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쓰는 사람

제안 메일을 받다.

by 쑥쑤루쑥

열심히 저녁 식사 준비를 할 때였나. 방금 전 일도 돌아서면 까먹는 게 일상이다 보니, 무려 며칠 전 일이라 뭘 하던 중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집안일 중이었던 것 같....아, 아니다! 나는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의미 없이 울려대는 휴대폰 알람을 그날도 기계적으로 확인하다가 눈동자가 커졌다. 브런치에 연동해 둔 메일로 처음으로 제안이 왔다는 알림이었다.


아마도 발신인이 구분한 듯한 카테고리는 '기타'. 일단, 나는 이런 시기였다. 많이 바빠져서 일기장스러웠던 그간의 글마저 새로 발행하는 게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렇게 물리적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또각거리는 시간이 줄어드니 귀신처럼 글이 달아났다. 뭐라도 써볼까 하고 짬짬이 앉으면 몇 자 쓰다 말고 Backspace키만 우다다다다 누르고 앉아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니, 글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은 차치하고. 일단 내가 계속 글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대신, 바빠진 일과에도 다른 브런치 작가분들의 작품 세계는 더 열심히 탐험했다. 몇 분씩이라도 시간이 나면 쓰잘데기 없는 연예 뉴스 대신 기꺼이 브런치 앱을 켜려 노력했다. 그러면 읽는 즐거움을 넘고, '어쩜 저런 문장을 쓸 수 있지?', '저런 글을 쓸 수 있다니!'와 같은 감탄을 지나, 더욱 작아지는 내가 있었다.


다시 제안으로 돌아와서. 어떤 제안일까 그 자리에서 바로 확인하고 싶었지만 나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었다. 좋게 말하면 프리랜서요, 고약하게 말하면 파트타임 알바인 나의 일. 새 일감을 맡게 되느냐 마느냐를 결정짓는 새 의뢰인과의 첫 만남. 브런치를 통해 온 제안도 고맙지만, 눈앞의 수입과 내 커리어가 일단은 더 중요했다. 나는야 소심예민보스. 메일 내용이 좋은 일이어도 나쁜 일이어도 일에 영향을 줄 것이 분명했다. 나는 지나치게 설레고 있었으므로.


그러면 쿨하게 귀 닫고 눈 감고 잊는 시늉이라고 할 것을. 또 야금야금 '브런치 제안 메일 기타'로 검색을 하고 앉았다 (그럴 시간에 바로 메일을 열란 말이야!). 그러다 덜컥 겁이 났다. 누군가의 후기를 읽은 후였다. 댓글 기능이 버젓이 있음에도, 누군가 비난의 글을 전달하려는 수단으로 '브런치 제안 메일'을 활용했다는 글이었다. 가뜩이나 쫄아 있는데 악플까지 받으면 어쩌란 말인가 걱정이 앞섰다.


무사히 일을 마치고 설렘 반, 걱정 반으로 메일을 확인했다. 새로운 플랫폼에서 콘텐츠 창작자로 초대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구독 중인 브런치 작가님들이 많이 진출을 선언한 곳이라 낯익은 곳이었다. 다행히 악플은 아니었고, 몇 분 정도는 설레었던 것 같다. 이곳에 남긴 내 흔적이 아주 구리진 않았단 모종의 평가로 읽혔으니까.


그런데 이상하다. 대표가 직접 보낸 설명에 따르면, 콘텐츠 노출의 기회가 공정하고, 수익화도 가능하다고 했는데. 정작 그 플랫폼으로 수익을 봤다는 사람이 없다. 어떤 곳인지 정확히 알아보고 싶어 깔아둔 어플은 내가 극혐 하는 분야의 뉴스만 골라서 푸시 알림을 보내주었다. 이상한 알고리즘이었다. 뉴스가 메인인 곳에서 내 콘텐츠는 '일상'이라는 작은 카테고리에 보일 것이었는데, 뉴스마저도 한 사람을 유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브런치의 첫 제안 메일의 설렘이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이 제안에 응하지 않은 걸 후회할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결정을 했다. 과연 나는 또다른 새로운 제안을 받을 수 있을까?






사진: UnsplashCytonn Photography



keyword