집니다."

형이 안쓰러워 걱정하는 엄마, 그런 엄마가 걱정되어 안절부절하는 나 이다. 가끔 이 상황이 무슨 슬픈 코미디인가 싶다.

엄마의 대답은 항상 같다.

"불쌍하다 아이가. 니 자식 같으면 그렇게 말하겠나?"

자식을 낳고 살아보니 엄마 마음이 조금은 이해된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이 얼마나 애처로울까. 엄마 눈에는 형이 여전히 갓난아기 같은 것이다. 막내인 나에게는 전혀 신경을 안 써주는 엄마가 섭섭하기도 하지만, 이런 얘기를 하면 나잇값을 못한다고 욕먹을 것 같아서 못하겠다.


응급 호출

해외출장을 다녀와 매주 본가에 방문하던 걸 한 주 못했다. 별일 없겠지 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일요일 아침 일찍 전화가 울렸다. 아침 일찍 걸려오는 전화는 좋은 소식이 없었기에 짜증이 났다.

"여보세요."

수화기 저편에서 엄마가 훌쩍이며 피곤에 찌든 목소리로 말했다.

"OO(형)가 많이 아프다."

형에 대한 큰 감정이 없었기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의 목소리가 너무 안 좋아 조금 걱정스러웠다. 엄마는 침대에서 형을 옮기느라 팔이 아파 죽겠단다. 형은 화장실도 못 가서 침대에서 소변을 봤다고 했다.

"그러게 내가 다치니까 휠체어를 쓰든지 해라고 했잖아."

난 또 엄마가 걱정되어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내용의 대화를 하고 있었다.

"얼른 119 불러."

그렇게 형은 119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향했다. 이것이 거의 1년 만의 외출이었다.


병원에서

나는 일요일 오후 3시간을 운전해서 병원에 도착했다. 형은 초등학생 정도의 키에 집에만 있어서인지 너무 하얀 얼굴에 살은 비정상적으로 많이 쪄 있다. 팔에는 몇 개의 링거가 꼽혀 있었고, 소변줄까지 하고 누워 있었다. 의사소통도 '좋다, 싫다, 배고프다, 화장실 가고 싶다' 정도만 가능한 형인데,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처음 든 생각은 어처구니없었다.

'소변줄을 했으니 화장실에 데려다주는 고생을 안 해도 되겠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엄마는 녹초가 되어 앉아 있었다. 그런데도 긴박한 상황에서 오히려 더 강해지는 엄마를 보며 신기함을 느꼈다.

폐렴이 심해져서 체온이 40도까지 올랐다고 했다. 집에만 있는 형에게 왜 폐렴이 왔는지 모두 의아해했다. 빠르게 간병인을 구하고 엄마를 집에 모셔다 드린 후, 나는 다시 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피곤한 몸을 이끌고 회사에 출근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온하게 업무를 시작했지만, 마음은 계속 형에게 가 있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해보니 평소 평일 낮에 활동보조사로 방문하시는 아주머니께서 상황을 설명하신다.

“폐렴이 심하다네요. 침을 잘 삼켜야 되는데 지능이나 그런 게 떨어져서 문제라고 하네요. 최악의 상황에는 목(?)에 호스를 꼽고 식사를 공급해야 될 수도 있다고 하네요. 근데 최악의 상황이 그렇다고 하는 거니 너무 걱정하지 마이소. 어머님이 충격을 많이 받으셨어요. 위로 좀 해주이소.”

“네, 잘 알겠습니다.”

엄마가 충격을 받았겠지만 나도 충격을 많이 받았다.

‘어떻게 위로를 해야 되지? 괜찮다? 별일 아니다?’

도저히 모르겠다.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라. 좀만 더 기다려보자.”

위로는 못했고 그냥 기다려 보자고만 했다.


눈물의 의미

수십 년을 함께 살면서 형에게 아무 감정도 없다고 생각했던 나. 하지만 그게 아니었나? 나도 잘 모르겠다. 퇴근길은 약 40분. 회사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눈물이 계속 났다. 그동안 설움이 몰려왔는지 아님 형에게 뭔가 미안했는지 왜 인지 모르겠다.


기록으로 남기기

우리 가족의 이 이야기를 글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래전부터 이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타인의 시선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공개하기 꺼려했다.

모든 내용을 한 번에 오픈할 수는 없겠지만, 글로 표현하는 것이 조금 더 쉬울 것 같다. 이 글은 누군가를 위한 글이 아니다. 나 자신을 위한 위로와 같은 글이다.

형을 돌보느라 지쳐가는 엄마의 모습, 부끄러움과 죄책감 사이를 오가는 나의 마음, 그리고 어쩌면 나도 잘 알지 못했을 이 복잡한 감정들을 적어보고자 한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