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다뤄야 할 이유가 있었다.
영화 [악질경찰] 스포일러 리뷰
경찰이 무서워서 경찰이 된 경찰 조필호는 범죄를 저지르는 악질 경찰입니다. 돈이 필요했던 그는 경찰의 압수창고를 털 계획을 세웁니다. 계획은 실행하던 그날, 압수창고에서 폭발이 일어나면서 같이 작업하던 기철이 죽게됩니다. 그리고 유일한 용의자가 된 그. 이 사건을 수사하던 남 검사는 그에게 솔깃한 제안을 합니다. 나쁜 놈 위에 더 나쁜 놈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그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영화 [악질경찰]입니다.
스포일러 없이 쓰고 있었는데, 그럴 수 없었던 리뷰입니다. 이 글에는 영화 [악질경찰]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불한당]과 [아수라]의 결말에 대한 언급도 조금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개봉 전부터 영화 평점이 상당히 낮은 영화였습니다. 같은 날 개봉하는 [돈]과 [우상]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서, 기대는 더욱 낮아졌습니다. 그럼에도 이선균이라는 배우의 연기가 궁금했습니다. 껄렁하고, 대충사는 것 같은 느낌의 연기는 또 그가 아주 잘하는 특기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PMC : 더벙커]에서 상당히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아서 그에게 설욕할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실망했고, 개인적인 실망에 설욕할 기회를 저 혼자 주는 겁니다.)
그런데, 이 영화. 괜찮습니다. 이번에 개봉한 한국 영화 3편을 비교하자면, 저는 [악질 경찰]이 가장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는 아니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들은 관객들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이 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 [불한당]이 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주요인물은 다 나쁜 놈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나쁜 놈을 처리하는 방식이 서로 죽이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영화 [아수라]의 마지막 장면도 그렇습니다. 영화는 마치 ‘야, 너희 같은 놈들은 죽이는 것도 더러워. 그냥 너희들끼리 서로 죽여’ 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권선징악의 이야기 전개를 쓰는 것도 아니고 영화 내내 그냥 나쁜 놈만 나옵니다. 누가 더 나쁜 사람인지 대결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 영화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상황, 그리고 이 인물을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영화 속 이야기와 생각들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패턴은 쉽게 볼 수 없는 영화입니다.
영화 속 인물이 다 나쁘거나, 다 착하거나 해도 충분히 좋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물론, 다 나쁜 것이 이야기가 더 재밌을 것입니다. [악질 경찰]이 비슷한 경우를 보여줍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을 나쁜 사람으로 표현됩니다. 정이 가는 인물이 없습니다. 물론, 그중에서 조금 더 정이 가는 인물이 존재하긴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이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영화는 어떤 식으로 이들에게 벌을 내릴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깁니다. 이들에게 아무런 벌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영화를 보면 이 영화는 그렇게 끝날 것 같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들게 됩니다.
맨 처음에 말했던 낮은 점수를 준 분들의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읽어보니 그분들의 의견도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 분들이 말하는 것은 ‘굳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영화를 보신 분들은 이해하실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미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이라면, 다른 리뷰도 찾아봤을 것이고, 아마 그 리뷰에서 언급했을 것이니 아실 겁니다.
저도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불편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생각해보면 ‘굳이?’가 ‘굳이!’가 되었습니다. 우선, 이 영화는 크게 두 가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압수창고 폭발에 대한 이야기와 소니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른 이야기로 느껴지지만, 사실 이 두 이야기는 하나의 사건에서 파생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조필호는 자신이 먹고사는 것 이외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인물입니다. 그런 인물이 무언가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 무언가라는 것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두 가지 이야기입니다. 자신보다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보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가 각각 태성 그룹과 미나를 의미합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고, 영화를 보면 영화는 간단하게 정리 됩니다. 태성 그룹 → 조필호 → 미나. 이런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태성 그룹이 그들을 억누르려고 하지만 그들은 더 반발합니다. 그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조필호가 움직이게 됩니다.
