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 가게

어느 젊은 엄마

by 따바라중독자

휘돌아가는 작은 길가에 자동차들이 신중히 지나간다. 길가 건너편에는 주차장이라서 차들이 가득 차 있다. 나의 창조자는 아마도 사람들 눈에 잘 띄는 곳에 터를 잡은 것 같지는 않다. 앞에 보이는 것들이라고는 고작 저 멀리 주차장과 다른 가게의 음식물 쓰레기통, 한쪽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어떻게들 알고 오는지 드문드문 손님이 온다. 코까지 내려오는 안경을 한 번씩 스윽 올리며 매일 아침 나를 굽는 나의 창조자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아 보인다.


어느 젊은 엄마가 통통한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온다. 여느 때처럼 지나가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슬쩍 이 가게를 보던 젊은 엄마의 표정이 순간 밝아지더니 조그만 아이에게 무어라 속삭인다. 그러더니 이곳에 들어와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고 기다린다. 아이는 초코가 듬뿍 올려진 나를 골랐다. 창조자는 나를 작은 상자 안에 넣어 주었다. 젊은 엄마와 남자아이는 산책길 같은 어느 낮은 산속으로 걸어가는 것 같다. 밖에서 스며오는 공기가 신선하다.


"한난아~ 파이 맛있겠지? 저~어기 가서 먹자~"

창조자는 나를 타르트라고 부르던데. 젊은 엄마는 나를 파이라고 부른다. 나는 어디엔가 놓이고 상자가 열렸다. 나무와 도토리들, 운동 기구, 풀, 새, 공원처럼 꾸며놓은 산 속이다. 시원하다. 내가 아이에게는 달콤함을, 젊은 엄마에겐 여유로움을 준 것 같다.




젊은 엄마는 가끔 한 번씩 남자아이 손을 잡고 가게를 찾았다. 아마도 아이가 나를 좋아하나 보다. 어느 날부터는 아이가 둘이다. 남자아이는 그새 좀 더 자라 있고, 더 작은 여자아이가 양쪽에 나란히 엄마 손을 잡고 들어온다. 젊은 엄마는 다시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주고 기다린다. 내가 들어있는 상자를 각자 하나씩 들고 셋은 어디론가 이동한다.


"엄마, 어디 가?"

"응, 전에 엄마 친구랑 잘 가던 산에 가. 거기 가면 나무도 있고, 열매도 있고, 도토리랑 재미난 것도 많아."

"엄마 친구랑 산에 왜 갔어?"

"그냥 같이 놀려고 갔지~! 산에 가면 숨 쉴 때 엄청 시원해~ 한나니, 래니, 파이 맛있겠지? 산에 얼른 가서 먹자~"


상자가 열리고 나무와 도토리들, 운동 기구, 풀, 새, 공원처럼 꾸며놓은 산속 어딘가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각자 고른 것을 먹기 시작했다. 남자아이 손에 있던 타르트는 순식간에 없어지고, 여자아이는 한 입 먹고 먹지 않는다. 먹을 것에는 관심이 별로 없는 듯 운동기구 사이를 다니며 놀기 바쁘다. 남자아이는 동생의 것을 먹어도 되는지 묻는다. 결국 나는 이렇게 남자아이의 입 속으로 갔다.




창조자는 매일 다른 타르트를 만든다. 철마다 생산되는 과일에 따라 청포도, 딸기, 무화과, 고구마, 쑥, 호두 기타 등등을 가지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성실하게 만들어 낸다. 우리는 이사를 했는데 원래 있던 가게보다 더욱 그늘진 곳으로 오게 되었다. 창조자는 왜 이런 데만 찾아다니는 걸까.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하루에 열명도 안 되는 것 같다.


딸랑, 문이 열리고 어떤 엄마가 남매를 데리고 들어왔다. 그런데 이 아줌마 갑자기 호들갑이다.


"어머어머! 여기에 있었네요? 정리하신 줄 알았어요! 세상에! 너무 반갑네요!"


아줌마는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주고 기다린다. 아이들은 초코와 딸기를 고른다. 전과는 다르게 이젠 창조자가 커피도 만들 줄 알게 되어 아줌마는 자기 몫의 바닐라라떼도 하나 주문한다. 아이들에게 묻는다. 너희들 여기서 파이 사서 산에 가고 그랬는데 기억나? 기억나지. 래니는 너무 어려서 기억 안 나지? 엉, 안 나.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


바닐라라떼와 함께 파이 두 조각을 서빙하는 창조자의 무표정은 이들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도 이들은 상관없다는 듯 조잘조잘 이야기를 이어간다.

