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질] 리뷰
좋은 기회를 통해서 황정민 배우 주연의 영화 [인질]을 시사회를 통해서 미리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번 여름에 개봉하는 영화 중에서 기대를 안 하는 쪽에 있던 영화였는데, [인질]은 그런 저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영화 [인질]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분께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전 [모가디슈] 리뷰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외유내강’이라는 제작사에 대한 믿음이 있는 편입니다. 한국 영화에서 느껴지는 고질적인 문제들이 이 영화에서는 최대한 자제하고, 영화의 본질에 접근하는 태도가 아주 좋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그 이름값에 맞게 영화의 완성도를 올리는 것에 최대한 집중한 듯한 모습입니다. 무엇보다 ‘인질극’이라는 상황에서 등장할 법한 대사들이 있는데, 가족을 인질로 잡은 인질범들이 주인공과 자녀와 통화를 하게 해서
‘여보, 괜찮아? 00야 아빠가 구해줄 테니까 걱정 말고,
엄마랑 잘 붙어있어 울지 말고, 아빠가 00 사랑하는 거 알지? 사랑해’
생각만 해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런 뻔한 장면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 외에 범죄를 다루는 한국 영화에서 제가 바라는 점 중에 하나가 제발 ‘무능한 경찰’이 안 나왔으면 좋겠다는 것인데, 다행히도 [인질]에 등장하는 경찰의 모습은 무능하다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거기에 ‘외유내강’은 이전 류승완 감독의 영화를 주로 제작하던 제작사였지만 최근 [엑시트], [시동] 등을 통해서 신인 감독의 상업 영화 입봉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입니다. 이번 [인질]을 연출한 ‘필감성’ 감독은 [인질]이 상업 영화 데뷔작으로 ‘배우 황정민이 납치가 된다면?’이라는 상상에서 출발한 시나리오를 영화로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영화 제작사 ‘외유내강’이라는 제작사에 대한 믿음으로 이 영화를 관람하시려는 분들에게는 [모가디슈]에 이어서 상당히 좋은 선택이 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영화 [인질]은 황정민 배우에게도 상당히 의미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일단 배우가 자기 자신을 연기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 자체가 만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황정민 배우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황정민 배우는 비하인드 영상에서 자신을 연기한다는 것에 상당한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것이 쉽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런 분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알고 계신가요?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와 일치하는 점이 너무 많다면, 그것만큼 보기 어려운 것이 또 없습니다. 그만큼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런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인데, 그런 것을 황정민 배우는 훌륭하게 해냈습니다. 영화 중간중간에 황정민 배우의 전작의 유행어 ‘드루와~’를 하는 장면도 존재하기 때문에 황정민 배우를 좋아하는 분들은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겁니다
사실 황정민 배우의 연기에 서서히 익숙해지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황정민 배우의 연기는 항상 비슷하다’, ‘맨날 똑같은 연기를 보여준다’는 등의 의견을 보인 분들도 있습니다. 배우의 캐릭터가 생기기 시작하면, 비슷한 역할이 다수 들어오게 되고, 그로 인해서 배우에 대한 이미지 소비가 이뤄지면서 배우의 캐릭터가 고착화되면 이것이 배우에게는 단점으로 작용될 수도 있습니다. 더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해도, 이전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스스로의 발목을 붙잡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 황정민 배우에게 [인질]은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줄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존 황정민 배우가 보여주는 이미지를 어느 정도 비슷하게 가져가는 듯 하지만, 이는 새로운 캐릭터가 아니라 황정민이라는 사람이 캐릭터가 되는 것이라 연기의 톤이 이전 작품과는 미묘하게 다르게 느껴집니다. 배우 황정민이 아니라 인간 황정민이 보이는 연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영화에서는 배우가 아무리 열심히 연기를 해도, 영화 속 캐릭터가 아닌 배우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느껴지는 영화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전의 황정민 배우의 작품에서 그런 부분이 느껴지는 영화들이 다수 있었는데, 영화 [인질]에서는 그 이미지가 영화의 캐릭터가 되다 보니 오히려 장점이 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우의 이미지가 강하게 느껴지더라고, 그것 자체가 영화의 캐릭터이다 보니 이것이 배우의 이미지인지, 캐릭터의 이미지인지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느낌이라는 것이죠.
최근에 넷플릭스를 통해서 공개된 [차인표]라는 영화에서는 ‘차인표’라는 배우를 영화 속 캐릭터로 녹여내었지만, 많은 부분 극화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저 배우의 이미지를 이용한 코미디 영화 정도로 밖에 안 느껴졌지만, [인질]에서는 극화되었다는 느낌보다는 최대한 있을 법하게 그려내었습니다. 관객들은 현실의 황정민 배우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겠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황정민 배우의 모습이 충분히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더더욱 몰입하여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황정민 배우를 좋아하는 분들을 넘어서, 황정민 배우를 알고 계신 분들 모두에게 추천할 수 있는 그런 영화일 것 같습니다.
‘배우 황정민이 납치되었다’라는 영화의 콘셉이기 때문에 다른 영화보다 현실성이 조금 더 중요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이유로 황정민 배우와 특별 출연한 박성웅 배우를 제외한 배우들은 신인급 캐스팅이 이뤄졌습니다. 이전에 진행된 ‘무비토크’에서 황정민 배우는 자신이 연기에 대한 칭찬을 받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배우분들이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기에
관객분들은 그나마 이름을 알고 있는 저에게 칭찬을 해주시는 것 같다’
역시 밥상 수상소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저도 이런 황정민 배우의 말에 공감합니다. 사실 한국에서는 이런 캐스팅이 이뤄지는 경우가 흔하지 않습니다. 영화의 입장에서는 흥행의 주요 요소가 되는 배우의 캐스팅에 한 명의 스타만으로 캐스팅을 진행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도전이라 볼 수도 있는 것이죠.
