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정하고,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
영화를 보기 전, 이해가 되지 않은 캐스팅이었습니다. 주연급 배우 하나 없이, 도경수 배우 혼자 이 영화를 이끌어 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도경수 배우의 연기력 문제가 아니라, 영화계에서는 아직 신인인 그 혼자서 한 영화를 이끌고 가기에는 아직 파워가 없다는 겁니다. 젊은 층에게는 어필할 수 있지만, 그 외 세대에게는 어필 할 수 있는 배우가 아닙니다. 이 영화가 작은 영화도 아니고, 연말에 개봉하는 N.E.W의 텐트 폴 영화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티켓 파워가 필요한 배우를 캐스팅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이 영화는 그가 아니면 할 수 있는 배우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한국 영화가 나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영화 [스윙키즈] 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꾀나 오래전부터 기대하던 기대작입니다. 이 영화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년 전이었습니다. 강형철 감독의 신작을 기다렸습니다. [과속스캔들]과 [써니]를 재밌게 본 입장에서 [스윙키즈]는 기대가 되는 영화였습니다. [타짜 2]는 사실 왜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강형철 감독과 어울리는 스타일이 아니었는데 말이죠.
저는 재즈와 탭댄스를 아주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보기 전부터 기대가 되었습니다. 거기에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춤을 다룬 영화기도 하고, 그중에서도 재즈는 정말 보기 힘든 영화입니다. 제 기억 속에는 재즈를 다룬 한국 영화가 없습니다. 춤은 [댄서의 순정] 밖에 기억이 안 납니다. 과거, 한국 영화 중에 그런 영화가 있더라도 인상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기억 속에는 존재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하는 기대는 한 가지였습니다. 재즈와 탭댄스를 아주 제대로 보여줬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음악과 춤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가 아니라, 영화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것을 원했습니다. 그리고 [스윙키즈]는 그런 저의 바램을 이뤄줬습니다. 그것도 거의 완벽하게 말이죠.
실제로 영화는 상당히 화려합니다. 퍼포먼스에 상당히 신경을 쓴 것이 보입니다. 이 영화는 위해, 1년간 안무창작을 하고, 적절한 음악 선곡을 위해 3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적어도 이 영화는 재즈와 탭댄스를 어설프게 보여주려고 하는 생각은 1도 없습니다. 우선, 배우 캐스팅부터 다릅니다. 잭슨이라는 인물에 탭댄서인 ‘자레드 그라임스’를 캐스팅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선택입니다. 연기보다는 좀 더 완성도 있는 탭댄스를 보여주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겠죠.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는 의지가 아주 대단한 영화입니다.
그 의지가 보이는 대목이 또 있습니다. 바로, 댄스 배틀 장면입니다. 단순히 춤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우열을 가리는 단순한 패턴이 아닙니다. 탭댄스는 대체적으로 재즈를 기반으로 합니다. 브라스 계열의 악기들이 주를 이루는 스윙 재즈 음악 위에 탭댄스가 박자를 맞추며 춤을 춥니다. 물론, 탭댄스화에서 나는 소리 역시 악기의 하나입니다. 영화 [라라랜드]를 보신 분들이라면, 정확하게 아실 겁니다. 재즈는 서로 힘겨루기를 하듯이 서로 주고받는 음악입니다. 두 주인공의 탭댄스 대결도 서로 주고받으면서 진행됩니다. 둘은 대결이 아니라, 마치 하나의 공연처럼 혹은 같이 춤을 추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러한 연출은 강형철 감독이 재즈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강형철 감독은 이 영화 속에 나오는 재즈와 탭댄스를 대충 보여줄 생각이 1도 없습니다. 이왕 보여줄 거, 제대로 보여주자는 심산이죠. 그래서 이 영화는 퍼포먼스가 상당히 많습니다. 영화의 3분의 1 이상에서 탭댄스가 나옵니다. 정말, 눈과 귀가 즐거울 수 있는 영화입니다. 정말 많은 볼거리가 있는 영화고, 누가 봐도 신나게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거기에, 이 영화는 한 발짝 더 나아갑니다. 탭댄스가 단순히 미국의 춤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영화 중간에 탭댄스에 맞춰서 나오는 음악이 한국의 대중가요가 나옵니다. 탭댄스 = 재즈가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국적에 상관없이 춤이라는 것은 모두에게 통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영화 속에서 탭댄스가 자유를 상징한다는 것은 아주 잘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대체로 이런 영화들은 화려한 음악이나 춤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퍼포먼스로 눈길을 끌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스윙키즈]는 단순히 재즈와 탭댄스를 다루는 영화가 아니라, 인물이 중요한 영화입니다. 