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이랑 솜센이

by 따바라중독자

저 멀리, 게으름뱅이 삼이네 집이 보인다. 대문이 삐거덕 열리고 헐레벌떡 삼이가 나온다. 친구는 이미 집 앞에 도착해 있다. 최근 삼이는 아침 10시가 되면 삼이 친구 솜센이와 만나 슬슬 내게로 걸어온다.


이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삼이는 백수다. 밖에 나오는 일이라고는 솜센이와 아침에 내게 오는 일 밖에는 없다. 사실 나는 이름에 '산'이 붙어 있긴 하지만 등산이라고 하기도 어설플 정도로 언덕배기 산책길로 되어 있어 사람이 걷기에 많이 힘들지 않을 것이다. 둘의 이야기에 의하면, 솜센이는 암수술 후라서 휴직을 내고 집에서 요양 중이며, 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삼이는 나 치과 그만둬서 백수야, 나도 같이 하자,라고 했단다. 그렇게 둘은 추운 겨울날 내게 오기 시작했다.


아팠다는 삼이 친구 솜센이는 창백한 얼굴인데도 참을성 좋게 잘 걷는다. 방방 떠 있는 삼이와 차분한 솜센이, 같은 면이 전혀 없어 보이는 둘은 서로에게 걸음을 맞추며 오늘도 '등산'을 한다. 둘은 매일 만나면서도 무슨 할 얘기가 그렇게 많은지 쓸모없어 보이는 이야기에도 깔깔거리며, 폭죽 같은 웃음을 내게 흠뻑 뿌린다. 특히나 바이올린 이야기가 나올 때면 둘은 더욱 열을 올린다.


그때 그게 이십만 원짜리였잖아, 나는 바이올린은 다 최소 수천만 원씩은 하는 줄 알았다니까? 재희가 잔디밭에서 연습할 때 쫌 있어 보이더라, 난 니가 그렇게 흔쾌히 같이 하겠다고 할 줄 정말 몰랐어, 왜냐고? 너 공부해야 하니까. 너희 어머니한테 혼날 것 같았어.ㅎㅎ 야자시간에 맨날 음악실 갔지? 야, 너 부전공했어? 그럼 여름에 나 레슨해줘.




예전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동네 사람들이 나를 많이 찾아주었다. 해가 바뀌는 추운 겨울에는 아줌마들이 내 소나무에서 솔잎을 따가는 일도 많았다. 요즘은 예전처럼 사람들이 그다지 나를 많이 찾지 않는다. 나는 이곳에서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저 사람들보다 훨씬 늙은 내가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이 작은 사람들도 조금씩 늙어 나무들의 색이 바뀔 때마다 걸음이 느려지고 좀 더 숨을 가쁘게 쉰다. 조그만 발자국으로 나를 만지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그래야 나도 더욱 단단해지고 또 삼이와 솜센이 같은 친구들의 수다도 엿듣지.


이제는 삼이랑 솜센이가 같이 오지 않는다. 삼이랑 솜센이도 어느새 늙어서 내게 오기 힘든 것일까. 사람들이 설치해 놓은 운동기구에서 조용히 운동만 하는 노인들에게서는 시끌시끌한 수다를 들을 수가 없다. 그래도 삼이는 잊을만하면 한 번씩 딸기 파이, 초코 파이 싸들고 아기랑도 오고 남편처럼 보이는 사람과도 왔었지만 솜센이랑 올 때 하고는 뭔가 다르다. 아프다던 창백한 솜센이는 왜 오지 않는 것일까.




"야, 솜센아 빨리빨리, 쫌~! 끝나는 종 치기 전에 가방 다 챙겨놔야지~! 아~솜센이 진짜~!!"

"ㅋㅋㅋㅋㅋㅋ~"

"아 웃지만 말고 언능언능 빨리빨리~~!!"

"ㅎㅎㅎㅎㅎㅎ~~"


종 치기 오 분 전 이미 나는 가방을 메고 한쪽 다리는 책상 밖으로 나와 있다. 동네가 같아 매일 스쿨버스를 같이 탔는데, 솜센이는 성격이 느긋하여 항상 하교종이 치고 나서야 주섬주섬 책과 필통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는 걸어 다녔으니 제외하고, 6년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나는 솜센이를 재촉했다. 6년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솜센이는 천천히 가방을 정리하며 얼굴이 뻘게지도록 웃었다.


솜센이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다. 우리가 솜센이 집에 놀러 가면 솜센이 어머님은 솜센이 공부해야 하니까 다들 가라고 하셨다. 그때는 어려서 어머님이 무서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다 이해가 된다. 화낼 줄도 모르고 뽀얀 얼굴에 약하고 모범생인 솜센이, 놀고 싶은 대로 놀면 아파질까 봐 어머니는 얼마나 걱정이 많으셨을까 싶다.


우리는 초중고를 같이 다녔다. 솜센이는 얌전히 엄마가 하라는 대로 공부하고 피아노 치고 선생님이 되었다. 나는 천둥벌거숭이처럼 동네를 돌아다니며 쑥캐고 뛰어다니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다가 치위생사가 되었다. 솜센이는 중간에 또 아팠지만 이제는 건강하다. 마침 내가 백수일 때 솜센이가 집에 있게 되어 한겨울에 같이 산에 다녔는데 그때가 내 인생에서의 보송보송한 기억들 중 하나다.


지금은 멀리 살아 자주 볼 수는 없지만 가끔 솜센이와 한 번씩 통화할 때면 솜센이는 언제나 나에게 '다 낫는 약'이다. 솜센이의 느리고 따뜻한 말과 차분함은 내게 안정을 준다. 날개를 찢긴 새처럼 치과에서 마음을 다치고 엄마역할로 돌아오는 백수생활을 반복할 때 생각 없이 걸려온 솜센이의 전화 한 통에 나는 갑자기 엉엉 울었다. 솜센이 존재의 확인 자체가 그간의 힘듦을 말끔히 씻어내 주었다. 솜센이의 목소리에 나는 다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우리는 나중에 같이, 하다만 바이올린을 하기로 했다. 안 그래도 즐거웠던 우리는 같이 현악부를 하며 더 즐거웠다. 솜센이 은퇴하면 하기로 했으니 60살이 넘어야겠지? 아... 좀 늦나? 누구든 움직이기 어려워지기 전에 더 일찍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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