그래서 개봉 전 주까지만 해도 네이버 영화 캐스팅란에는 황정민 배우만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겉으로 보기에는 황정민 배우에게 많은 것을 기댄 것으로 보이지만, 영화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황정민 배우보다 오히려 처음 보는 얼굴, 신선한 얼굴에 더 눈이 가는 상황이 생깁니다. 오히려 그들이 영화의 흐름을 주도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황정민 배우는 납치된 상황이기 때문에 한 장소에서 머물러 있는 시간이 많은데, 그런 황정민 배우를 둘러싸고 있는 다른 캐릭터들의 역할이 더 중요하고 볼 수도 있는 것이죠
상업 영화인데, 영화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캐릭터의 배우가 스타가 아닌 상황인 것이죠. 그럼에도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은 것은 그들이 인지도가 없는 것이지 연기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낸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 여러 생각들을 하다가 ‘왜 황정민이라는 캐릭터를 영화에 그대로 가져왔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의 시작이 황정민 배우가 납치되었다는 상상력이라고는 하지만 배우의 실명이 아닌 가상의 캐릭터를 만들 수 있음에도 말이죠.
우선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캐릭터가 납치가 된 상황에 대해서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대게 납치가 된 상황을 다루는 영화를 보다 보면, 주인공이 뛰어난 능력을 가진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납치된 당사자가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납치된 인물과 통화를 하는 과정에서 납치된 인물이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납치되기 이전에 알려주었던 대체법이 납치된 상황에서 사용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 인물이 납치된 상황에서 활용할만한 무언가가 등장할 수 있는 개연성을 만들기 위해서 주변 인물이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인질]에 대입을 해본다면, 배우라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능력은 무엇일까요? 바로 연기입니다. 이 영화는 인질이 연기를 무기 삼아서 인질범과 맞서는 그런 영화라 볼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극 중에서 이것이 연기인지 실제인지 분간이 어려운 상황들이 만들어집니다. 그런 상황에서 인물은 연기를 무기 삼아서 극복을 하는 것이죠
저는 이런 상황 설정이 상당히 신선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인질과 관련된 영화에서 경찰이나 군인과 관련된 인물이 납치가 되어서, 그것과 연관된 능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인질]은 황정민이라는 배우의 연기력을 무기로 삼는다는 것이죠.
여러분들에게 이런 질문을 드려보고 싶습니다. 사회적으로 연쇄 납치사건이 발생하고 있는데, 수사가 지지부진하게 느껴지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유명 연예인이 그들에게 납치되었다는 보도가 등장합니다. 과연 경찰과 언론 및 여론은 어떤 반응일까요?
이것이 [인질]에서 등장하는 상황입니다. 비공개 수사로 진행하던 수사도 공개수사로 전환이 되고, 여러 사람들이 그 인질범을 잡기 위해서 노력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죠. 물론 공개수사가 온전히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이럴 경우 자신이 금방 잡힐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더 큰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고, 계획이 노출되면 범인이 이미 대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수사는 조용히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찌 되었든 배우가 실종 상태가 된다는 것은 결코 숨길 수 없는 상황인 것이고, 이런 상황을 영화 속에서 이용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합니다. 단순 경찰만이 아니라 납치범 내부에서도 이런 상황을 견제하면서 진행되는 이야기가 등장하기 때문에 기존 납치극과는 조금 다르게 전개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인질]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질극이라는 흔한 소재이지만, 인질이 된 대상의 상황에 다르기에 인질극이 흘러가는 방향이 조금 다르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뻔한 영화로 보이던 것과는 달리 조금은 신선하게 느껴질 여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현실성을 강조하는 영화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주인공의 능력 보정이라는 이야기가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물론, 이 부분이 아주 어이없게 연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에는 어느 정도 동의를 하는 편입니다. 자세히 말씀드리면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 정도로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극 중에 액션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의 어느 부분에 카체이싱이 등장합니다. 저는 이 카체이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과거 영화 [베테랑]을 볼 때 느껴진 카체이싱의 쾌감이 느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이것도 ‘외유내강’의 강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인데, 액션 장면에서 일상적인 부분을 잘 녹여낸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살고 계신 분들이 볼 수 있는 길거리 풍경과 볼 수 있는 도구들을 이용한 액션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마무리하는 모습도 최소한의 복선을 남겨두었기에 이 요소가 등장하더라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능한 부분이었습니다.
저는 [인질] 아주 재밌게 봤습니다. 영화를 보던 중에 화장실을 가는 것에 망설임이 없는 편인데, [인질]은 화장실을 못 가게 하는 그런 매력이 있는 영화였습니다. 영화 전체가 한 호흡으로 밀도 있게 진행되기 때문에 영화 내내 긴장감이 잘 형성되어 있는 그런 영화라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모가디슈]보다 재미있다고 생각한 영화였습니다.
[인질]과 [모가디슈] 중에서 하나를 추천해야 한다면 저도 [모가디슈]를 추천할 것 같습니다. 물론 영화의 완성도와 규모에서는 [모가디슈]가 훨씬 좋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하나의 제품과 같습니다. 관객들이 돈을 지불하고, 2시간 동안 체험 또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영화라는 상품입니다. 많은 돈으로 해외 로케, 블록버스터, 많은 스타의 캐스팅 이뤄진 [모가디슈]와 한정된 장소, 신인급 배우의 대다수 캐스팅 등이 이뤄진 [인질] 중에서 [모가디슈]를 선택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인질]과 같은 중규모의 영화가 더욱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한국 영화가 대규모 아니면 저예산 영화로 제작이 되어 빈부격차가 심해져 이전보다 영화의 다양성이 떨어진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인질]이 한국 영화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