인물들이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위해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 간에 갈등이나 사건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용됩니다. 때문에, 그들이 하는 춤과 노래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보는 관객들에게는 그들의 퍼포먼스가 더 와닿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스윙키즈]의 특징은 인물들이 다국적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영화 속 주요 인물들이 서로 말이 안 통합니다. 이런 영화는 본 기억이 없습니다. 영화 속 주연이라는 두 인물이 서로 대화가 안 통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더욱 빛이 납니다. 언어와 생각은 달라도 춤은 통한다. 서로 통한다고 하는 것이 단순히 말로 의해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때문에, 서로 다른 언어를 하고 있어도 말이 통하는 장면이 나와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영화 중반부에 두 인물이 춤으로 대화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이 전혀 말이 안 된다고 생각이 드는 이유 또한 그들이 춤으로 서로 소통하는 장면이 지속적으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재즈와 탭댄스가 아니라도, 충분히 신경을 많이 쓴 것이 보이는 영화입니다. 먼저, 자막을 통해서 재미를 줍니다. 보통의 영화들이 다른 나라의 연어를 전달하기 위해 자막을 사용합니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하지만, [스윙키즈]는 자막까지도 영화의 한 요소로 만듭니다. 위에서 언급한 춤으로 대화를 하는 장면이 나올 때, 자막이 나옵니다. 심지어, 춤을 추는 장면이 안 나오고, 그들을 바라보는 다른 인물이 비치고 있음에도 자막이 나옵니다. 아마, 그도 그들의 몸짓을 보며 무슨 대화를 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영화 속에서 통역의 역할을 했던 판래의 영어입니다. 보통 영화에서 인물들이 다른 나라의 언어로 대사를 할 때, 잘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오히려 어색해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영어는 순수하게 콩글리시입니다. 정직한 발음과 한국의 어조로 영어를 합니다. 저는 그 점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인물의 캐릭터를 잘 살리는 것도 그렇고, 현실적인 느낌이 더 들었습니다. 정말 살기 위해서, 영어를 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신나는 재즈와 화려한 탭댄스를 제대로 보여준 것만으로도 영화가 가지고 있는 기능을 다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를 보면서 즐거움을 얻고 싶어 합니다. 적어도 상업영화라면, 영화를 통해 얻는 유희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스릴이거나 액션처럼 보고 난 후에 즐겁게 극장에 나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윙키즈]는 영화가 보여주는 퍼포먼스만으로도 충분히 그 기능을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에게 메시지를 주기도 합니다.
1950년대 미국과 소련이 많은 사람들을 희생해가면서, 그것도 자신들의 영토가 아닌 한국에서 전쟁을 한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서로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니고, 단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서 무고한 사람들까지 희생자로 만든 것이죠. 지금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서로의 체제가 우월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한반도에서 전쟁을 했고,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분단을 시켰습니다. 이념이 다르다고 사람을 죽이는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북한 사람인 로기수는 탭댄스를 춘다고 동료들에게 말하지 못합니다. 미국물을 먹은 빨갱이라면서, 자신들의 체제를 부정하는 일이라며 그를 욕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탭댄스는 이념과 상관없는 춤입니다. 이런 이념 전쟁이라는 것이 형체가 없는 허울일 뿐이라는 것을 영화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래 문단은 영화의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로기수의 형으로 나오는 로기진이 그것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영화 속에 로기진은 아주 무서운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사람들은 로기진에 대한 무용담만 늘어놓을 뿐 그가 어떤 사람인지 영화는 보여주지 않습니다. 심지어, 같은 포로수용소에 오게 되었어도 영화는 로기진을 자세히 보여주지 않습니다. 나중에 밝혀지는 그의 정체는 지적장애를 가져, 5세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결국, 그는 체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라 훈련받은 사람입니다. 그가 하는 것은 그저 명령받은 대로 움직이는 것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쏘라고 했을 때, 아무런 망설임 없이 쏜 것이고, 마지막 무대에서도 그런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 영웅이 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인물입니다.
