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을 깨고 싶었던 독점
JTBC가 동계올림픽 중계권을 독점했다는 소식 이후로, 한국 여론은 꽤 빠르게 한 방향으로 흘렀다.
“보편적 시청권이 침해됐다.”
“독점 때문에 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더 식을 것이다.”
언론의 톤도 비슷했다.
독점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순간, 이야기는 간단해진다.
JTBC는 악역이 되고, 지상파는 공익을 지키려다 밀려난 피해자가 된다.
그런데 나는 이 흐름을 보면서 계속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이 논쟁은 너무 쉽게 선악으로 갈라지고, 너무 쉽게 원인을 단정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잊고 있는 전제가 하나 있다.
올림픽 중계권은 애초에 ‘돈을 많이 낸 사람이 가져가는 것’이 원칙이라는 사실이다.
올림픽 중계권은 독특한 방식으로 굴러간다.
한 방송사가 권리를 확보한 뒤, 다른 방송사에게 중계권을 재판매하는 식이다.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지상파 3사가 돌아가며 입찰을 해왔다.
그리고 나머지 방송사들이 재판매를 통해 중계를 이어가는 구조가 반복됐다.
이 방식은 안정적이다.
동시에, 매우 견고하다.
견고하다는 말은 보통 “누군가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JTBC는 그 구조에 들어가고 싶었을 것이다.
올림픽은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방송사의 체급을 증명하는 무대였으니까.
하지만 그들이 쉽게 끼어들 수 있었을까.
나는 그랬을 것 같지 않다.
결국 JTBC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직접 돈을 내고 중계권을 사는 것.
그리고 높은 금액으로 동일한 방식, 즉 ‘재판매’를 통해 판을 굴리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상파 3사는 재판매를 거절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이유와 명분이 나왔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나는 한 가지는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올림픽 관심이 줄어든 상황에서
지상파가 그 리스크를 감당하고 싶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올림픽 중계권은 더 비싸졌고, 광고 시장은 더 작아졌다.
이제는 올림픽을 중계한다고 해서 예전처럼 돈이 남는 구조가 아니다.
그렇다면 지상파의 선택지는 두 가지다.
손해를 감수하고 재판매를 산다.
혹은 재판매를 거절하고, 대신 ‘공익’ 프레임으로 싸운다.
그리고 지금은, 두 번째 선택지가 훨씬 강력해 보인다.
요즘 기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구도는 이런 것이다.
‘JTBC가 독점했다 → 국민 관심이 식을 것이다.’
그럴듯하다.
하지만 이건 반만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올림픽에 대한 관심은 이미 오래전부터 줄어들고 있었다.
올림픽이 국민의 감정을 하나로 묶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그건 JTBC의 독점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TV를 켜면 올림픽이 있었다.
이제는 TV를 켜지 않는다.
올림픽이 아니라도 볼 것이 너무 많다.
스포츠도 올림픽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이라이트는 쇼츠로 소비되고, 감정은 분산되고, 관심은 더 빨리 식는다.
즉, 올림픽이 예전 같지 않은 건
누군가가 독점해서가 아니라
올림픽이 예전 같지 않은 시대가 왔기 때문일 가능성이 더 크다.
지상파 3사는 지금 “우리는 너무나도 중계를 하고 싶지만 JTBC가 독점해서 못 한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지난 파리 올림픽도 열기가 예전만 못했다.
올림픽은 여전히 큰 이벤트지만, 과거처럼 방송사가 전력을 다해 홍보하고, 온 편성을 올림픽으로 밀어붙이던 시절과는 다르다.
그렇다면 이런 가능성도 있다.
지상파는 올림픽을 ‘못 한 것’이 아니라
올림픽을 ‘안 해도 되는 명분’을 찾은 것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 명분은 너무 강력하기 때문이다.
“보편적 시청권.”
보편적 시청권은 듣기만 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국민을 앞세우는 순간, 반대편은 자동으로 악당이 된다.
하지만 여기서 냉정하게 질문해보고 싶다.
올림픽 중계권은 정부가 지원하는 사업인가?
국가 예산으로 구매한 공공재인가?
아니다.
민간 사업자가 돈을 내고 산 콘텐츠다.
