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Unsplash의Radoslav Bali
15년 동안 나는 줄곧 달려왔다. 기획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말이다. 겉으로 보기엔 성과도 있었고 제법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이자 워킹맘이었지만, 그 길 위에서 나는 단 한번이라도 여유라는 것을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
문제는 이 '복잡하고 힘든 질주'가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남편과 사랑스러운 두 딸까지, 우리 가족 모두가 나의 속도에 맞춰 함께 달리고 있었다. 엄마의 브레이크 없는 삶이 가족 모두의 피로로 이어진 것이다.
'일단 멈춰보자.'
모든 것의 시작은 소박했다. 올해 연말엔 아껴운 연차를 탈탈 털어 발리 한 달 살기에 도전해야지! 하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이번엔 좀 긴 여행을 가볼까?', 혹은 '잠깐 숨을 돌려볼까?' 하는 정도의 마음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기획자 DNA'가 또 발동하고 말았다. 뭐 계획이랄 게 있을까 싶었던 여행을 떠올리며 작은 질문 하나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더라.
' 한 달 동안 그냥 놀기만 하면... 애들도 나도 지루하지 않을까?'
이 질문은 또 다른 프로젝트를 불러왔다.
'그럼 아이들은 현지 학교에 보내볼까?'
일단 현지 국제학교를 알아보니 재미있는 현실에 부딪혔다. 단 한 달만 다녀도 입학금은 그대로라는 사실이었다. 역시 '대한민국 워킹맘'의 피에는 가성비와 효율이 흐르는걸까? 그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이 프로젝트의 스케일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스케일 업 1단계 : '그럼 아이들은 겨울 방학이니 내가 육아휴직을 세 달 정도 써볼까?'
보너스 미션 : '중간에 호주 여행도 한 번쯤 다녀오면 좋겠다.' (역시 한 번 움직일 때 최대한 뽑아내야지!)
하지만 여기서 또 다른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온 가족이 호텔 방에서 세 달을 지내는 건 상상만 해도 피곤했고, 세 달짜리 집 렌트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짧은 기간 현지 학교를 경험해 본 학부모들의 후기는 하나 같이 "짧아서 아쉬웠어요."로 귀결되더라. 이쯤되면 결론은 하나였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자!"
그렇게 나의 발리 한 달 살기 프로젝트는 '육아휴직이 허락하는 그 날까지 꽉 채워 1년을 살아보자!' 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로 변경되었다.
늘 엄마에 대한 갈증으로 가득 차 있는 나의 두 딸이여! 앞으로 1년 동안은 우리 꼭 붙어서 제대로 부대껴보자. 엄마가 15년만에 브레이크를 밟았으니, 이제부터는 우리 가족의 속도로 다시 달려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