영화를 볼 때, 나름 예측을 합니다. 결말이 어떤 식으로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죠. 이 영화는 제가 생각한 대로 결말이 나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에 주인공들이 죽고 영화가 끝났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잔인하게 들릴 수 있지만,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주제가 그들이 죽어야 더욱 강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그 이념이라는 것이 무엇이길래 저 죄 없는 사람들을 아무렇지 않게 죽일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이 결말이 최상의 결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죽는 과정이 너무 강조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보여서 더 좋았습니다.
일반적인 한국 영화라면, 슬로 모션 팍팍 걸어서 총을 맞고, ‘어… 으….’ 하면서 끝까지 자기 할 말 끝까지 하면서 질질 끌다가 마지막에 남녀 주인공이 폭풍 눈물을 흘리면서, 사랑한다고 하면서 끝나는 신파적인 이야기가 나올 것입니다. 죽으면서는 둘이 함께한 추억들까지 슬로 몽타주로 보여주면 됩니다. 이 영화는 그런 짓 안 합니다. 그냥 깔끔하게 죽습니다. 그래서 더욱 영화의 메시지가 다가옵니다.
정말 대단한 감독입니다. 강형철 감독은 남들과는 약간 다른 소재로 평범한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과속스캔들]에서 3대를 아우르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써니]를 통해 남자들의 학창시절 이야기만 나오던 영화들 속에서, 여자들의 유쾌하고 발랄한 학창시절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스윙키즈]를 통해, 이념적 갈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그는 정말 뛰어난 각본가입니다. 보통의 한국 영화에서 어떤 주제를 말하고 싶을 때, 그것을 강조하기 위해 밑줄을 치고, 별까지 그리면서 엄청 강조해서 주제를 보여줍니다. 영화가 관객에게 ‘이거, 영화의 주제야. 중요해!’라고 말하는 듯이 연출합니다. 하지만, 강형철 감독의 영화에서는 그것을 관객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제를 인물이 처한 상황으로 자연스럽게 보여줍니다. 관객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이 처한 상황을 보며 관객들이 공감하게 되고,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공감한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영화를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북한사람들이 미제에 대해서 배척하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 때문에 미국의 춤인 탭댄스를 추기 시작한 것도, 추는 것을 말하는 것도 두려워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는 단순히, 체제의 이념 때문에 자유롭지 못했던 것입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배우의 캐스팅이 이해가 되었다. 우선, 도경수 배우는 로기수 그 자체였다. 연기를 잘 하는 배우 중에 춤을 제대로 출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때문에, 이 역할은 댄서 출신이 필요했고, 그 역할은 도경수 배우가 적합했다. 박해수 배우와 오정세 배우와 진짜 중국인 같은 김민호 배우도 진짜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이 보인다. 과거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보여준 인물들의 군무를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진짜 탭댄서인 자레드 그라임스의 탭댄스도 환상적이다. 그저, 자기 혼자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인물들은 같이 춤을 추면서 우리가 되었고, 자기 몸 하나 챙기기 힘들지만 서로를 챙기면서 살아갑니다. 전혀 다른 사람들임에도 서로를 걱정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저마다 다른 이념과 피부색을 가졌고, 다른 언어를 사용하여 말도 통하지 않지만, 결국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죠.
5 / 5 작정하고,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
개봉하면, 다시 보러 가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