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글은 너무 침울하거나 우울할 수 있습니다. 그런 글을 싫어하시는 분은 제 브런치 다른 작품인 '언제가 가장 행복했니?'를 읽어 주세요. ^^
장애인 형제자매를 둔 사람들은 대개 형제의 장애를 명확히 인식하는 시점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나도 그랬다. 형의 장애가 무엇인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느 순간에 알았는지 모르겠다. 다만 자연스럽게, 당연하게 형은 "다른 형"이었다.
우리 가족은 형 때문에 남들 다 가는 가족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다. 부모님들조차 형의 장애를 감당하기 힘들었는지, 아니면 주위 시선이 감당하기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아마 둘 다였을 거다. 그런 우리 가족이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처음으로 모두 놀이동산에 가게 되었다. 친구들 가족은 놀이공원도 가고 밖으로 나들이도 나가는 걸 봤지만, 우리 가족이 그렇게 가게 된다는 건 신기했다. 부모님이 갑자기 그런 나들이를 계획하신 것도 의아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것이 형과의 마지막 여행이 될 거라고 부모님께서는 생각하고 계셨다.
그날 놀이공원에서 즐겁게 놀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청룡열차를 탔다. 천천히 상승하던 열차가 갑자기 낙하하며 오줌이 찔끔 나올 정도로 속도를 내자, 묘한 쾌감을 느꼈다. 그런데 옆을 보니 형이 기겁을 하며 놀라 아버지께 두 팔을 벌렸다. 평소 같으면 아버지가 그런 형을 외면했을 거다. 하지만 그때는 아버지도 정신없는 상황에서 놀란 형을 진정시키며 꼭 안아주셨다. 그렇게 우리는 한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되었다. 부모님이 형을 벤치에 앉혀두고 나와 누나만 데리고 집으로 갈려고 하셨다. 놀란 난 형이 저기 있다고 같이 가자고 부모님께 말했다. 그러자 부모님은 못 들은척 하며 씁쓸한 웃음을 지으시곤 얼른 가자고 하셨다. 아마도 그날 부모님께서는 형을 그렇게 놀이공원에 두고 집으로 돌아올 계획을 새웠었던 것 같다. 본인들 삶도 버겁고, 세 자녀를 모두 돌볼 엄두가 안 났었나 보다. 영문을 몰랐던 난 왜 형은 안 데리고 가냐고 울며불며 형에게 달려가려 했고, 이를 지켜보던 부모님은 날 보고 마음이 약해지셔서 형을 데리고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성인이 되어 아버지께서 그날의 일을 말씀해주셨다. 아버지는 청룡열차에서 형을 하염없이 안아주셨다고. 아마 그것이 형과의 마지막 여행이 될 거라 생각하셨던 듯이. 그런 상황에서 어린 내가 모든 계획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부모님은 그렇게 형을 떠나올 수 없었다. 그 뒤로도 살면서 몇 번 형을 시설 등에 보낼려고 생각했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셨다. 아마 그 날의 아버지처럼, 언제나 마음이 약해지셨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