출처 : '파이달램' 오늘의 파이, 나의 사치템

아이는 내가 키우고 싶어, 하면서도 생활은 해야 하니 또 나가 일을 한다. 결혼 전 모은 돈은 공부한답시고 죄다 써버리고 남은 50만 원은 부서진 연습용 바이올린을 대신해 연습과 연주를 겸할 수 있는 새 바이올린구입한 후라 나는 빈털터리였다. 남편도 그다지 두둑한 편이 아니어서 우리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조그맣고 오래된 전세 아파트의 가장 꼭대기층에서 신혼살림을 했다.


욕실은 이미 수십 년 묵은 곰팡이가 주인이었고, 부엌은 싱크대 한 칸과 가스레인지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았으며, 난방은 기름보일러였다. 냉장고나 전자레인지, 밥통 등 세간을 놓을 만한 자리도 없어 작은 방에 두어야 했다. 당연히 식탁 놓을 자리도 없어서 첫째가 밥상을 휘어저을 7,8개월 무렵에는 정수기 위에 밥을 놓고 먹었다. 첫째 한나니는 그런 곳에서 태어났다.


그래도 행복했다. 아이는 미숙아였고 태어나자마자 신생아중환자실에 있어야 했지만 퇴원 후로는 건강하게 잘 커주었고, 나도 아이를 키우는 일이 정말 즐거웠다. 단지 곰팡이가 들어앉은 욕실이 미안했고, 아기가 기어 다니기에 너무 좁은 이 집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러려면 아이를 적당히 키우고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매일 아이에게 얘기했다. 천천히 커라, 너무 예쁘니까 천천히 커~ 알았지? 다시 일하러 나가야 하는 날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가는 시간이 아쉬워 나는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갔다. 민들레씨도 불고, 실없이 산책도 하고, 콩벌레가 콩이라며 먹으려는 아이를 말리기도 하면서.


아이 손을 잡고 산책하던 어느 날, 큰 도로 반대편 한쪽 구석에 조그마한 파이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저런 곳에 파이가게가 있네? 한나니 파이 먹어볼래? 나는 아이 손을 잡고 들어가 아이에게 파이를 보여주었다. 아이는 '초코타르트'를 골랐다. 파이를 타르트라고 하는구나. 작은 조각인데 오천 원이 넘었다. 가난한 시절이라 순간 살짝 놀랐지만, 기분 좋게 아이 손을 잡고 들어왔으니 이 정도 사치는 기분 좋게 하고 싶었다.


우리는 산책길처럼 낮은 동네 산에 갔다. 한나니는 운동 기구들을 놀이 삼아 매달리고 구르면서 초코맛 파이를 맛있게 먹었다. 공기는 신선하고, 아이는 기분이 좋고, 나도 좋았다. 친구와 수다를 떠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행복감이 차올랐다.


열심히 일하고, 둘째가 생기고, 나는 또 엄마가 되고, 재미있게 아이를 키웠다. 우리는 가끔 구석진 파이가게에 갔다. 다른 간식보다 비쌌지만, 파이는 젊었던 내가 그 당시 아이들에게 부릴 수 있는 사치이자 추억이었다. 파이를 사는 날은 산에 갔다. 아이들은 산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파이를 먹으며 엄마와 행복하고 느린 시간을 보냈다.


한참 다시 일을 하다 쉬게 되어 아이 손을 잡고 파이가게를 찾아갔을 땐 가게가 없어지고 떡볶이집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나와 아이의 추억이 사라져버린 것처럼 많이 아쉬웠다. 거의 십 년 만에 나는 더 넓은 집에 아이들 학원 근처로 이사를 오게 되었는데, 아이들과 동네 산책 중에 그 파이 가게가 우리 동네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다. 어찌나 반갑던지! 나는 훌쩍 커버린 아이들과 함께 들어가 전처럼 파이를 고르고 바닐라라떼도 주문했다. 잃어버렸던 소중한 물건을 다시 찾은 기분이었다.


첫째 아이는 그때의 파이들을 확실히 기억한다. 가난해도 행복했던 젊은 시절의 내가 비싼 파이를 아이에게 사주며 스스로를 위로했던 것 같다. 이런 간식쯤은 언제나 사 먹을 수 있게 해 줘야지, 하고. 아이는 이 파이를 보면 어떤 색깔의 기분일까. 어쩌면 이 파이가게는 아이의 혀 끝 달콤함보다 나에게 더욱 의미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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