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 엔드게임]이 전하는 진짜 메시지
2019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대미를 장식한 영화 [엔드게임]이 개봉했습니다. 이 영화는 전작 [인피니티 워]의 충격적인 결말에서 시작됩니다.
[인피니티 워]에서 타노스는 우주의 균형을 맞추겠다며 인피니티 스톤 여섯 개를 모두 모아, 그 유명한 '핑거 스냅'으로 우주 생명체의 절반을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어벤저스는 그를 막기 위해 모든 힘을 다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로 5년이 지나, [엔드게임]은 절망과 상실 속에서 무기력해진 히어로들의 모습을 그립니다. 이제는 더 이상 싸울 이유도, 지킬 것도 없어진 그들 앞에 '타노스를 다시 찾자'는 제안이 나옵니다.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블랙 위도우, 헐크, 그리고 살아남은 다른 영웅들이 타노스를 찾아가지만, 이미 그는 인피니티 스톤을 파괴해 버린 후였습니다. "운명은 이루어졌다"며 모든 것을 포기한 타노스를 처치하게 됩니다. 그것도 영화 시작 20분 만에 말이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거대한 세계관에서 가장 강력한 '메인 빌런'이었던 것과 동시에 영화 속 캐릭터들이 5년이나 기다린 복수의 대상인 타노스가 다소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복수는 완수되었지만, 그들에게 남은 것은 허망함과 깊은 상실감뿐이었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그 상실감은 전혀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해져만 갑니다. 타노스를 무찌른 순간에도 공허함이 사라지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히 그가 강력한 빌런이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이 단순한 '복수'가 아니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어벤저스는 단순히 적을 무찌르는 것이 아닌, 잃어버린 사람들을 되찾는 더 큰 여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 시점에서 영화는 복수에서 회복, 전투에서 위로로 전환됩니다. 단순한 액션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상실을 넘어서는 감정적 여정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죠.
두 개의 빌딩이 무너진 그날, 수많은 마음도 함께 무너졌습니다. 2001년 9월 11일의 사건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날,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테러로 무너졌습니다. 이 사건은 미국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가족을, 누군가는 친구와 동료를, 그리고 모두는 일상의 평범함을 잃었습니다. 아무런 예고도, 잘못도, 이유도 없이 말이죠. 사람들은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때문에 미국은 즉각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면서 복수를 선언했습니다. 그러한 선언에 모두들 기대를 했습니다. 강대국 미국이 빠르게 복수에 성공할 것이라고.
하지만 전쟁은 예상보다 길어졌고, 그 안에서 무너진 것은 적의 진지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돌아오지 못한 군인들, 말 한마디 없이 떠나간 사람들, 그리고 끝내 이해되지 않는 상실감이 남았습니다. 복수에 치중되어 실제 테러로 가족과 친구를 잃은 사람들을 살피지도 못했습니다. 복수를 위해서 전쟁을 시작했지만, 장기화된 전쟁으로 희생된 군인과 살아남았지만 PTSD를 겪고 있는 군인, 그리고 그의 유가족들과 국민들까지. 결국 복수는 성공했지만, 미국의 아프간 전쟁은 실패했다고 평가받고 있는 상황이었죠.
테러가 있었던 곳에서는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공간인 '메모리얼 파크'가 만들어졌습니다. 그곳에는 사각형의 큰 공간에 끊임없이 물이 떨어지는 폭포와 같은 구조물이 있습니다. 이는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그들의 빈자리'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곳이죠.
그런 상처를 안고 있는 사회에서 할리우드는 자연스럽게 복수와 상실을 주제로 한 영화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다크 나이트]는 스스로 어둠이 되어야 했던 히어로를 그렸고, [허트 로커]는 전장에서 돌아온 군인의 고립감을, [제로 다크 서티]는 복수의 끝에 남는 허무함을 담아냈습니다. 쟁취하는 것보다는 지키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이야기들이 등장했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보다는 피해자에 대한 보호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상실의 정점을 찍은 작품이 바로 [엔드게임]이었습니다. 타노스를 죽였지만 기쁨은 없었고, 블립을 되돌리기 전까지 모든 것은 공허했습니다. 복수를 완수했지만, 그들의 삶은 여전히 상처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장례식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영화 속에서 사람들을 되돌리기 위해서 스스로를 희생한 캐릭터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한 장례식으로 혹은 MCU를 떠나게 된 그들에 대한 장례식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 외적으로는 아무 이유 없이 우리와 이별하게 된 수많은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동안은 지겹도록 반복되었던 '복수의 허망함'이라는 코드는 지나가고, 최근의 할리우드 영화는 또 다른 메시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바로 '분열과 화합'이라는 코드입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이터널스],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그리고 [썬더볼츠*]까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들이 하나의 팀이 되어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 구조는 사실 익숙합니다. 이전에 많은 영화들이 이미 이러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죠. 어쩌면 조금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왜 이렇게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될까요?
그것은 지금의 미국이 여전히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인종 간의 갈등, 정치적 분열, 경제적 불평등, 그리고 서로 다른 문화와 가치관의 충돌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 같은 갈등은 단지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배척하는 데서 비롯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단순히 미국 사회만의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결국, 이는 세계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공동체와 개인의 갈등, 상실과 회복의 보편적인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그럼 지금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 걸까요?
그리고, 지금의 영화는 우리에게 어떤 위로를 건네고 있을까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는 길은 생각보다 멀고 험난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엔드게임]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