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백상을 보며 느낀 한국 영화의 위기

by 따따시


최근 백상예술대상이 진행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갔던 부분은 영화 부문 대상을 [하얼빈]의 촬영감독이었던 홍경표 촬영 감독에게 수여했다는 것입니다. 백상 최초로 기술 파트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평가를 하고 싶습니다. 단순하게 보면 스태프에 대한 존중의 의미로 볼 수도 있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이번 결정을 보며 들었던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충분히 상을 받을 만한 사람에게 돌아간 상


먼저, 홍경표 촬영 감독은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 영화인입니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기생충]의 촬영 감독을 맡으면서 이미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은 촬영 감독입니다. 그 외에도 여러 차례 뛰어난 작업을 선보였고, [하얼빈]에서도 그 실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이 영화의 촬영은 영화에 대해서 잘 모르는 문외한이 보더라도 '때깔이 다르다'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수준 높은 미적 감각을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하얼빈]의 경우,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이 진행되었는데, 구하기가 어려워서 아무나 쓸 수 없는 아이맥스 카메라를 사용하게 된 것에는 홍경표 촬영 감독의 영향력을 무시하지 못할 겁니다. 그 정도로 홍경표 촬영 감독은 이미 인정받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가 대상을 수상한 것에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이 환영할 일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존중이었을까?


백상이 이번 시상식에서 기술 파트 스태프에게 대상을 준 것과 더불어 축하 공연에서 스태프의 이야기를 담은 내용의 공연이 있기도 했습니다. 수상 결과와는 별개의 내용이겠지만, 백상 자체적으로도 꾸준히 비슷한 이야기를 해왔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백상이 진정으로 기술 파트에 대한 존중의 의미가 있었다면, 대상을 주는 것보다는 다른 움직임이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백상이 기술 파트의 역할을 진정으로 존중한다면, 단순히 한 명의 촬영 감독에게 대상을 주는 것이 아니라, 기술 파트 자체에 대한 시상을 더 늘렸어야 했습니다.


할리우드의 아카데미 시상식만 보더라도, 촬영, 편집, 음향, 시각효과 등 기술 파트의 세분화된 시상이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예술적 기여를 넘어, 영화 제작의 핵심 요소로서 기술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구조입니다. 아카데이의 배우 부문 수상은 4개 부문으로 정해져 있고, 그 외 부문은 모두 스태프들에게 주는 상입니다. 즉, 아카데미 시상식은 '영화인'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어서 그들에게 상을 주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한국의 영화 관련 시상식들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배우들에게 수상을 해야 하죠. 개인적으로는 신인상과 인기상이 존재하는 것이 의문입니다. 이번 백상 영화 부문 남자 신인상은 정성일 배우가 수상을 했습니다. 과연 그가 신인 배우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새로운 뉴비에게 치얼업 해주는 것 자체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기상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시상식을 지속적으로 개최하기 위해서는 후원을 받아야 하고, 그러한 이유로 대체로 인기상에는 후원사의 이름이 붙게 되죠. 즉, 인기가 많은 배우들이 등장하게 해서 후원사의 가치를 조금 더 높여준다고 볼 수 있죠. 시상식을 운영하는 사무국 입장에서 현실적인 이유로 이러한 선택을 했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게라도 유지가 되어있는 것이 영화를 위해서는 좋은 일이라고 볼 수 있으니 말이죠.


백상이 진정으로 기술 파트에 대한 존중을 표하고자 했다면, 단순히 트로피 하나를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기술 파트의 기여를 더 널리 인정하고, 그들의 예술적 성취를 기리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더 의미 있는 변화였을 겁니다.


다른 생각으로는 2024년 한국 영화 혹은 인물 중에서 작품상을 주기에 애매했다는 점도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그나마 [하얼빈]이 작품상을 받을 것은 그나마 완성도가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지, 영화 자체가 뛰어난 영화였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얼빈]이 영화로서 대상의 무게를 감당할 만큼의 작품인지는 의문입니다. 대신 이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성취를 보인 촬영 파트에 상을 준 것이라면, 그 선택이 조금은 더 이해가 됩니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이 떠오른다


과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떠오르던 PC주의와 맞물리며 동양권 영화에 대한 수상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해석이 등장했습니다. 과거 흑인 영화인 그리고 히스패닉 영화인들이 아카데미에서 활약을 하던 때가 있었고, 그 유행이 동양권에게도 넘어왔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여러 영화제에서 동양권 영화들의 활약이 눈에 띄던 시기이기도 했죠.


물론 [기생충]은 뛰어난 작품입니다. 하지만 같이 후보에 올랐던 [1917]에 대한 기대가 더 컸던 것이 사실입니다. 기술적 성취와 완성도 높은 연출력이 곁들여지면서 무난한 수작의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죠. 물론 아카데미 시상식의 경우, 심사위원들이 작품성을 두고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닌 수 만 명이 넘는 아카데미 회원들이 수상작에 투표를 하는 방식으로 선출이 된다는 점에서 객관적인 얘술적 성취보다는 영화가 주는 임팩트가 조금 더 수상에 유리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서 시상식에서의 수상은 단순히 뛰어난 작품이나 기술적 성취뿐만 아니라, 시대적 흐름과 사회적 분위기가 수상의 배경이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백상의 촬영감독 대상 역시 그러한 흐름 속에서 나온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죠.



한국 영화의 질적 역성장?


어쩌면 이번 백상의 결과는 한국 영화가 질적으로 역성장하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대상을 줄 만한 작품이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기술적 성취'를 이유로 촬영 파트에 상을 준 것이니까요.

물론 결과적으로는 이런 변화가 고무적일 수 있습니다. 대상을 줄 만한 작품이 없다고 해서 시상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렇다고 대상에 걸맞지 않은 누군가에게 대상을 수여한다면, 그것도 시상식의 권위에 의심을 받을 상황이 될 것입니다. 그나마 가장 두드러진 성취를 인정해 준 것이니, 잘못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위기가 될 수 있던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오히려 더 나은 선택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화위복이 되었다는 것이죠.


결국 이번 결정은 단순히 기술 파트를 존중하는 의미를 넘어, 한국 영화계가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일지도 모릅니다. 기술 파트를 진정으로 존중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트로피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기여를 더 깊이 이해하고, 널리 인정하는 구조적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엔드게임]의 진짜 메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