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생 내지는 여고생이었다. 가녀린 체구의 소녀는. 얇디얇은 교복 차림에 팬티만큼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훤히 드러난 다리는 희다 못해 창백할 지경이었고 핏줄이 다 비치는 것 같았다. 지나가는 사람 남녀노소 누구 하나 빠짐없이 한 번씩 그녀의 다리를 보았다. 가랑비가 흩뿌리는 추운 날씨였다. 날은 흐리고 바람은 세서 나는 패딩을 입고도 목을 움츠리던 날.
비슷한 풍경을 매해 겨울 본다. 오늘보다 더 춥던 지난 2월의 어느 날. 놀이공원에서 한 무리의 여자 아이들을 봤다. 크롭티, 니트 한 장, 미니 스커트, 맨살과 다름없는 스타킹. 아이들의 옷차림은 때 이른 봄이었다. 지나치게 두껍고 진한 화장과, 어딘가 엉성한 패션감각. 그 모든 것이 십대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런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앙상한 다리가 예쁜 다리인 줄 알았다. 추운 날에도 적당한 노출이 자신감인 줄 알았다. 두껍고 둔한 옷보다 얇고 화사한 옷이 패션인 줄 알았다. 추운 것쯤 감수하는 게 멋쟁이인 줄 알았다. 누가 쳐다보기라도 하면 좋은 의미의 관심인 줄 알았다.
그 시절을 거쳐 지금의 내가 있다. 한여름에도 발목이 시려 내놓지 못하는. 계절에 맞지 않은 얇은 옷차림을 했다간 감기 몸살로 직행해 며칠을 앓아눕는. 그러니 그런 실수마저 하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한겨울 외투를 4월까지 정리하지 못하는. 소녀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소녀들아, 그 시절을 즐기렴. 대신, 보온 대신 멋을 선택했으면 당당하렴.
사진: Unsplash의Zoran Zonde Stojanovs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