그리고 중계권은 애초에 돈 많이 낸 사람이 가져가는 것이 원칙이다.
이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현실은 그렇다.
물론 올림픽이 국민적 행사라는 감정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 감정이 “무료로 볼 권리”로 확장되는 순간, 논쟁은 조금 이상해진다.
정말로 보편적 시청권이 국가적 의무라면
정부가 규제하거나 지원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조용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가 나설 만큼의 사안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JTBC가 전국 가구 대부분에서 송출되는 채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아예 못 본다”는 프레임도 과장된 면이 있다.
정확히는 ‘못 본다’가 아니라
‘예전처럼 지상파에서 쉽게 보던 방식이 사라졌다’에 더 가깝다.
그리고 단독 중계가 반드시 최악의 선택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지상파 3사가 나눠 중계하면
세 방송사는 결국 같은 인기 종목을 중복으로 편성한다.
올림픽이라는 거대한 이벤트가
비슷한 콘텐츠로 3번 복제되는 셈이다.
반대로 단독 중계는 중복을 줄일 수 있다.
한 방송사가 전체를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설진 역시 흩어지지 않는다.
좋은 해설진이 한 곳에 모이면 적어도 경험의 일관성은 생긴다.
또한 이번 중계는 유튜브보다 치지직 같은 특정 플랫폼으로 온라인 송출이 집중되는 느낌이다.
이전 올림픽에서 지상파가 유튜브에 풀영상과 하이라이트를 적극적으로 올렸던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이 변화는 단순히 인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중계권료가 너무 비싸졌기 때문에 회수 구조를 더 강하게 설계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유튜브는 조회수는 잘 나오지만
중계권료를 회수하기엔 구조적으로 약하다.
반면 특정 플랫폼과 파트너십을 맺으면
스폰서, 트래픽, 이벤트, 노출을 묶어 사업적으로 훨씬 강하게 움직일 수 있다.
즉, 지금 올림픽은 ‘중계’가 아니라
‘회수’의 문제가 더 커진 상태다.
다만 이 논쟁에는 중계권 외에도, 취재와 보도 영역에서의 마찰이 얹혀 있다.
최근 출입 기자 카드 비용과 관련해
지상파 3사가 제대로 된 취재 및 보도가 어렵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온다.
JTBC는 이전과 동일한 가이드를 따르고 있다고 한다.
어쩌면 JTBC는
지상파 3사가 중계권을 사실상 독점하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 종편이 올림픽 취재에서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어떤 제한을 받았는지 말이다.
그래서 지금의 갈등은
“공익 vs 탐욕” 같은 단순한 구도가 아니라
기득권이 바뀌었을 때 반복되는 전형적인 충돌에 가깝다.
이번 올림픽에서 최초의 금메달을 안긴 최가온 선수의 경기 장면이 생중계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당시에는 관심도가 더 높은 쇼트트랙 경기가 중계되고 있었다고 한다.
이건 분명 안타까운 일이다.
올림픽이라는 무대가 선수들에게 얼마나 큰 시간인지 생각하면 더 그렇다.
그런데 동시에, 이 사례가 ‘JTBC 독점’이라는 문제에서만 발생한 일인지도 묻게 된다.
만약 지상파였다면, 관심도가 비교적 낮은 스노우보드 경기를 과연 편성했을까.
이전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했지만 생중계되지 못한 경기를 우리는 여러 번 봐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 상황이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결국 이 분쟁에서 확실한 건 하나뿐이다.
누가 더 정의롭고, 누가 더 탐욕스러운지 따지는 동안에도 중계권료는 계속 오르고,
방송사들은 손익을 계산한다.
지상파는 공익을 말하고, 종편은 시장 논리를 말한다.
서로의 논리는 그럴듯하지만, 그 사이에서 시청자는 선택지가 줄어든다.
올림픽을 둘러싼 갈등이 반복될수록, 중계는 더 분절되고 시청 비용은 더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결과는 늘 비슷하다.
올림픽을 준비하는 선수들은 조용히 땀을 흘리는데, 정작 그들의 노력은 이전만큼 주목받지 못한다.
결국 이 싸움은 ‘누가 이겼는가’가 아니라, ‘누가 손해를 보는가’의 문제다.
그리고 그 손해는 또다시 소비자와 시청자에게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