영화의 중반부까지도 이런 구조를 알 수 없던 조필호는 그저 자신을 위해서 그 일을 하게 됩니다. 미나는 필호가 자신을 지켜줄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필호는 남 검사가 자신을 지켜줄 사람이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건으로 인해 두 사람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모든 일의 비밀을 알게 되고, 자신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했던 조필호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 순간 미나는 스스로 삶을 포기합니다. 조필호는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미나와 같은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지켜줘야 했던 미나도 잃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미나와 같은 처지가 되었습니다.
사실, 미나도 자신이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단짝이었던, 소은이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소은이 죽고, 혼자 남겨진 소은의 아버지에게 자신이 소은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싶었습니다. 아마, 미나 역시 그에게 자신의 빈자리를 채워주길 원했을지도 모릅니다. 남은 자들끼리 서로 위로가 되면서 살아가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소은의 아버지가 자살한다는 것을 신고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은의 아버지까지 없으면, 정말 소은이를 완전히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미나라는 작은 소녀에게 친구의 죽음은 그녀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큰일입니다. 그 짐을 같이 짊어질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은을 구해주려고 했던 잠수부에게 그 돈을 기부했을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친구를 지켜주려고 했던 사람이니까요.
태성 그룹의 정이향 회장은 사회 환원 사업으로 장학생을 선발하여, 장학금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공부할 여유도 없는 아이들이 아닌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에게 주고 있죠. 흔히 하는 말로 ‘있는 놈들끼리 해먹는다’ 는 것이죠. 장학금을 받고 자란 학생들은 남 검사와 같이 자신이 태성 그룹의 장학생이라며, 그들을 도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정말 관심을 받고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는 관심조차 주지 않고, 자신들의 이속만 챙기려고 합니다. 영화 초반의 필호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필호가 미나를 만나면서 심정적인 변화를 겪었고, 그 변화는 다른 이기적인 집단들에게 자극을 주었습니다. 물론, 그의 방법은 잘못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던 일은 그렇게 극단적인 일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고 않고, 그들은 어떻게든 빠져나갔을 것입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죄를 속죄하는 의미에서 더 나쁜 놈에게 더 나쁜 짓을 하면서 자신의 죄를 자신의 방식으로 속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현실을 반영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건으로 많은 국민들이 심리적인 불안에 휩싸였습니다. 이들을 보듬고, 돌봐줘야 할 그들은 서로의 이속만을 생각하면서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영화 속에서 ‘조필호’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이속만을 챙기려다가 보지 못했던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화 속 ‘조필호’는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태성그룹 → 조필호 → 미나. 이런 구조에서 미나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조필호가 미나의 편이 되어 줘야 합니다. 태성그룹 ← 조필호 / 미나. 이런 구조로 바뀌자, 영화 속에서 미나가 끝까지 지키려고 했던 소희는 다시 본래의 삶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소희는 그 이름처럼 우리 삶의 작은 희망으로 피어난 것입니다.
나름 과대해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 인터뷰 자료나 감독의 이야기를 보면, 이런 이야기들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독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저는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인물의 이름 때문입니다. 인물의 이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입니다. 모든 영화의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 그 중에는 분명 어떤 의미를 가진 이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닌 영화도 많습니다.
[악질경찰]의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을 보면서는 별생각이 없다가, 태성그룹 회장의 이름이 ‘정이향’ 이라는 것이 눈에 걸렸습니다. 회장의 이름으로 사용되는 흔한 이름은 아니어서 의미를 생각해봤습니다. 바를 정, 다를 이, 향할 향. (한자 하나도 모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바름과 다른 방향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재밌어서 다른 이름도 살펴봤습니다. ‘조필호’ 이 이름은 영화 속에서 이 이름을 부를 때 X필호라고 부르는 것으로 생각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자 검색을 해보니 조,필,호 모두 ‘돕다’라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미나는 작을 미, 나약할 나, 이런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고, 저의 뇌에서 나온 뇌피셜입니다.
이런저런 의미 해석을 했지만, 그런 의미 없이도 충분히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굳이’로 생각해보면 감독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민감한 상업영화 입장에서는 이렇게 민감한 소재는 쉽게 쓰기 어렵습니다. 분명한 의지나 이유가 없다면 안 쓰려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내용이나 의미들을 생각해보면 분명 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정범 감독은 인터뷰에서 ‘조필호는 우리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영화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 참고로, 영화 자체도 스릴 있고 괜찮습니다.
4 / 5 굳이 다뤄야 할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