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보내는 편지
어릴 적부터 나는 내 키보다 높은 담장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늘 궁금했다. 지방의 소도시인 마산(지금은 시라는 명칭도 사라진)에서 태어나 바닷가 동향의 작은 집에서 매일 그 조그만 바다 위로 해 뜨고 달 뜨는 것을 보며 바다 너머를 상상했다. 서점이 하나밖에 없는 고향이 답답해서 엉덩이에 땀띠나도록 고3 생활을 뜨겁게(?) 책상머리에서 살아낸 뒤 스무살에 서울로 올라와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스무살 이전까지는 내가 선택한 삶이 하나도 없었지만 스무살이 되면서부터는 모든 상황을 내가 선택하고 책임져야 했다. 그때 나는 10대 때 읽었던 여러 책들의 영향 덕분인지 스무살엔 경제적으로도 자립해야 한다는 대단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대학 1학년을 마칠 때쯤엔 선택과 상관없이 부모님의 가세가 기울어 고학생으로 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괜찮았다. 경제적으로 힘드셨던 부모님은 더이상 내 인생에 운전대를 잡을 여력이 없으셨고 그때부터 나는 내 삶의 운전대를 꽉 붙들고 초보운전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나의 20대는 이곳과 저곳의 경계인 담 위에 올라서서 이리기웃, 저리기웃이 아닌 이쪽 풍덩, 저쪽 풍덩 하며 마구 헤엄쳐 다닌 시간이었다. 대학교에서 전공으로 선택한 학과는 국어국문학이었지만 고등학교 내내 지원하고 싶어했던 특수교육학과에 대한 마음을 접지 못하고 글 쓰는 동아리와 장애인 자원활동 동아리를 동시에 활동하며 정말 바쁜 일상을 보냈다. 물론 생활비와 학비도 벌어야 했기에 그 와중에 온갖 아르바이트도 했다. 초중고 12년 간 치열한 입시공부에만 치중하여 오직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온 삶에서 스무살 갑자기 주어진 자유와 선택, 책임, 그리고 서울의 다양한 삶의 모습은 한편 무섭기도, 흥미진진하기도 했다. 돌아보면 지금의 나를 만든 5할은 20대에 만난 아주아주 다양한 인생선배들이 만들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여전히 학교 안에만 머무는 것에 안정감보다 고립감을 느끼고 학교 밖 사람들과의 연결을 늘 갈망하는 것도 20대에 만들어진 버릇이 아닐까?
나이가 조금더 들어 스스로 찾아 들어온 대안교육현장, 그리고 대학원에서 교육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나는 학교 밖에서 더 많이 배우고 성장했구나, 서울이라는 도시학교가 난를 눈뜨고 확장되고 경험하고 실천하는 사람으로 성장시켰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학교 안에서도, 학교 밖에서도 배울 것은 많고도 많다. 그러나 학교 안에서만 청소년기를 보내고 오직 대학을 위해서 경쟁하면서 달려가는 청소년들을 보면 나는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세 곳의 분위기가 다른 대안학교에서 대안학교 교사로서의 길을 걷고 있다. 처음엔 실수도 많이 하고 아이들도 괴롭히며 뒤뚱뒤뚱 걸었고 경험과 성찰이 쌓일수록 속도를 내며 달리고 날아올라 교사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갔다. 그리고 삶의 중반을 넘어선 지금, 다시 아이들과, 또 자연이라는 선생님과 함께 천천히 음미하면서 걷는 요즘을 보내고 있다. 16년 전 큰 뜻을 품고 서울에서 금산으로 내려오기까지 엄청난 삶의 에너지를 써야했다. 인생을 걸고 결단한 엄청난 순간이었다. 학교를 창립하고 또 11년간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점점 확장되던 교사로서의 시선, 삶의 태도도 변화했다. 교사로서 제법 무르익었을 때 꿈꾸고 있던 학교의 전형이었던 간디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행복을 누렸다. 지금은 시와 사랑을 노래하고 별과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별무리학교에서 다정한 이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만들어가고 있다.
16년의 하루하루가 다 아름다웠거나 뜻대로 이루어졌거나 행복하지는 않았다. 때로는 몹시 아팠고 힘들었고 슬플 때도 있었다. 잘 몰라서 의도치 않게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아주 가끔은 도망가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 하루하루가 켜켜이 쌓이고 쌓여 내 가슴엔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부글대고 있다. 아프지만 아름다웠던 우리들만의 성장기록을 어딘가에는 꼭 기록해두고 싶어 이 글을 시작한다. 이 글은 어느 작은 시골 교사의 성장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멋모르고 용감하기만 했던 한 학원강사를 교육예술가라는 꿈을 갖고 뚜벅뚜벅 이 길을 걸어올 수 있도록 동력이 되어준 내가 만난 모든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함을 담은 편지이기도 하다. 어느새 성인이 되어 가정을 꾸리기도 했을, 종종 생각나지만 너무 귀하고 그래서 아프고, 또 부끄러워 감히 연락조차 하지 못하는 모든 제자들에게 이 마음을 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