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1월 독서모임으로 선정된 '노르웨이의 숲'
언젠가 무라카미 하루키 책을 읽어봐야겠다 싶던 차에 딱 이 책이 이번 달 책으로 선정되었다.
사실 나는 재밌게 잘 읽었는데 같이 읽은 친구들의 반응이 영 별로라 당황했다.. :(
뜬금없는 외설적인 장면들이 너무 많았지만, 그것 외에도 나는 글의 분위기라든지 사람들간의 관계, 등장인물들의 취향 등에 대해서 인상 깊게 읽었다.
노르웨이의 숲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리뷰]
내가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이 자살한다면 나는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와타나베는 어느 날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 기즈키를 잃었다.
그리고 몇 년 뒤 우연히 만나게 된 기즈키의 여자친구, 늘 기즈키와 셋이서 함께 시간을 보냈던 나오코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나오코는 정신적인 문제를 겪고 자의적으로 치료를 할 수 있는, 비교적 치료와 생활방식이 자유로운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된다.
정신병원에 들어간 나오코에게 습관처럼 편지를 하고, 그렇게 기다렸던 나오코를 직접 만나러 나오코가 지내는 곳에 찾아 가기도 한다.
와타나베가 진짜 나오코를 여자로서 사랑했을까? 생각하면, 사랑했던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기즈키를 잃은 슬픔을 함께 공유해서든, 왠지 모를 부채감 같은 것 때문이었든 사랑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와타나베는 사실 나오코를 만나지 않을 때 여자들과 원나잇을 즐겨 하고 사랑 없이 몸을 섞는 것쯤 욕구를 해소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와타나베가 어느 순간 나오코를 생각하며 아무런 관계도 가지지 않고 나오코가 낫기만을 기다렸다. 나오코가 준 그 느낌을 잊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도리는 사랑했을까? 생각하면, 잘 모르겠다.
사랑을 했더라도 어쨌든 미도리와는 결국 잘 되지 않았을 것 같다.
와타나베는 기다림의 연속인 나오코 대신에 눈 앞에서 생동감 넘치게 사랑을 표현하는 미도리를 선택했지만, 나오코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으로 미도리를 방치했다.
미도리는 투정부리고 싶어하고 느끼는 그대로 표현하는 사람이기에, 와타나베를 완전히 이해하고 기다려 주기엔 지쳤을 것 같다.
또한, 그렇게 나오코 생각을 많이 했었던 와타나베가 미도리를 대할 때는 머리스타일의 변화도 못 알아챌 만큼 무심했다.
와타나베는 나오코를 기다리며 너무나도 외로웠기에 지친 마음에 미도리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작 중에 정상인을 꼽으라면, 꼽을 수 없을만큼 다들 비정상적이고(레이코, 나가사와 등..)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이 대부분이다.
그 중 미도리가 가장 특이하고 통통 튀지만 골때리는 매력이 있다.
나는 사실 미도리와 와타나베의 관계성, 그리고 와타나베의 성격이 드러난 부분이 좋았다.
미도리가 어떤 외설적이고 이상한 말을 하더라도 와타나베는 조금 당황할 뿐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미도리가 "오해하지 마. 난 그냥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뿐이야"라고 하면 와타나베는 "알겠다"고 한다.
사실 사람들은 보통, 타인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다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가?
와타나베는 항상 '그런가보다'하는 식이다. 나는 좀 예민한 편이라 타인의 말을 곱씹는 경우가 많아서 와타나베처럼 이런 담백한 사람을 닮고 싶다. '그런가 보다' 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이 소설에서는 또 뭐랄까 등장인물들의 고상한 취향이 좋았다.
나는 잘 모르는 세계인 클래식, 재즈 음악, 그리고 고전 명작 책들까지 등장인물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취향을 공유하는 것이 신기하게 다가왔다. 언젠가 와타나베가 읽었던 '마의 산'을 읽어보고 싶다.
1980년대에 쓰인 책인데, 옛날 사람들은 확실히 좀 더 깊게 사유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이 당시 일본의 거품경제 시대상 많은 사람들이 우울감을 느꼈을 것이고 그 우울감이 그대로 소설에 녹아든 것 같다.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도 불리는데, 다 읽고 나니 이 책 제목에는 '상실의 시대'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노르웨이의 숲'이라고 제목을 지은 이유는, 나오코가 좋아했던 노래인 '노르웨이의 숲'을 우연히 듣고 그녀와 함께했던 시절이 떠오르면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이라고 추측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